목록
이전글 다음글
팔오일오

@85105wybxz

짝사랑의 임계점

 
 
 
 
-K 패치 된 고3 동갑내기 서울 거주 ‘왕샤’ 설정입니다-
 
 
 
 
새해가 밝았다. 기다리던 새해 아침. 아니 정확히는 ‘기다렸던’이다.
 
같이 새해 첫 일출을 보러 가자고 했었다. 붉은 태양을 보면서 같이 소원을 빌자고 했었다.
 
분명히 함께 가서 소원 빌자고 했지만… 결국 혼자다.
 
혼자 들떠서 한 약속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함께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샤오잔은 지금 혼자서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날씨는 더럽게 춥고, 날을 새서 그런지 몸도 피곤하다. 게다가 혼자인 자신이 너무 서럽다.
 
그녀석 때문에 입시도 망쳤다. 몇 달간 마음고생 한 덕에 입시는 개판을 쳤고 목표한 대학도 고꾸라졌다. 재수는 아니지만 2지망에 들어가게 될 것 같아 부모님께 면목도 없다.
 
모든 게 그녀석 탓 같았지만 사실 자기 탓인 걸 매우 잘 안다. 그래서 더 서럽다.
 
새해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은 저마다 왁자지껄 대화하느라 바쁘다. 한쪽에선 행사를 여는 지, 갑자기 노랫소리가 커지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목소리가 온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럴수록 더 우울한 감정만 북받치던 샤오잔은 결국 입술을 삐죽대더니 한쪽 눈에서 눈물이 도르르 흘렀다.
 
피곤하고 우울하고 서럽고 춥다. 그래, 단지 이 이유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마치자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흐른다.
 
씨익씨익… 이놈에 눈물!
 
손으로 눈덩이를 꾸욱 누르며 샤오잔은 자기도 모르게 짖이기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왕이보…
 
입 밖으로 지금 샤오잔을 가장 서럽게 만들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더 감정이 받쳐 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샤오잔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채 자신을 돌아 세웠다.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왕이보였다.
 
-샤오잔!
 
왕이보가 샤오잔을 강하지만 나지막하게 불렀다.
 
-약속… 지키러 왔어. 같이 일출 보러 오자고 했잖아
 
왕이보가 말할 때마다 입금이 한가득 나왔다.
 
이거 꿈인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등장한 왕이보 때문에 현실감이 안 느껴지던 샤오잔은 점점 자신의 어깨 위에 얹어진 왕이보의 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왕이보, 너 어떻게!!!
 
 

1편: 너랑 친해질래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지역사회 경제이익’을 살펴보는 경제 수업이 한참이다.
 
벌써 절반이 각자 기억에 남는 여행지에 대해 소개하고 여행지의 역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 경제효과를 추측해 보는 발표가 이어졌다.
 
-자 다음은 샤오잔
 
선생님이 호명하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샤오잔은 싱긋 웃으며 발표 자료가 든 휴대폰을 들고 교탁 쪽으로 걸어 나갔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샤오잔에게 모두 시선이 쏠렸다.
 
휴대폰과 스크린을 연결시키자 샤오잔이 준비했던 사진들이 나왔다.
 
-저는 작년 봄에 부모님과 함께 떠난 제주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엄마랑 아버지랑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 다녀왔는데요.
 
발표 사진을 밀어 넘기며 당시의 풍경, 부모님과 나눴던 대화, 그때 먹었던 음식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샤오잔.
 
-이건 마지막 사진입니다. 이때 유채꽃이 활짝 펴서 꽃 사이로 몸을 숨기면서 얼굴만 둥둥 떠오르게 해서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
 
아버지가 찍어 줬는지 샤오잔과 엄마가 꽃받침을 하고 나란히 웃으며 찍힌 사진.
 
이미 샤오잔 외에도 앞서 제주도 여행을 소개했던 사람이 몇몇 있던 터라 반 학생들의 호기심은 금방 바닥이 난 상태였는데 갑자기 여기저기 웅성웅성한다.
 
-야 저거 뒤에 왕이보 아냐?
-뭐? 어디?
-어? 그렇네~ 왕이보 아까 발표했던 사진이랑 옷 똑같은데?
-우와, 야 너네 같이 있었나 봐!!
 
엥? 무슨 말이지? 아이들이 웅성거리면서 하는 말에 샤오잔은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다 눈이 커졌다.
 
샤오잔 보다 먼저 발표했던 왕이보가 샤오잔의 가족사진 언저리 쪽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샤오잔이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반 아이들이 난리다. 서로 몰랐냐며 신기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샤오잔은 개인적으로 발표 때 쓴 이 유체꽃밭 가족사진을  매우 좋아한다. 고3이 되면 수험생 생활로 고생할 아들을 응원해주고자 맞벌이 부모님이 연차를 내고 샤오잔의 스케쥴에 맞춰 가족여행을 다녀온 ‘추억의 사진’이다.
 
자리로 돌아간 샤오잔은 자신보다 뒷자리에 앉은 왕이보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왕이보, 너 제주도 갔을 때 00유채꽃밭 갔었어?
 
샤오잔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보자 무표정이던 왕이보가 입꼬리를 씨익 하며 올리더니
 
-어, 맞어.
 
대답은 짧게 끝내지만 왕이보도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발표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샤오잔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들떴다’로 표현할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페이보릿 사진에 왕이보가 같이 찍히다니! 근데 왕이보가 찍힌 게 왜 기분이 좋지?
 
샤오잔과 왕이보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남녀공학이긴 해도 남자 반과 여자 반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간다고 무조건 학생들이 뿔뿔이 찢어지지 않았다.
 
절반은 다른 반이 되고 절반은 계속 같은 반이 됐는데, 샤오잔과 왕이보는 무슨 이유인지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1학년 때 학급 회장을 맡았던 왕이보는 2, 3학년이 되어도 계속 회장을 맡았다. 아무래도 1학년 때 회장이었던 걸 기억해둔 학생들이 왕이보를 계속 추천해서 회장을 연임하게 됐다.
 
성적도 우수하고 리더십도 있지만 내성적이라 두루두루 친한 성격은 아닌 왕이보와 샤오잔은 그동안 친해질 접점이 없었다.
 
1학년 때부터 합창부와 미술부 활동에 전념한 샤오잔은 학교 행사에 종종 얼굴을 비춰 교내에선 어느 정도 유명인사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매너 좋게 굴지만 샤오잔도 은근히 내성적인 이라 접점이 없는 상대와 친해질 정도로 나서는 성격은 못됐다.
 
학교 행사 때 각급 회장들이 나와서 장기자랑을 할 때 왕이보는 무조건 춤을 췄다. 춤은 왕이보가 어릴 적부터 췄다고 들었다. 그래서 꾀 수준급이다. 운동도 잘하는 편이다. 고2 때부터는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쉬는 시간만 되면 운동장으로 나가 보드를 타던가, 가끔씩 복도에서 타다 선생님한테 잡혀서 혼난 적도 있었다.  
 
샤오잔은 미술실에서 데생을 하다가 까매진 손바닥으로 종종 얼굴을 만졌다. 검둥이가 얼굴에 묻은 지도 모르고 합창부실로 넘어가 피아노를 치다 보면 여자애들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그제야 거울을 확인하던 샤오잔은 ‘언제 또 이 지경이 됐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로 가서 손과 얼굴을 닦았다.
 
그러다가 가끔 교실 창문 넘어 운동장을 보고 있으면 왕이보와 그의 친구들이 농구를 하던가 춤 연습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탁탁 소리를 내며 스케이트보드 스킬 연습을 하는 왕이보를 본 적도 있다.
 
보드 스킬이 성공하면 왕이보와 친구들은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왕이보 쟤는 성적도 좋고 춤도 잘 추고 운동도 잘하고… 사기캐 아냐?
 
샤오잔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한참은 왕이보를 쳐다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와~ 되게 잘생겼네?’
 
-부럽네. 진짜 말 그대로 엄마친구아들의 정석이잖아?
 
속으로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로 뱉어 내자 합창부 친구들이 ‘뭐라고? 샤오잔?’하며 되물었다.
 
-아냐, 아냐 혼잣말이야
 
샤오잔은 왕이보를 부럽기도 하고, 호감 가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소 동경 반, 호감 반으로 지켜봤던 왕이보가 자신이 제일 아끼는 가족사진에 함께 찍혔다는 게 너무 신기한 샤오잔.
 
이제 고3이고 올해가 끝나면 우린 서로 아예 못 보겠지? 친한 친구가 아니니깐…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다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내뱉듯 말했다.
 
-왕이보, 너 계속 보드 탈꺼야?
 
샤오잔이 왕이보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 물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냥 학급에서 발생하는 여러 공식적인 일 외에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던 두 사람이었다.
 
의외라고 느낀 왕이보가
 
-응, 근데 나 보드 타는 거 어떻게 알았어?
 
라고 되물어 본다.
 
-야 너 맨날 보드 들고 다니잖아~
 
말고 말하며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샤오잔.
 
큰 눈에 오똑한 콧날이지만 전혀 날카롭게 보이지 않는 얼굴. 웃으면 너무 무해한 느낌을 주는 샤오잔. 그런 얼굴이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자 왕이보도 순간 따라 웃는다. 원래는 무뚝뚝해 별로 친하지 않으면 말을 덧붙이는 성격도 아닌 왕이보가 먼저 물어본다.
 
-왜? 너 보드 관심 있어?
 
-응! 나 사실 작년부터 너 보드 타는 거 봤는데 너무 재밌어 보이는 거야! 너 보드 기술 같은 거 척척 해내는 거 보고 완전 멋있어 보였어!!
 
무슨 소녀가 사랑 고백 하듯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선 웃으면서 다다다다 쉴 새 없이 말하는 샤오잔.
 
그 모습이 어딘가 조금 신선하면서도 싫지 않은 왕이보는 샤오잔이 웃는 순간순간 따라 웃으면서 그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분명히 같은 반이었던 2년간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 없었던 두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단순히 같은 사진에 우연하게 함께 찍혔다는 접점 하나로 무언가가 연결된 것 마냥 친근감이 급하게 상승했다.
 
지금 샤오잔은 이 기분이 싫지 않다. 그리고 왕이보도 지금 자신과 같은 기분이라고 느껴졌다.
 
왜냐면, 오늘 이상하게도 설레는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자신과 그걸 계속 표정으로 다 받아주고 있는 왕이보가 너무도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샤오잔은 마음을 굳혔다. ‘나 쟤랑 친해질래’
 
-저기 왕이보, 나 보드 타는 거 알려주라. 우리 입시 때문에 바쁘겠지만… 그래도 주말에 나 좀 알려줘. 응?
 
씨익 입꼬리를 최대치로 올리며 눈은 반달 모양으로 접어 웃는 샤오잔의 표정에 왕이보는 당황하지도 않고 같이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래! 

‌

2편: 보드는 사랑을 싣고 
 
 

‌토요일 아침, 의외의 문자를 받았다.
 
-샤오잔, 우리 11시쯤에 만나서 보드샵 가자. 아 그리고 나 왕이보야.
 
주말에 보드 가르쳐 달라고 말은 했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사실 없었다. 시간이나 약속 장소를 정한 것도 아니었고, 이후에 눈인사만 했지 번호교환 조차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왕이보한테서 문자가 온 것이다.
 
일단 답장은 보내자.
 
-왕이보 근데 우리 어디서 만나?
 
얘는 뭐 어디서 보자는 말도 없고… 아니 그 전에 오늘 시간 되는지 물어보지도 않냐? 원래 이런 타입인가?
 
샤오잔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우선 친해지고 싶어 먼저 보드 가르쳐 달라고 했던 건 자신이기에 일단 오늘 만남은 성사시키고 싶었다.
 
-학교 근처 종합운동장에 보드장이 있거든. 그 근처에 보도샵도 있어. 일단 거기 있는 00보드샵에서 보자.
 
알겠다고 답장한 샤오잔은 시계를 확인하면서 급하게 준비에 들어갔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면서 ‘얘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내가 막 무의식중에 번호를 줬나?’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고는 얼른 옷을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탁탁, 신발을 신고 잠시 거울을 보던 샤오잔은 ‘잠깐, 얼굴 탈 수도 있으니 모자를 쓸까?’라고 생각하다 신발 벗기가 귀찮아 곧바로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가는 길 내내 친해지고 싶던 애랑 친해질 기회이긴 한데, 이상하게 어색하고 긴장됐다.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며 나설 땐 나서지만 대체로 내성적인 샤오잔은 갑자기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에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왕이보 오늘 내 운동신경 별로여서 다음부터 아는 척도 안 하면 어째?
 
혼잣말로 극적인 상황을 내뱉으며 긴장을 없애려던 샤오잔은 자기가 뱉은 말이 사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긴장됐다.
 
-하~ 나 아직도 이 나이 먹도록 친구사귀는 게 어색할 줄이야…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샤오잔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늦은 것도 아닌데 심장이 빨리 뛰니 걸음도 거기에 맞춰 빨라졌다.
 
약속 장소인 보드샵 가게 앞엔 아무도 없었다. 3월이라 햇볕은 강하고 바람은 차다. 보드 구경이나 먼저 하고 있을 겸 가게 안으로 들어가 왕이보를 기다릴 참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 ‘딸랑’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기서 보드샵 사장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왕이보가 문이 열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살짝 입술을 삐쭉이면서 ‘그게 그렇게 된 거예요?’라며 사장님한테 질문을 던지다가 갑자기 샤오잔과 눈이 마주친 왕이보는 이제 왔느냐는 의미로 씨익 웃어 보였다.
 
쭈뼛쭈뼛 들어오던 샤오잔도 갑자기 긴장이 가위로 자른 듯  싹둑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특유에 해사~한 미소로 맞받아 쳤다.
 
서로를 향해 웃으며 서 있는 두 남학생의 정적이 은근히 길다. 보드샵 사장님만 갑자기 발생하고 있는 두 남학생의 묘한 기류를 직접 목격하고 있을 뿐.
 
 
 
 
사장님과 왕이보의 꼼꼼한 설명을 들으며 샤오잔은 왕이보와 같은 스케이트보드를 구입했다.
 
보호대와 헬멧은 적당한 가격의 제품이 없어 인터넷으로 사기로 했다.
 
보드샵 사장님이 적당한 제품을 추천해주셨고, 샤오잔은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주문하겠다고 답했다.
 
보드샵을 나온 왕이보와 샤오잔은 벌써 점심시간이라며 밥은 어떻게 할 거냐고 동시에 물었다.
 
-어? 저기… 그러니깐, 오늘 처음이기도 하고… 보드 정보도 많이 알려주고 했으니깐, 내가 밥 살께!!
 
샤오잔이 힘주어 말하자 왕이보가 고개짓을 왼쪽으로 하더니 손으로 아파트 단지를 가르킨다.
 
-저기 우리 집인데, 그냥 우리 집 가서 밥 먹자. 엄마가 사실 점심 해 놓고 나가셔서 그거 먹어야 해
 
-아 그래? 엄마 밥 안 먹으면 안 되지. 엄마 속상하시지! 암!
 
샤오잔이 왕이보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왕이보는 피식 웃으며 ‘울 엄마 음식솜씨 좋으셔. 너도 맛있어 할꺼야’라며 샤오잔의 팔을 자신 쪽으로 끌었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신호로 살짝 샤오잔의 팔을 끌은 거지만 샤오잔은 나름 설렜다.
 
친구 하기로 한 다음에 바로 친구 집에 가다니, 친밀도와 신뢰감이 확 올라간 기분이다.
 
 
 
 
집에 도착하자 정말로 식탁에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국과 밥만 퍼서 먹으면 됐다.
 
-집에 아무도 안 계셔?
 
샤오잔이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왕이보는 ‘응’이라며 단답형으로 말했다.
 
-샤오잔, 밥 많이 먹을꺼야? 일단 적당히 줄테니깐 부족하면 더 먹어!!
 
무슨 엄마들이 아들한테 하는 말을 지금 왕이보가 샤오잔한테 하고 있다.
 
-어 일단 나 손부터 좀 씻고…
 
왕이보가 알려준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자 세면대에 서로 색이 다른 칫솔 세 개가 보였다.
 
-아, 얘도 가족이 세 명인가?… 외동아들인가?
 
막연하게 생각하며 손을 다 씻고 나오자 식탁으로 앉으라고 손짓하는 왕이보가 보였다.
 
-우와… 진짜 내가 오늘 점심사야 하는 데… 어머니한테 감사하다고 전해줘~
 
감사 인사를 하며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밥 한입, 국 한술, 반찬 하나하나 먹을 때 마다 ‘우와’ ‘오~~’ ‘와~ 맛있어’ ‘어우 진국이다’ 등등 감탄사를 연발하는 샤오잔.
 
쫑알쫑알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샤오잔은 음식이 튀거나 흘리지 않도록 곱게 다 씹어 삼킨 다음에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 음식에 연신 맛있다고 말하는 샤오잔을 보며 왕이보는 샤오잔이 귀엽게 느껴졌다. 또 맛있게 먹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집에서 먹자 하길 잘했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다 먹고 배가 부른 샤오잔은 거실 쇼파에 잠시 기대 앉았다.
 
-커피 내려 줄까?
 
왕이보가 식탁을 정리하면서 물었다.
 
-응! 마실래. 아 맞다. 나 아까 보드샵 사장님이 알려준 보호대 주문해야 하는데…
 
샤오잔은 왕이보가 옆에 있는 김에 같이 보호대를 보면서 구매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 옆 방이 자기 방이라며 방에서 컴퓨터를 먼저 켜 놓으라는 왕이보.
 
왕이보가 알려준 방에 들어가니 ‘응? 내가 지금 어디 온 거지?’ 싶은 광경이 펼쳐졌다.
 
온갖 레고가 방에 꽉 들어찼다.
 
-야 왕이보! 너 레고도 좋아했어???
 
-응. 나 어릴 때부터 레고 모으는 게 취미야~
 
아직 식탁을 정리하느라 멀리서 들려오는 왕이보의 대답에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그래~’라고 대답하곤 방을 둘러봤다.
 
방안은 거의 레고와 중간중간 바이크 헬멧이 자리했다. ‘뭐야, 얘 폭주 뛰나?’ 잠시 생각했지만 못할 소리다. 고딩이, 그것도 학급회장인 왕이보가?
 
몰랐던 왕이보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 같아 샤오잔은 조금 가슴이 뛰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흥분감으로 살짝쿵~ 기분이 들뜬 것 같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다 컴퓨터를 발견하곤 전원을 눌러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엔 비밀번호도 걸려있지 않았다.
 
-왕이보~ 나 컴퓨터 해도 돼?
 
-응, 그 사장님이 알려주신 사이트 아마 자동접속 될 꺼야
 
무슨 말인가 싶어 보드샵 사장님이 알려준 사이트에 접속하니 이미 자동로그인이 되어 있다.
 
왕이보도 자주 찾는 보드용품 사이트인가 보다.
 
어떤 게 좋은 가 이것저것 클릭하다 보니 무언가 어깨를 확 잡아온다. 왕이보다.
 
-어때? 아까 사장님이 말씀하신 보호대 여기 있어? 말로만 알려주고 제품사진은 안 보여줘서 판매 중인지 정확히 모르겠네?
 
왕이보가 샤오잔이 붙잡고 있는 마우스에 자신의 손을 올려 이것저것 클릭했다. 샤오잔의 손 위에 왕이보의 손이 겹쳐 있는 중이다.  
 
별 생각 없이 마우스의 제 손과 왕이보 손을 보던 샤오잔은 ‘잉?’하고 놀라는 시늉을 했다.
 
-왕이보 너 손 엄청 크다!!!
 
마우스에서 손을 뗀 샤오잔이 손을 쫙~펴며 어서 빨리 자신의 손과 맞대보자는 식의 제스처를 취하자 왕이보가 머쓱해 하며 손을 펴준다.
 
-아 원래 나 손 커, 아버지가 손이 크셔서…
 
-와~ 이 정도면 도에서 솔까지 닿겠어!!! 히히히
 
신기하다며 쫙 펴진 왕이보 손에 자기 손을 붙였다, 뗐다는 반복하는 샤오잔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뭐가 뭐에 닿아?
 
왕이보가 어리둥절한 채로 자기 손을 붙였다 뗐다 하는 샤오잔에게 질문했다.
 
-아니, 피아노 말야. 너 피아노 치면 도에서 다시 도를 넘어서 솔까지 닿겠다고. 히히
 
혼자 신나서 웃으며 말하는 샤오잔이 왕이보도 재밌다. 속으로 ‘그런가?’하며 계속 왕이보의 손을 신기해하는 샤오잔을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다 손을 접어 다시 마우스를 만지작대는 왕이보는 샤오잔의 팔을 툭툭 치며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이건 거 같아. 아까 사장님이 말씀하신 게. 이거면 적당할 것 같아.
 
-왕이보, 근데 너는 보호대 안 하지 않아?
 
-나야 안 하지…
 
-꼭 해야 해? 나도 더워서 안 하고 싶은데…
 
-그래도 처음엔 해야지, 뒤로 넘어지면 크게 다쳐서 안돼.
 
왕이보의 단호한 말에 샤오잔은 금방 ‘구우래~’라며 말을 늘리며 대답했다.
 
실제로 더위를 많이 타는 샤오잔은 기본적으로 갑갑하게 자신을 압박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옷을 입어도 통이 넓은 옷을 입는 편이었다.
 
-나 더위 많이 타는데…
 
-그래도 무릎은 꼭 보호해야 해. 팔꿈치랑.
 
-헬멧은? 더워 죽으면 어떡하지?
 
-음.. 그럼 내가 넘어질 거 같으면 잡아줄께! 헬멧은 그럼 안 써도 되겠지?
 
왕이보 분명히 자기가 더 베테랑이라 헬멧을 안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 샤오잔한테 되물어보는 꼴이라니. 이 상황이 이상하게 간질간질하면서도 웃겨 서로 웃음이 빵 터졌다.
 
-왕이보, 이거 내가 입금해 줄게, 너 아이디로 주문해 주라. 알았지?
 
-알았어. 택배 오면 내가 학교로 가져다줄게
 
-응~ 고마워! 그럼 그때 내가 매점에서 맛있는 거 사줄게. 오늘 못 산 점심 대신!!
 
어떻게든 뭘 사겠다는 샤오잔이 귀엽게 느껴진 왕이보는 알았다며 샤오잔의 머리를 흩트렸다.
 
 
 
 
샤오잔은 이미 어릴 때부터 미대를 목표로 뒀기 때문에 고3인 지금 짬이 나거나 정규 수업 외에는 미술실에 콕 박혀 있을 수밖에 없다.
 
미술 선생님은 샤오잔처럼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간간히 봐주기도 했다.
 
샤오잔과 함께 미술실에 두런두런 앉아서 데생에 열을 올리는 두 여학생은 ‘내가 더 줄리앙을 섹시하게 그린다’며 나름의 베틀을 펼치는 중이다.
 
현재 샤오잔은 3월 중순이라 추운데다 방과후 시간이라 집중력이 다 떨어져 졸음이 한 가득이다. 주변 학생들의 수다가 서서히 자장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연필을 들고 그림을 못 그릴 지경이다. 따뜻한 이불 안에 들어가서 두 시간만 자고 싶은 심정이다.
 
슬슬 눈꺼풀이 닫힐락 말락 할 때쯤, 갑자기 미술실 앞문이 벌컥 열렸다. 오늘은 따로 미술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 아니라서 지금 문을 열 사람이 없다. 의아해서 감기는 눈을 뜨니 샤오잔이 익히 아는 사람이 거기 서 있다.
 
왕이보가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서 있다. 이리저리 눈을 굴려 누군가를 찾는 듯한 왕이보의 모습을 보고 샤오잔은 ‘어이! 여기, 여기’ 하며 양팔을 허공에 벌려 환영의 제스처를 취했다.
 
샤오잔을 확인한 왕이보가 성큼성큼 들어와 ‘이거’하면서 봉투를 건넨다.
 
샤오잔은 거의 잠에 들어있다가 왕이보를 맞이한 상태라 아직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보 슨상님~
 
몽롱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왕이보가 ‘보호대’라며 나직히 말한다.
 
-어? 벌써 왔어? 우와 빨리 왔네?
 
샤오잔은 나른하지만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봉투 안을 헤집자 왕이보가 ‘내가 봐줄게’라며 손을 겹쳐 이것저것 포장들을 뜯어낸다.
 
-가격도 착한 편이지만 튼튼해서 좋은 것 같아
 
이래저래 보호대를 돌려보던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가성비 좋은 제품을 샀다며 안심하라는 듯 어깨를 툭툭 쳤다.
 
샤오잔은 뭐라도 좋았다. 솔직히 약간 나른한 상태에 취해있기 때문에 다른 게 왔어도 좋았다. 천하장사도 못 견디는 것이 눈꺼풀이라더니 샤오잔이 지금 그 상태다.
 
헤헤헤 그냥 웃기만 하는 샤오잔을 보자니 왕이보가 ‘얘가 왜 이래?’라는 느낌에 샤오잔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샤오잔!! 정신 차려!!!
 
왕이보가 장난스럽게 몰아붙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술부 여학생 둘이 꺄르륵 웃는다.
 
-왕이보 그냥 둬, 샤오잔 원래 지금쯤 졸려서 미치려고 해. 쟤 루틴이야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아쉽다. 샤오잔이 나름 잔뜩 기대한 모습으로 자신을 맞아 줄줄 알았던 왕이보는 김이 샜다. 안 되겠다.
 
-샤오잔!! 나 맛있는 거 사준다며. 어서 일어나. 매점 가자!!
 
계속 자신이 사겠다며 가오를 잡아왔던 샤오잔이 진짜 왕이보가 뭐 좀 사보라며 부추기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 맞어. 왕이보! 가자! 오늘은 내가 쏠께
 
어디서 무슨 버튼이 눌린 건지 몰라도 샤오잔은 벌떡 일어나 왕이보와 팔짱을 끼곤 미술실을 나가버렸다.
 
남아 있던 여학생 둘은 ‘지금 내가 뭘 본거지?’라는 표정으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매점에서 포켓몬 빵이랑 딸기우유와 커피우유를 사 들고 운동장으로 나온 샤오잔과 왕이보.
 
샤오잔은 정신이 든 것처럼 굴었으나 다시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너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왕이보가 약간의 걱정을 담아 물었다.
 
-아니 내가 원래 이 시간이 고비야. 근데 요즘 날씨가 너무 쌀쌀하니깐 더 움츠려 드는 거 같아
 
솔직히 추울 때 더 몸이 경직되기 마련이다. 움직임도 둔해지고, 신경도 둔해지고.
 
-보드 탈래?
 
왕이보가 갑자기 번뜩하고 샤오잔에게 물어왔다.
 
-보드? 나 보드 안 가져왔는데?
 
-나 있어. 교실에. 잠시만 기다려!!
 
갑자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교실 쪽으로 걸어가더니 계단이 나오자 두~ 세 개씩 계단을 뛰어넘어 가는 왕이보.
 
-야~ 빵은 다 먹고 가… 옴냠냠냠냠
 
샤오잔은 사실 지금 별 생각이 없다. 손에 들린 게 빵이고 커피우유라 그냥 그걸 먹는다. 그뿐이다.
 
근데 빵 한 조각, 커피우유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왕이보가 보드를 갖고 눈앞에 나타났다.
 
-야, 너 진짜 빠르다
 
감탄인데 뭔가 나른함이 묻어 있어 누가 보면 잠꼬대인 줄 알겠다.
 
-샤오잔 보드 좀 타. 보호대는 어차피 미술실에 있으니깐 지금은 못 끼고, 내가 잡아 줄께
 
-응? 갑자기 보드 타라고? 나 사실 지금 비몽사몽이야~~~
 
-너 더위 많이 탄다며… 보드 몇 번 타면 땀 좀 흘리고 정신도 들 거야. 추위도 좀 가시고
 
저 나무판자 위에 서는 게 뭐 그리 땀이 나고 정신이 든다고… 샤오잔은 좀 이해가 안 됐지만 순순히 왕이보의 말을 따랐다.
 
-너가 자주 쓰는 발을 먼저 올리고, 그래. 그리고 주행부터 연습해야 하니깐 한쪽 다리로 일단 서 있는 연습 해보자
 
샤오잔은 왕이보의 말대로 자신이 자주 쓰는 왼발을 먼저 올리고 오른발을 구부렸다. 왼발로만 보드 위에 서 있으려니 균형 잡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왕이보 보드 타라며?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균형부터 잡아야 주행을 하지
 
-근데 다리 하나로 균형 잡는 데 왜 이렇게 힘들어? 나 벌써 땀나!!
 
-원래 겨울에도 땀 왕창 흘리는 게 보드야
 
뭐 그 정도라고? 샤오잔은 갑자기 급 후회감이 몰려왔다. 나 더위 많이 탄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나 놀리냐 왕이보? 아니지. 내가 먼저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무슨 생각하냐 샤오잔.
 
이래저래 머리를 흔들어가며 고민하면서 보드 위에 왼발로만 버티고 있는 샤오잔.
 
너무 서 있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샤오잔의 두 발을 보드 위에 다 올려놓게 만든 다음, 살짝살짝 밀어주는 왕이보.
 
-야야, 왕이보 나 아직 무서워
 
-괜찮아, 절대 안 넘어져
 
왕이보는 샤오잔의 허리와 어깨를 잡아서 살살 밀어준다.
 
-샤오잔, 왼쪽으로 돌 때는 몸을 좀 더 틀어. 아예 나한테 기댄다는 느낌으로 몸을 내 쪽으로 눕혀봐
 
이미 보드는 움직이고 있고 왕이보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긴 샤오잔은 왕이보의 주문대로 커브를 틀 때마다 방향에 맞춰 왕이보 쪽으로 눕혔다.
 
확실히 몸의 방향을 눕히거나 틀어서 주행하면 커브가 잘 돌았다. 몸의 방향을 딱딱하게 정면만 보게 하면 커브가 틀어지지 않았다.
 
샤오잔은 생각보다 매우 미끄러운 보드 위에 중심을 잡느라고 긴장했다. 브레이크가 따로 없어 무서움이 더해졌다. 긴장과 무서움이 뒤범벅되자 이내 땀이 한 바가지 나왔다.
 
더워서 교복 위에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던졌다.
 
-하아. 왕이보, 나 더워. 이제 그만하자. 나 아까 정신 다 차렸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입을 삐죽 내미는 샤오잔이 안쓰럽기도 하고 피곤한 애를 붙잡고 갑자기 보드를 태워버린 것이 내심 미안하기도 해서 왕이보는 또 다시 샤오잔의 머리를 흐트렸다.
 
‘얘는 가끔… 리트리버 머리 만지듯이 내 머릴 헝클어트리네?’ 샤오잔이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아까 먹던 커피우유가 눈앞에 다가왔다.
 
-오늘 고생했어. 근데 너 겁 너무 많아. 보드 계속 탈 수 있을까?
 
왕이보가 건넨 커피우유를 냉큼 받아 몇 모금 삼킨 샤오잔은 냉큼 왕이보의 걱정을 되받아쳤다.
 
-할 수 있어. 탈 수 있어. 탈꺼야!! 무서운데 너무 재밌어!!! 헤헤
 
해사하게~ 웃으며 ‘보드 너무 재밌어’ 라고 말하는 샤오잔이 제법 귀여운 왕이보는 샤오잔의 어깨를 툭툭 건드릴 뿐이다.  
 
 
 
그 후로 왕이보와 샤오잔은 주로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 시간에 보드를 탔다.
 
샤오잔은 왕이보와 함께 보드를 타거나 농구를 했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다들 보드를 탈 줄 알았던 탓에 샤오잔이 구석에서 보드를 타면 왕이보의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샤오잔을 가르쳤다.
 
노즈에 왼발을 올려 비벼서 발의 모양을 바꾸는 방법이라든가, 테일에 발을 올릴 때 어느 각도가 좋은 것인지 등등 매우 기초적인 것부터 여러 잡기술을 왕이보의 친구들이 틈틈이 알려줬다.
 
그러다 종종 왕이보는 샤오잔을 인적이 드문 공간으로 데려가 주행 연습을 시켰다.
 
여전히 주행을 겁내 하는 샤오잔은 보호대를 차고 있어도 왕이보가 허리나 어깨 등을 붙잡아 줘야 안심했다.
 
-내가 맨날 이렇게 잡아 주면 너 실력 안 늘 텐데~?
 
-아! 그래도 어떻게 해! 너무 무섭다고!!!!!
 
보드 위에서 빽~ 소리를 지르는 샤오잔이 민망한지 웃어버리자 왕이보도 따라 웃었다.
 
-너 여기서 혼자 와봐. 내가 여기 서 있을 께
 
샤오잔을 혼자 남겨두고 먼발치 떨어진 왕이보는 크게 손짓했다.
 
-천천히, 중간에 서도 괜찮아. 내가 있는 곳까지, 끝까지 와봐!!
 
왕이보가 소리치자 샤오잔은 결심한 듯 턱을 바싹 당기며 고개를 끄덕 거렸다.
 
쭈뼛쭈뼛 처음 시작부터 스텝이 엉키고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왼발을 노즈에 놓고 오른발을 굴려 가며 살살 움직였다.
 
오른발로 땅을 몇 번 굴리다 속도가 붙고, 중심도 잡히는 것 같아 테일에 오른발을 올렸다.
 
두 발이 모두 보드 위에 올라갔다는 것만으로 샤오잔은 해냈다는 뿌듯함에 해실해실 웃음이 났다.
 
점점 왕이보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돌을 밟았는지 꿀렁~하는 느낌에 그만 중심이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중심이 뒤로 밀려날 것 같으면 억지로 몸을 앞으로 당겨!’라고 수차례 왕이보가 주문처럼 말한 것이 퍼득 떠올랐다.
 
몸을 살짝 앞으로 당기자 중심이 다시 잡혔고 그 순간 왕이보와 더 가까워졌다.
 
-왕이보 내가 해냈어!!!
 
샤오잔은 기쁜 나머지 두 팔을 활짝 벌려 왕이보쪽으로 주행하다 결국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는데... 아뿔사. 왕이보 위에 그대로 넘어지고 만 샤오잔.
 
-으으~ 왕이보 괜찮아? 미안해
 
놀라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샤오잔은 느릿느릿 왕이보한테 벗어나 일어나려 했다.
 
-야, 너 진짜 무슨 새처럼 날았다? 너 그거 모르지?
 
왕이보는 샤오잔을 놀리면서 샤오잔의 허리나 어깨, 등을 찬찬히 쓸어 만졌다.
 
-샤오잔 어디 안 다쳤어? 이래서 헬멧도 써야 되는 건데…
 
-응, 나 괜찮아. 그러니깐 그만 만져!!
 
-어, 그럼 빨리 일어나서 나 좀 일으켜줘…
 
샤오잔은 벌떡 일어나 무릎이나 팔목 같은 곳을 움직여 봤다. 어디 아픈 덴 없는 듯하다.
 
누워서 샤오잔의 모습을 살피던 왕이보는 피식 웃으며 ‘야 나 빨리 일으켜줘’라며 어리광을 피웠다.
 
-알았어~ 있어 봐~
 
왕이보의 손을 잡고 살살 일으켜주는 샤오잔. 왕이보도 어디 다친 곳은 없었다. 툴툴 흙먼지를 털어내는 왕이보가 머리카락에 붙은 흙먼지는 털지 않자 샤오잔이 왕이보의 머리칼을 흐트렸다.
 
-여기 흙 좀 묻었어… 야 근데 왕이보 너 머리숱 겁나 많다, 우와~
 
샤오잔이 손가락을 더 깊숙이 넣어 왕이보의 머리칼을 이리저리 흩트렸다. 신기하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싶고, 자신이 넘어지는 바람에 같이 넘어진 왕이보에게 미안해 애교를 피우듯이 더 머리칼을 헤집어 놓았다.
 
왕이보는 ‘그만해~’라고 말만 할 뿐이지 샤오잔의 장난을 그대로 받아주고 있었다.
 
샤오잔은 장난이 다 끝났는지 머리칼에서 손을 빼낸 뒤에 다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었다.
 
-오늘은 그만하자… 나 이제 집중력 다 떨어졌어
 
샤오잔이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왕이보가 보드 위에 타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샤오잔을 그냥 말 그대로 보드 위에 태웠다. 아빠다리를 하게끔 한 뒤 손은 자기를 잡으란다.
 
그렇게 샤오잔은 보드위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고 왕이보는 샤오잔의 손을 잡아 마치 카트 끌 듯이 샤오잔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있었다.
 
샤오잔은 속으로 생각했다.
 
-왕이보 손 진짜 크다… 그리고 되게 따뜻하다.

‌

3편: 결국 깨닫게 된 마음 
 
 

‌속절없이 시간을 흘러 벌써 중간고사 기간이다. 5월이라 날씨도 좋고 행사도 많은데 무슨 큐브 안에 갇혀서 오로지 입시라는 과녁에 모든 걸 내 던진 말처럼 달리기만 하는 기분이다.
 
왕이보의 보드강의는 ‘일단 멈춤’ 단계다.
 
샤오잔은 중간고사 기간이라 왕이보와 함께하는 보드 강습가 잠시 멈췄다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왕이보의 손!! 손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손을 잡아주고 자세를 잡아주기 때문에 왕이보와의 스킨쉽은 당연했다. 그런데… 샤오잔이 왕이보의 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샤오잔이 크게 넘어진 그날, 샤오잔을 보드 위에 앉혀 놓고 샤오잔의 손을 잡고 보드를 끌고 가던 왕이보.
 
분명히 그때 왕이보의 손이 크다는 것과 왕이보의 손이 따뜻하다고 느낀 그 날.
 
샤오잔은 이상하게 집에 가서도 ‘어… 왕이보 손 되게 크고, 또 되게 따뜻하다…’ 이것만 수없이 되뇌었다.  
 
샤오잔은 학교에서도 왕이보와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그의 손에 정지화면처럼 모든 동작이 멈춰버릴 때가 있다.
 
따뜻한 왕이보의 손. 이 생각에 미치자 샤오잔은 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자꾸 왕이보 손이 신경 쓰이지?
 
친해지고 싶었던 왕이보와 친해지고 난 뒤, 레고나 레이싱에도 관심이 많다던가, 자신처럼 외동아들이라던가, 어머니 음식솜씨가 매우 좋다던가 하는 소소한 것을 알게 됐다.
 
 
 
친해질수록 즐겁고, 왕이보랑 더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데, 계속 요즘 걸리는 한 가지가 있다면 왕이보의 손이다. 실컷 재밌는 농담을 하다가도 눈길이 왕이보 손에 닿으면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크고 따뜻한 그녀석의 손.
 
-왕이보 손이 엄청 컸지. 도에서 솔까지 닿을 것처럼... 그게 부럽나?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복도를 걷던 샤오잔 뒤로 몰래 따라와 놀래키려고 준비 중이던 왕이보는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내 손이 부러워?
 
-엄마 깜짝이야!!!!!!!
 
들고 있던 물감통을 그대로 왕이보쪽으로 던지는 바람에 왕이보와 복도가 물감 빨은 물로 아수라장이 됐다.
 
-야!!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아니 너 걸어가는 거 보고 놀래주려고…
 
물을 다 뒤집어쓴 왕이보가 얼굴에 묻은 물을 오른손으로 쓱쓱 닦아 냈다.
 
-그래서… 내 손이 부러워?
 
아무래도 방금 했던 말을 왕이보가 들었나보다. 샤오잔은 금새 민망하고 부끄러워져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아!! 아니!!… 그… 너 손 크니까!! 도에서 솔까지 닿을 거 같아서 부럽다는 뜻이야!!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팩 돌려 말하자 왕이보가 크게 웃었다.
 
-야!! 샤오잔 너 진짜 그거 부러웠어? 난 그냥 하는 말 인 줄 알았는데. 너가 진짜 부러워서 하는 말인 줄은 몰랐네~  
 
가지런한 이를 내보이며 크게 웃는 왕이보가 즐거워 보인다. 이상하다. 얘가 웃으니깐 내 기분이 좋다.
 
샤오잔도 따라 같이 활짝 웃어 보였다.
 
-넌 뭐…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또..또… 잘생겼고 인기도 많고…
 
두서없이 갑자기 왕이보의 장점을 나열해대는 샤오잔의 모습을 보다가 왕이보는 또 그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미자막에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준다. 다섯 살 조카 머리 쓰다듬듯이.
 
잉? 나 진짜 리트리버 대용인가? 뜬금없는 생각을 하다가 샤오잔을 머리를 붕붕 좌우로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왕이보 너 장점 많아서 부럽다고…
 
-샤오잔 너도 인기 많잖아.
 
-엥? 나 인기 많아? 누구한테?
 
-여자애들한테도 많고… 선생님들도 다 너 좋아하고…
 
이래저래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왕이보도 두서없이 꺼냈다.
 
-너 합창부 하느라 1학년 때부터 학교 행사 대표로 공연하고 그랬잖아. 나 너 2학년 때 독창한 것도 기억나. 노래 엄청 잘 부르잖아. 거기다가 잘생겨서 학교 모델도 했고…
 
-응~ 그래 맞어. 그건 맞아. 나 학교 모델했지… 어?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샤오잔은 지난해 학교 모델을 한 적이 있다.
 
급하게 학교 모델이 필요하다며 합창부 선생님의 부탁을 받은 샤오잔.
 
전국 교육청에만 비치될 비공개 학교 홍보물에 학교 모델이 필요하다는 요지에 샤오잔은 잠시 사진 촬영에 임했었다.
 
일반 학생들이 볼 수 있는 홍보책자가 아니라서 일부러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었다.
 
근데, 그걸 알고 있다고?
 
-아니… 나 학급 회장이니깐… 건너, 건너 들었어. 그때 홍보 모델 너로 정해졌다고
 
-아~ 난 또!! 근데 그거 조금 민망하니깐 다른 애들한테는 말 하지 마!! 알았지?
 
샤오잔은 왕이보에게 약속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약속해달라고 하자 왕이보는 웃으며 손깍지를 걸었다.
 
-아무튼, 너도 잘생겼고… 인기 많고, 또 노래 잘 부르고 그림 잘 그리잖아…
 
-응 그래서? 그래서 그게 왱??
 
-아니… 나도 너 부럽다고… 그런 예술적인 기질이
 
-아~ 진짜? 너 나 그림 그리는 거 부러워?
 
-뭐 가끔씩 나도 노래도 잘 부르고 싶고 그림도 막 그려보고 싶은데… 너만큼은 안 되는 것 같아
 
-에이 단정 짓지 마! 관심 있으면 실력도 늘어날 거야~
 
샤오잔은 왕이보가 자신을 추켜세우듯 말하자 어깨가 으쓱하며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왕이보의 팔에 자신을 팔을 두르며 자연스럽게 미술실로 걸음을 옮겼다.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끌려가는 와중에 자신도 어릴 때 미술학원에 다녔다며 쫑알쫑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도 초등학교 때 엄마가 미술학원 다니라고 해서 1년 정도 다녔어
 
-진짜? 어때? 그 정도면 어느 정도 기본기는 다 있겠는데?
 
-아냐~ 그땐 어린이 미술정도만 배웠어. 물감놀이, 촉감놀이, 그리고 데생 정도
 
-데생만 해도 기본기 절반은 익힌 거지 모~
 
-근데… 역시 난 좀 그쪽으론 재능이 안 느는 것 같아~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두 사람은 미술실에 도착했다.
 
-왜 나까지 여기로 데려왔어?
 
왕이보가 궁금해서 물었다. 샤오잔은 아무 말 없이 왕이보의 팔을 더 세게 잡아 부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오늘은 내가 너 그려줄게. 요즘 인물화 안 그렸더니 감을 잃었어. 자자. 여기 앉아
 
자신의 이젤 앞에 의자를 놓더니 무턱대고 왕이보를 앉혔다.
 
-넌 코가 엄청 높고 턱선이 날카로우니까 옆모습이 멋있겠다. 조금 비스듬히 앉아봐 이보야~
 
순순히 샤오잔의 요구대로 비스듬히 앉은 왕이보는 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나 오늘 모델하라고? 야 샤오잔!! 이러고 대체 몇 시간 있어야 하는데???
 
샤오잔은 당황하는 왕이보의 모습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그렇게 오래 안 걸려… 대략적인 스케치만 하고 디테일은 사진 찍어 놓은 걸로 그리면 돼~
 
약간 애교 있게 대답하곤 ‘그대로 있어 봐! 사진도 한 장 찍을게!’라며 자신의 핸드폰으로 왕이보의 옆모습을 찍는 샤오잔.
 
찰칵찰칵 소리가 날 때마다 미술실 창가 쪽에서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오니 하늘거리는 커튼이 날려서 왕이보에게 드리웠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마치 일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샤오잔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꿈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랜덤으로 틀어 놓은 음악은 처음엔 신나는 아이돌 음악이 나오다가 어느새 집중할 때 듣던 클래식 음악으로 넘어가 잔잔하고 조용한 공간이 됐다.
 
한 시간 가까이 스케치가 이어지자 왕이보는 어느새 눈을 감고 턱을 깊게 떨구고 있었다.
 
‘잠 들었나?’
 
클래식 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이 반복되면서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왕이보도 결국 설잠에 들었나보다.
 
허리와 어깨가 경직되어서 아플 것 같아 슬슬 스케치를 마무리 짓고 왕이보를 깨우려던 샤오잔.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잡아 흔들려다 말고 샤오잔은 천천히 왕이보의 얼굴을 관찰했다.
 
잠자는 왕이보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 그리고 이렇게 유심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치곤 하얀 피부, 큰 눈이지만 어딘가 서늘한 눈매, 높은 콧대,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얼굴 분위기에 안 맞게 앵두 같은… 입술???!!!
 
갑자기 샤오잔이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왜 입술 끝을 보고 심장이 뛰지?
 
자신도 모르고 놀란 샤오잔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손으로 본인 입을 막았다.
 
뭐지? 어쩌지?
 
왜 당혹스러워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들킨 것 같은 초조함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샤오잔은 조심스럽게 미술실 앞문을 열고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화장실에 도착하고 살금살금 문을 닫고 혼자만의 공간이 확인되자 그제야 ‘후아~’하며 숨을 내뱉었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지금 가장 혼란스러운 건 자신이 왜 이렇게 심장이 떨리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왕이보 앵… 앵두 같은 입술에 너무 놀랐나? 앵두.. 아니 뭐 사람 입술이 자두만큼 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 어!! 복숭아 같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앵두가 적당하지 뭐!!
 
이래저래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답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샤오잔.
 
세면대에 물을 틀어 놓고 급하게 ‘어푸어푸’ 세수를 해보는 샤오잔.
 
수돗물이 콸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준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샤오잔은 두 뺨을 양손으로 톡톡 치며 어수선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원래도 왕이보 잘생겼다고 대 놓고 친구들한테 이야기하면서 감탄한 적도 있었는데 뭐! 왕이보가 잘생겨서 새삼 내가 부러워서 이래. 암!! 그렇고 말고!!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좋고 잘생긴 왕이보!! 그래! 나랑 정 반대 성격인 왕이보!! 부러워서 내가 이러는 거야!! 암!!
 
샤오잔은 필사적으로 동경하는 연예인 보는 심정으로 왕이보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떨림은 그 연예인을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치부했다. 그래야 지금 제 기분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심호흡을 하고, 샤오잔은 휴지로 손과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냈다. 하도 세수를 박박 소리가 날 정도로 새게 했더니 앞머리도 다 젖었다.
 
젖은 앞머리는 휴지로 비벼보았지만 다 마르진 않았다.
 
그대로 머리를 훌훌 털면서 다시 미술실로 향한 샤오잔.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으니 왕이보는 아직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이미 깨어나 샤오잔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오잔과 눈이 마주친 왕이보는 근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림 다 그린 거야? 아직 덜 완성된 거 같은데?
 
샤오잔은 아직 미완성인 그림이 들킨 게 못내 민망해서 얼른 자신의 스케치북을 안 보이게 덮어버렸다.
 
-당연히 아직 완성 안 됐지. 내가 다 완성되면 꼭 보여줄게.
 
어색하게 웃으며 왕이보의 시선에서 자신의 그림을 거둬 가버렸다.
 
-알았어~ 꼭 완성되면 나 보여줘? 완성되면 나 선물로 주기다?
 
왕이보가 나름의 애교 섞인 말로 샤오잔에게 보채자 샤오잔은 볼을 붉히며 알았다고 답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그림을 선물로 달라고 애교부리기는 왕이보가 처음이다.
 
샤오잔은 속으로 ‘대충 그리면 실망하겠지?’ 라며 은근한 압박에 입술만 질끈 깨물었다.
 
왕이보는 계속 앉아 있어서 뻐근하다며 샤오잔에게 음료수를 사 달라고 했다.
 
빠르게 화구를 정리하던 샤오잔은 매점에서 쏘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답했다. 왕이보에게 대답하면서 샤오잔은 익숙하게 미술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술실 창문을 닫고 불을 끄자 왕이보는 먼저 복도로 나가서 샤오잔을 기다렸다. 정리가 끝난 샤오잔이 미술실 문을 ‘탁’하고 닫자 왕이보는 대뜸 물었다.
 
-근데 왜 앞머리가 젖어있어? 땀 흘렸어?
 
왕이보가 의아한 듯 물어오자 샤오잔은 난감했다.
 
-아.. 아니, 원래 나 이 시간이면 비몽사몽이잖아. 그래서 화장실에서 세수 좀 했어
 
샤오잔이 민망해하며 웃어보이자 살며시 왕이보가 그 큰 손을 들어 샤오잔의 앞머리를 흩트렸다.
 
-아직 많이 젖었어~ 감기 걸릴라~
 
왕이보는 샤오잔의 앞머리를 흩트리다 풍성한 뒷 머리칼에도 손을 쓱 넣어 흩트리듯 만졌다.
 
머리를 흩트리던 손은 다시 머리를 정리해주는 것처럼 쓱쓱 쓰다듬더니 이래 본래 있던 왕이보의 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잠깐, 나 화장실만 금방 다녀올게. 먼저 매점 가 있어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매점에서 만나자며 화장실 안으로 사라졌다.  
 
왕이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샤오잔은 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번엔 진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다.
 
왕이보의 그 큰 손.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손. 항상 신경이 쓰이던 그 손.
 
기분이 좋으면 항상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머리칼을 흩트리던 그 손.
 
말 한마디 없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면 항상 기분이 좋았던 샤오잔.
 
그래… 난 왕이보의 손이 좋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왕이보가 좋아…
 
그래, 난 왕이보가 좋아..

‌

4편: 결국 친구를 잃었다 
 
 

‌왕이보는 최근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생겼다. 샤오잔이 자신을 피하는 것이다.
 
왕이보가 샤오잔에게 말을 걸기 전까진 샤오잔은 절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분명 인물화 모델을 해 주고 나서부터 샤오잔은 자신과 거리를 뒀다.
 
웃긴 농담을 던지면 ‘푸하하’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웃어주지만 무언가 적극적이게 대화를 이어나가질 않는다.
 
그리고 틈틈이 짬을 내서 타왔던 보드도 더 이상 타지 않았다.
 
왕이보는 물론이고 왕이보의 친구들과도 친해진 샤오잔. 왕이보 말고 다른 친구들이 같이 보드를 타러 나가자고 해도 ‘나 이제 보드 안 탈래, 아직 무서움을 극복 못했어. 미안~’이라며 기운 빠지는 소리나 해댄다.
 
영~ 못 미더운 소리지만 본인이 타기 싫다는 데 계속 강요하기도 난처한 입장이다.
 
고3은 여름방학도 없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곧바로 여름방학을 맞았지만 모두 다 같이 학교에 나왔다.
 
하지만 샤오잔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입시 미술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 달간 보지 못했더니 개학 후 왕이보와 샤오잔은 더 거리감이 생겼다.
 
sns나 단톡방에서 종종 샤오잔이 자신의 흔적을 나타냈지만 거기서 끝이다.
 
왕이보가 개인적으로 안부를 물어도 성의 없는 대답만 할 뿐이지 예전처럼 대화가 이어가지 않았다.
 
왕이보는 답답했다. ‘얘가 왜 이러지? 원래 예술적 기질이 많아서 기복이 좀 심하가?’ 나름의 편견까지 씌어가며 샤오잔을 이해해보고 싶은 왕이보다.
 
왕이보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토끼같은 앞니를 내세워 쫑알쫑알 떠들어 대던 샤오잔이 지금은 그저 엎드려 누워만 있다.
 
답답하다. 왕이보는 ‘나한테 화났냐’고 다짜고짜 물어보고 싶은 심경이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한 번씩 왕이보와 웃고 떠들기도 하는 샤오잔 때문에 ‘샤오잔식 거리두기’를 공론화하기도 애매하다.  
 
여름방학이 끝났다고 해서 여름이 끝난 건 아니었다. 9월이라도 날씨는 여름처럼 후덥지근했고, 더위에 지쳐 왕이보는 매점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그러다 더위에 찌들어 있을 샤오잔이 떠올라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구매했다.
 
분명 이 시간이면 미술실에 있을 타이밍이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예전에 미술실에서 봤던 여학생 두 명이 복도 쪽을 걸어오고 있었다.
 
-어, 저기…
왕이보가 샤오잔이 미술실에 있냐고 물어보려던 차에 두 여학생이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간다.
 
-야 샤오잔 스트레스 진짜 심한가 봐, 계속 얼굴도 찌푸리고 있고 대화도 잘 안 하고…
 
-맞어, 어제는 아예 스케치북 끌어안고 엎어져 있던데~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훌쩍이기더라고
 
-뭐? 샤오잔 울었어?
 
-몰라, 코를 훌쩍이던데?
 
무심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이보는 샤오잔이 울었다는 소리에 머리가 멍해졌다.
 
울어? 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답답한 가슴과 달리 걸음은 빠르게 움직였고 미술실에 혼자 있는 샤오잔을 발견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샤오잔을 방해할까 봐 살며시 뒷문을 열고 들어 간 왕이보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평소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샤오잔과는 달리 이젤에 머리를 콕 박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건가? 미동 없는 샤오잔을 보다가 이젤로 눈길을 옮긴 왕이보는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젤엔 왕이보의 초상 스케치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뒷걸음으로 미술실을 빠져나온 왕이보는 당혹스러웠다.
 
심장이 심하게 쿵쾅대는 것이 귀를 시끄럽게 했다. 마치 귀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두근거림이 심했다.
 
‘아직도 인물화 그리는 거 보면, 감 떨어졌다더니 스트레스가 상당한가 봐…’
 
왕이보는 아직까지 인물화를 완성하지 못한 샤오잔이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졌다.
 
안쓰러운 샤오잔. 예민하고 내성적인 구석이 있어서 분명 힘든 일 있으면 혼자 해결하려 들 것이다. 왜냐면 왕이보 자신도 샤오잔과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여간 친분이 있는 친구가 아닌 이상 별로 속 이야기를 꺼내질 않는다. 그냥 운동으로 풀거나 게임을 왕창 하면서 스스로 기분을 정화시킨다.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비워버려야 하는데, 샤오잔은 아직 스트레스 푸는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얼마나 답답할까. 안쓰러운 샤오잔.
 
왕이보는 샤오잔이 최근 입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 결국 스스로를 파고들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안쓰러운 샤오잔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순간 안아주고 싶었다.
 
샤오잔의 비스듬한 어깨를 돌려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샤오잔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고 싶었다.
 
샤오잔을 안아서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샤오잔에게 보드를 가르쳐주던 순간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보드를 타고 주행하는 걸 무서워하던 샤오잔을 위해 왕이보는 샤오잔의 허리를 받쳐주고 어깨를 잡아서 주행을 도왔다.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던 샤오잔의 얇은 허리라던가, 쉽게 뼈가 만져지던 어깨라던가, 샤오잔의 은은한 향수라던가…
 
그러니까 이게 왜 갑자기 훅 떠오르면서 심장이 빨리 뛰냐고!!!!
 
왕이보는 이렇게 다각적인 감정이 일렁이는 순간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마치 중학교 때 처음 좋아했던 여자친구한테 느꼈던 두근거림이랑 같은 종류였다.
 
그땐 좀 간질간질하고 풋풋한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좀 더 묵직한 두근거림이다.
 
자신을 외면하는 샤오잔에게 왕이보는 답답함과 서운한 감정이 생긴다. 그런데 이 감정이 좀 더 다른 쪽으로 가지를 뻗는다.
 
예를 들면, 왕이보를 외면하는 샤오잔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욕심… 다시 왕이보에게 무해하게 웃으며 토끼앞니를 보여주던 그때로 돌리고 싶은 마음…
 
욕심… 욕심… 몇 달 전의 샤오잔으로 되돌리고 싶은 욕심… 이건 마치 소유욕 같은 거였다.
 
 
 
 
2학기 중간고사가 지나자 왕이보나 샤오잔은 거의 웃음을 잃었다. 각자가 좋아하던 취미생활도 싹 접었다. 오로지 수능 타이머에 모든 일정을 맞춰서 기계처럼 공부만 열중하는 마의 구간에 접어든 것이다.
 
샤오잔에 대한 울렁거리는 감정들을 정의내리지도 못한 가운데 왕이보는 수능 타이머를 빠듯하게 돌리고 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은 샤오잔과는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말 한 마디 못 나눴다.
 
답답한 마음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왕이보는 저녁 시간에 매점에서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사 들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 벤치에 앉아 숨을 크게 들어 마시니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지는 기분이었다.
 
봉지로 포장된 빵을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펑’소리가 들리면서 입구가 열렸다.
 
빵 한 입을 뜯어 먹고 우유에 빨대를 꽂아 쪼옥~ 소리가 나도록 빨아 마셨다.
 
달콤한 빵과 담백한 우유가 몸에 들어오니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맛을 음미하고 있던 왕이보는 갑작스런 인기척에 감았던 눈을 떴다.
 
샤오잔이 앞에 서 있었다.
 
-어? 샤오잔...
 
놀란 왕이보는 샤오잔의 이름을 불렀지만 샤오잔은 따로 대답이 없었다.
 
-샤오잔… 저녁은? 여긴 어쩐 일이야?
 
조심스럽게 샤오잔의 안부를 물어보는 왕이보.
 
그런 왕이보를 말없이 바라만 보던 샤오잔은 ‘이거…’하면서 둘둘 말려있는 종이 하나를 건넸다.
 
-아… 이게 뭐야?
 
의아함에 종이를 받아 든 왕이보는 말려진 종이를 순식간에 촤르륵 펼쳤다.
 
거기엔 지난번 샤오잔이 스케치하고 있던 왕이보 자신이 그려져 있었다.
 
-너가… 완성되면 선물로 달라며
 
나직히 말하는 샤오잔은 풀이 죽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안쓰러운 샤오잔… 또 다시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고마워, 엄청 잘그렸네~ 기분 좋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니 사실, 풀이 죽은 얼굴로 그림을 건네오는 안쓰러운 샤오잔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이기엔 샤오잔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꼭 더 이상 말을 건네면 울 것 같았다.
 
왕이보는 손에 들고 있던 그림을 벤치에 내려놓고 샤오잔의 손을 살짝 잡았다.
 
-괜찮아? 요즘 입시 때문에 많이 힘들지?
 
왕이보가 부드럽게 말을 건네자 샤오잔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당황한 왕이보는 얼른 손을 들어 샤오잔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하지만 왕이보의 손을 쳐낸 샤오잔이 자기 손으로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그리곤 씨익 웃어 보였다. 웃는 샤오잔이 왜 이렇게 힘들어 보일까... 왕이보는 찰나에 샤오잔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샤오잔은 감정을 다스리려고 ‘어, 음, 흠, 그게, 저~’이렇게 운을 떼다가 결심한 듯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왕이보, 나랑 새해 첫날에 같이 해 뜨는 거 보러 가자.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새해 일출을?
 
왕이보는 의아해했지만 샤오잔은 그런 내색을 비추는 왕이보를 무시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1월 1일이면 우리 수능도 끝나고 조금은 홀가분할 테니까, 그때 우리 만나자
 
-일출 말하는 거지?
 
-응, 우리 그때 해 보면서 소원 빌자
 
-… ….
 
-알았지? 약속했다? 우리 그때 오랜만에 농구도 하고 보드도 타자!
 
왕이보는 샤오잔의 일방적인 약속이 황당하다. 갑자기 일출?
 
오랜만에 말을 걸어오더니 대뜸 왕이보의 초상화를 건넨 샤오잔.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왕이보에겐 대뜸 새해 일출을 보러 가자고 약속을 잡아버리는 샤오잔.
 
하지만 뭔가 더 물어보기도 전에 샤오잔을 빠르게 손 인사를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빠르게 걸어가는 샤오잔을 바라보며 왕이보는 더 가슴이 답답해 졌다.
 
그리고는 인정해야 했다.
 
안쓰러운 샤오잔… 아니, 샤오잔을 좋아하는 내 안쓰러운 마음…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위로받고 싶어졌다.
 
샤오잔… 널 좋아해.
 
 
왕이보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친구를 잃었다. 

‌

5편: 있잖아, 사실은… 
 
 

‌왕이보를 좋아한다고 인정한 순간부터 샤오잔은 순간순간이 시련이었다.
 
교실에선 바로 뒤에 앉아 있는 왕이보, 몸을 조금만 틀면 얼굴이 보이는 왕이보, 학급 회장이라 항상 교실 앞에서 전달 사항을 전하는 왕이보.
 
이 외에도 우수한 성적 탓에 툭하면 선생님은 왕이보를 불러 문제를 풀게 하거나 혹은 읽게 하거나, 과제를 발표하게 했다.
 
그런 왕이보를 지켜보는 샤오잔은 거의 울상이었다. 왕이보를 볼 때면 계속 좋아하는 마음이 흘러넘쳐서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얼굴을 보지 말자! 쉬는 시간이든 왕이보가 발표하는 타이밍이 되면 얼굴을 푹 숙이고 엎드려 있기로 한 샤오잔.
 
그러면 뭐해!! 귀는 마치 소머즈처럼 왕이보 목소리만 쏙쏙 골라 듣는데!!!!!
 
게다가 가끔씩 왕이보가 안부를 물어보거나 농담을 걸어올 때면 힘없이 같이 웃어주거나 대답했다.
 
‘왕이보, 너 이러는 게 더 나 힘들게 하는 거 알아 몰라’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더 웃긴 건 시간이 지날수록 왕이보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아니, 예전처럼 놀지도 않고 마주치지도 않는데 왜 자꾸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는 건데!!!
 
혼란스러운 샤오잔은 여름방학 때도 입시 미술 학원에 가겠다며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참고로 샤오잔은 중간정도의 성적이라 수능 공부도 중요했다.
 
하지만 입시 미술에 더 중점을 두겠다며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을 설득해 고3 여름방학을 학교 밖에서 보냈다.
 
여름방학 동안 왕이보를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결국 지난번 왕이보의 사진을 찍어뒀던 사진첩에 수시로 손이 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사진첩에서 왕이보 사진을 보면서 이리저리 키워서 보기도 하고 다시 작게 만들어서 보기도 하고, 아주 사진 한 장으로 요리저리 다 뜯어보면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사실 방학 전에는 샤오잔이 거리를 둬도 왕이보가 가끔씩 말을 걸어왔지만 여름방학 이후로는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게 됐다.
 
아무래도 어색한 기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친구 사이도 멀어지게 된 것 같다.
 
그래, 이렇게 서로 교류가 없어지면 좋아하는 마음도 점점 없어질 거야.
 
샤오잔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중간고사 기간을 보냈다.
 
샤오잔의 중간고사 성적은 비참했다. 중상위권이던 샤오잔이 아예 중하위권으로 밀려난 것이다. 게다가 그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은 계속 샤오잔의 방황이 걱정스러워 몇 차례 다그치기도 하고 위로와 격려를 말을 전하기도 했다.
 
슬슬 자기 자신이 비참해 지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그것도 고3인 이 중요한 시기에!!!
 
한 번도 앓아본 적 없는 사랑의 열병인지 염병인지를 앓고 있느냐고!!!
 
억울하다. 그런데 어디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샤오잔은 그냥 딱 죽고 싶은 심정이다.
 
후에엥!!!!!!!
 
소리지르면서 울고 싶지만, 그냥 코만 훌쩍일 뿐이다.
 
-샤오잔, 괜찮아? 너 혹시 울어?
 
같은 미술부원이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아냐, 나 감기 걸렸어. 방해했다면 미안해~
 
라며 능청스럽게 웃어 보이는 샤오잔…
 
하지만 미술부 분위기를 자기가 망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오잔은 계속 접어놓고 손대지 않았던 왕이보의 초상화를 꺼냈다.
 
완성해서, 왕이보에게 주는 거야. 그리고 그때 내 마음도 함께 전해주는 거야!
 
 
 
 
 
 
운동장 벤치에 혼자서 빵을 먹고 있는 왕이보에게 샤오잔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제 마음이 조심스럽기 때문에 걸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샤오잔.  
 
두 눈을 감고 있는 왕이보를 본 순간, 샤오잔은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 순간 눈을 퍼득 뜬 왕이보가 적잖이 당황해했다.  
 
하긴, 요 몇 달 동안 한 마디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오도카니 서 있는 자신을 보고 왕이보도 놀랄 수밖에.
 
샤오잔은 왕이보에게 자신의 그림을 건넸다.
 
왕이보는 조금 기대에 찬 얼굴로 말아져 있는 종이를 펼쳤고, 완성된 자신의 초상을 확인한 순간 묘하게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샤오잔의 손을 잡아 오는 왕이보가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왔다.
 
따뜻하고 다정한 왕이보의 손이 자신을 잡아 오자 또 다시 마음이 울렁거린다.
 
‘아니, 안 괜찮아… 왕이보 나 너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도 안 괜찮아’
 
투정 부리는 말이 입 밖에로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절절한 고백도 마구 쏟아낼 것 같았다.
 
샤오잔은 갑자기 너무 서러워졌다. 짝사랑이 이렇게 아프고 용기가 필요한 줄 이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괜스레 눈물이 나오자 왕이보는 손수 샤오잔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다정한 손길에 또 울컥 고백할꺼 같아서 샤오잔은 왕이보의 손길을 쳐냈다.
 
오늘 꼭 말하고 싶었는데, 진짜 어렵다 고백.
 
샤오잔은 용기 없는 자신을 스스로 비약하며 엉뚱한 말을 꺼냈다.
 
-왕이보, 우리 일출 보러 가자… 그땐 수능도 끝나고 마음도 홀가분해 질테니까… 꼭 우리 일출 보면서 소원 빌자. 꼭!!!
 
왕이보가 덧붙여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일단은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냥… 이건 일종의 샤오잔식 고백이었다.
 
계속, 보고 싶어. 함께하고 싶어. 그게 언제든, 어디든, 무슨 일이든 간에.
 
그냥 너랑 있고 싶어… 예전처럼. 그러니깐 우리 새해에 만나자. 꼭.
 
 
 
 
 
 
 
1월 1일 새해다. 첫 일출 시각은 오전 7시 34분. 샤오잔은 버스를 타고 남산으로 갔다.
 
오전 일곱 시가 다 되어가도 날은 캄캄한 밤 같다. 매서운 추위는 두터운 점퍼 안으로 계속 파고들었다.
 
상당한 인파가 몰렸다. 샤오잔은 자의로 걷는 건지, 사람들이 밀고 있어 걷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남산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 해가 잘 보이는 자리와 함께 해를 잘 찍을 수 있는 자리를 명당으로 꼽았다.
 
샤오잔은 해가 보이기만 하면 됐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소원을 빌러 온 것이 아니다.
 
그냥 마음 놓고 울고 싶어서 온 것이다.
 
 
왕이보에게 초상을 선물한 날 이후로 둘을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따로 핸드폰으로 연락하지도 않았다. 남은 수능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샤오잔은 스트레스로 급성 위경련만 다섯 번을 겪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
 
그렇게 피 말리는 수능이 끝나고 결과는 비참했다. 목표했던 1지망 대학은 물 건너 가버렸다. 누구 잘못이겠는가. 샤오잔은 그저 마음을 제대로 못 잡고 흔들리기만 했던 스스로를 탓했다.
 
아쉬운 결과에 부모님도 안타까워 하셨지만 2지망으로 목표를 재설정하자 그래도 그동안 고생했다며 엄마는 샤오잔을 안아주셨다.
 
-엄마 미안해요… 후잉이이잉
 
샤오잔은 어린 시절 아이처럼 엄마 품에 안겨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냈다.
 
-아이코, 우리 애기가 진짜 다시 애기가 됐네?
 
엄마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샤오잔을 위로해 줬다. 샤오잔이 꼭 수능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건 아니라는 걸 엄마는 어렴풋이 알고 계신 듯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물어오지 않으시는 엄마의 배려가 샤오잔은 감사하기만 하다.
 
엄마, 사실 아들이 짝사랑 앓이를 심하게 했어요. 아니 아직도 하고 있어요. 그것도 상대는… 남자라구요.
 
이 말을 어떻게 하냐고… ….
 
수능이 끝나고 성적 확인 후 곧바로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샤오잔과 왕이보는 이때까지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둘은 계속해서 거리를 뒀다.
 
샤오잔도 의식을 해서 왕이보를 피했고, 왕이보도 의식적으로 샤오잔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남산에 올라 해 뜨는 방향으로 넋을 놓고 있던 샤오잔은 끝까지 거리를 두던 왕이보를 떠올리자 서러움이 북받쳤다.
 
그리고 아직도 이 마음이 쉽게 정리될 마음이 아니란걸 다시끔 깨달았다.  
 
왕이보… 같이 일출보자는 말, 분명히 까먹었겠지? 젠장… 그래도 기억하고 어제 연락이라도 줬으면 얼마나 좋아…
 
더 이상 집에서 눈물을 보였다간 정말 엄마가 각 잡고 무슨 일이냐고 추궁하실 것 같다. 아예 오늘 실컷 울어버리자고 마음먹자 눈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넘쳤다.
 
너무 서럽고 너무 좋았다. 이 짝사랑이. 왕이보가.
 
결국 입새에 짓이겨 지듯이 흘러 넘쳐버리면서 나온 이름
 
-흑… 왕이보….!!!
 
왕이보라고 나지막히 입밖으로 내뱉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려 세웠다.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지 입김이 한 가득이지만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왕이보였다.
 
 
 
 
 
 
 
-약속 지키러 왔어… 같이 일출 보자고 했잖아
 
왕이보가 띄엄띄엄 자신의 감정을 뱉어내듯 말했다.
 
어리둥절하다. 진짜 왕이보 맞아? 샤오잔은 울음을 뚝 그치고 자신의 뺨을 탁! 하고 때렸다.
 
놀란 왕이보가 샤오잔의 손을 가로챘다.
 
크고 따뜻한 손… 다정한 왕이보… 왕이보!!!
 
-왕이보 너!! 여길 어떻게!!
 
일방적으로 일출 약속을 정한 샤오잔은 깜빡한 것이 있었다. 장소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약속을 지킬 요량이었다면 왕이보가 샤오잔에게 어디서 만날 것인지 물어봤어야 했다.
 
그런데 1월 1일이 되는 지금까지도 어디서 만날 것인지 왕이보는 물어오지 않았다.
 
이에 샤오잔은 자신의 마음이 암묵적으로 거절당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 왕이보가 나타났다. 그것도 입 밖으로 조용하게 왕이보를 불러보는 순간에!
 
-나 남산에서 만나자고는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온 거야?
 
샤오잔은 정말 궁금했다. 얘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지? 사실 알고 보면 내가 장소를 말했나?
 
갖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쳤다. 토끼 같은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 차자 왕이보는 부드럽게 웃었다.
 
-샤오잔, 너 매년 1월 1일날엔 부모님 손잡고 남산에 해보러 간다며!!!
 
나한테 말해줬던 거 벌써 잊었냐면서 왕이보는 샤오잔의 콧잔등을 톡톡 두드렸다.
 
왕이보의 눈매가 휘어지면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아 정말 보고 싶었던 왕이보 특유의 ‘무장해제 웃음’이다.
 
또 눈물이 뚝뚝 흐른다. 가슴 한 켠이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왕이보의 웃는 모습에 위로받은 느낌이라 눈물이 흐른다.
 
입을 삐쭉 내밀며 ‘흠.. 으음.. 흠흠’ 목을 가다듬는 샤오잔을 보며 왕이보는 계속 샤오잔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샤오잔, 나 사실 고백할 게 있어
 
계속 샤오잔의 머리칼에 손을 넣고 흩트리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만지던 왕이보가 급고백을 해왔다.
 
-응? 어떤?
 
왕이보의 손길에 기분이 점차 나아지고 있던 샤오잔은 무방비한 상태로 왕이보의 고백을 들어야 했다.
 
-우리 그… 사진 있잖아
 
-사진? 무슨 사진?
 
-그… 우리 예전에 발표했던 사진 말이야
 
-발표? 어떤 발표?
 
-1학기 때 사회경제 발표 때… 썼던 유채꽃밭 사진 말이야
 
거의 1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왕이보에게 급 호감이 생기면서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그 사진!  갑자기 그 사진이 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큰 눈을 끔뻑끔뻑대는 샤오잔.
 
왕이보는 천천히 얼굴에 긴장을 굳혀가며 말을 이었다.
 
-그 사진 찍을 때 너 봤어
 
-어?
 
-그날 유채꽃밭에서 부모님이랑 사진 찍던 너를 봤다고
 
멍하게 듣고 있던 샤오잔이 잠시 왕이보의 말을 재정립 시키려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왕이보는 샤오잔이 유채꽃밭에서 부모님과 사진 찍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있었던 것?
 
-아~ 진짜? 그럴 수 있겠네. 현장에서 같이 있었으니깐 내가 부모님이랑 사진 찍는 거 봤을 수도 있었겠다 왕이보~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이미 같은 날, 같은 장소에, 같이 사진에도 찍힌 두 사람이기에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샤오잔… 그 유채꽃밭 사진, 너한테도 의미 있는 거라고 했지?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라서…
 
-응 맞아
 
샤오잔이 냉큼 대답했다.
 
-나도 의미 있는 사진이야 내가 찍은 유채꽃밭…
 
-아, 너도 그때 부모님이랑 가족여행 간 거라고 했지? 나도 그때 부모님이랑…
 
-너가 계속 생각났어
 
-… ….
 
대뜸 유채꽃밭 사진을 보면서 샤오잔이 생각났다는 왕이보.
 
-그때, 너가 사진 찍는데 되게 행복해 보였어. 엄마한테 장난치면서 애교피우는 모습이 무슨 강아지 같기도 하고… 너가 학교에서도 저렇게 웃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해맑게 웃는 거야. 근데 그걸 지켜보는 내가 나도 모르게 널 보면서 계속 웃고 있더라고… 그 순간이 신기하게도 기분이 너무 좋았어… 그래서 내가 그 사진을 좋아해 샤오잔
 
덤덤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왕이보는 상기된 표정을 아직 풀지 못했다. 고백을 이어갈 때만 해도 샤오잔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지만, 고백이 끝나자 갑자기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굴리기에 바쁘다.
 
오히려 샤오잔이 왕이보의 눈과 마주치기 위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할 지경이다.
 
-저기 샤오잔, 뭐라고 말 좀 해봐
 
-야 왕이보! 그 전에 눈 좀 마주쳐주라!! 피하지 말구
 
샤오잔이 멀뚱히 왕이보를 바라보자 옆으로 눈을 돌리던 왕이보고 슬쩍슬쩍 샤오잔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무슨 강아지가 사고치고 주인 눈치 살피는 그런 눈빛으로 샤오잔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왕이보.
 
갑자기 샤오잔은 그런 왕이보가 미치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먼저 고백해 줘서…
 
샤오잔은 갑자기 넘쳐흐르는 자신의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미 샤오잔의 양손을 왕이보가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입을 막아 감정을 감출 수도 없었다.
 
샤오잔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왕이보 사실 나 너 좋아해!!
 
속사포처럼 다다다다 내뱉은 멋없는 고백에 아차싶었지만 뭐 어떻게? 용기를 끌어모아 고백한 것을!
 
샤오잔은 슬며시 눈을 떠 왕이보를 살폈다.
 
이상했다. 왕이보의 그 앵두 같은 입술과 귀여운 볼따구는 빵빵하게 올라가 있어 웃고 있는데,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이다.
 
-왕이보 울꺼야?
 
샤오잔이 걱정스레 물어보자
 
-나도 너 좋아해 샤오잔
 
이라며 달콤한 동문서답을 해준다.
 
-왕이보 나 머리좀 쓰다듬어 주라, 헤헤
 
샤오잔 특유의 무해한 웃음을 짓자 왕이보 눈에 그렁거리던 눈물이 투 둑 떨어졌지만 왕이보는 아랑곳 않고 샤오잔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크고 따뜻한,,, 다정한 왕이보의 손. 그토록 원하던 왕이보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됐다.
 
샤오잔 생애 처음으로 새해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

에필로그 
 
 

‌샤오잔도 왕이보도 긴장이 풀렸다. 특히 왕이보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샤오잔에게 고백한 것이라 평소보다 오조오억배 더 되는 긴장을 머금고 있었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남산을 빠져나왔다.
 
아홉 시도 되지 않은 아침이지만 두 사람은 이미 긴장이 다 풀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거기다가 날씨가 너무 추워 스트레스에 약한 샤오잔이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도 집중력이 다 떨어지면 스스로 멍 타임을 갖는 샤오잔이란걸 알기에 왕이보는 샤오잔을 어서 따뜻한 곳에서 쉬게 해주고 싶었다.
 
-어휴~ 어디 어묵 파는 곳 없나? 배도 고프고 추운데…
 
샤오잔은 터벅터벅 걸으며 아무 생각 없이 허공에다 말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왕이보는 그런 샤오잔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잉? 어디루 가는 거야아~?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추워서 입이 얼어서 그런가 샤오잔은 평소보다 힘을 풀고 말했다. 약간 애교도 섞인 거 같기도 하고.
 
-요 근처잖아, 우리 집. 빨리 우리 집 가자.
 
왕이보네 집? 아 이 근처였나? 지난번에 가본 적이 있지만 남산 쪽으로 왕이보네 집을 간다고 생각하니 거리가 가늠이 안 됐다.
 
-얼마나 가야 하는 거야? 나 이제 슬슬 눈이 감겨
 
스트레스에 약한 샤오잔이 점점 보채기 시작하는 것 같아 왕이보는 마음이 급하다.
 
-근데 왕이보, 너네 집에 부모님 계시지 않아? 새해부터 손님이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
 
-부모님 태백산으로 등산 가셨어. 집에 아무도 없어
 
-아 그래? 아~~~
 
별 반응없이 받아치던 샤오잔이 눈이 커졌다. 아무도 안 계시다고? 그럼 너랑 나랑 둘이 있는 거야?
 
샤오잔이 속으로 생각만 했는데 갑자기 왕이보가 이렇게 받아쳤다.
 
-걱정 마, 너 한숨 재우고는 다시 깨워줄 테니까
 
잉? 뭐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조금 멋쩍어 하는 표정을 짓자 왕이보가 샤오잔에게 귀뜸했다.
 
-한숨 재운 다음에… 라면 끓여 줄께 ^^

‌


분명히 넉넉한 시간을 주셨음에도 데드라인을 넘겨서 마감한 점.. 저는 혼나야 합니다. 흑흑
첫 합작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제 원고 속 왕샤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본캐 왕샤 덕분입니다.
본캐 왕샤가 그동안 보여줬던 진심과 사랑이 저를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 모든 감동과 감정들이 저의 원고인 '짝사랑의 임계점'에 그대로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찐 왕샤가 저를 감동시키지도 않고 그저 무미건조한 존재였다면 그들의 부분 부분을 따와서 만들어진 '짝사랑의 임계점'속 왕샤는 절대 탄생할 수 없었을 거예요.

결국 '짝사랑의 임계점' 속 왕샤를 만나게 해준 본캐 왕샤에게 넘 고맙고 또 진심으로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걸 다시끔 깨닫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또 합작이 처음이기도 하고, 이렇게 단편 원고도 용기내서 처음 마감해 보기도 해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이런 문화를 통해서 긍정적인 영향력이 더욱 많은 분께 펼쳐나갈 수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행복합니다.



그럼, 두서없는 제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