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sun_in
봄의 색
방학을 막 앞둔 여름은 푹푹 찍듯이 더웠다. 교실 안에는 에어컨과 선풍기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딱 좋은 바람과 은은하게 밝은 빛과 적당히 시끄러운 영화는 졸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영화가 끊기고 환하게 켜진 불에 그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방학 직전부터의 늘어난 학원 시간들에 잔뜩 피곤해진 그는 잠을 방해한 사람이 누군가 싶어 살짝 눈을 떴다. 담임선생님의 옆에 교복을 대충 걸치고 큰 키를 가진 남자는 며칠 전부터 시끄러웠던 전학생임이 분명했다.
“며칠 전에 안내했던 대로 전학생이 왔어. 자기소개 해볼까?”
“왕이보 입니다.”
그 뒤로 더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잠시간의 적막이 흐르자 선생님은 왕이보를 당황스럽게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남겨진 자리를 가르키며 앉으라고 한 뒤. 교실을 나섰다. 딱 봐도 좋지 않은 행색을 한 그를 보며 샤오잔은 잠시 턱을 괴고 바라보다. 다시 잠을 청했다. 더 그에게 관심을 주기에 샤오잔은 피곤했다.
작은 메신저백을 메고 총총거리며 학교를 나서는 샤오잔을 왕이보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전학 첫날 어땠냐고 묻는 부모님께는 이번에는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부터 왕이보는 괜히 샤오잔에게 다가가 물었다. 빤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도 뭐햐냐고 물었고,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번호하나 따지 못했지만, 방학은 시작되었고, 겨우 알아낸 전화번호는 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학교 앞 벚꽃나무가 붉게 물들어 갈 즈음, 왕이보는 샤오잔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연못 앞에서 샤오잔은 카메라를 들고 맑게 웃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는 행복해 보였다. 따라 입꼬리를 올리던 왕이보는 샤오잔 주변의 사람들이 신경쓰였다. 고민하던 그는 샤오잔의 옆에 앉아 묵묵히 밥을 먹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샤오잔은 잠시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너 그 전학생! 맞지?”
왕이보는 자신을 알아보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이보가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의 먹는 속도는 생각보다 꽤 느렸다는 것이다. 그 사이 왕이보를 알아보며 축구를 하러 가자고 하는 남자애들이 몇 있었지만 왕이보는 족족 거절하고 샤오잔을 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건지 아니면 정말 다 먹은 건지 샤오잔은 먹던 것을 정리하고 일어섰다.
“어디가?”
먼저 질문을 하지 않는 그 답지 않게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물었다.
“미술실.”
“어딘지 알려줘.”
샤오잔이 더 말을 잇기도 전에 왕이보가 말했다. 샤오잔은 조금 당황했지만,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소개해줄까?”
왕이보는 샤오잔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내내 학교를 돌아다녔다. 왕이보는 샤오잔의 옆을 자주 맴돌았다. 매일 지쳐있는데다, 유일하게 예체능생이라 바빠 친구하나 없는 그에게 왕이보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왕이보는 늘 샤오잔의 버스 정류장 까지 데려다 주었다. 학교에서 바로 가는 것이 분명 더 빨랐을 텐데도 불구하고 항상 그 버스를 타는 것을 보고 돌아갔다.
어느날, 왕이보는 버스를 타는 것을 보고가는 대신 뒤따라 버스에 올랐다. 샤오잔이 뭐냐고 묻자 왕이보는 씩 웃었다. 그날, 둘은 함께 독서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내내 옆자리에 앉은 샤오잔만 바라보았다. 그가 휴게실로 가면 옆에 괜히 옆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었다. 그렇게 괜시리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샤오잔은 더더욱 바빠졌다. 점심시간에는 언제나 자기에 바빴고, 습관적으로 둘은 하굣길을 함께 했다. 점점 말 수는 줄었고, 손을 흔드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일 떄도 많아졌다.
“이보야, 해외로 가는 건..”
집의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더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샤오잔만이 입시를 앞둔 것은 아니었기에, 왕이보는 더 착잡해지는 마음에 밥을 먹지 않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샤오잔은 지쳤다. 왕이보와 함께 보내는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갈 수 있는 대학의 범위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양방면에서 감정소모가 점점 심해져가자 샤오잔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입시였기에, 샤오잔은 결국 왕이보에게서 한걸음씩 멀어졌다. 주변을 비웠고 둘이었던 버스정류장은 하나가 되었다.
짧은 횡단보도의 하교길은 언제나 복잡했다. 그러므로 교통사고가 나는 일은 한번 쯤 예상해 본 일이었다. 순식간에 눈 앞에 정전이 일었다. 완전한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마치 그의 마음처럼이나. 어두운 색으로.
“…생, 학생!”
시끄러운 소리에 서서히 눈을 뜨자 눈 앞에 찐득한 액체가 흘러 내려 시야를 방해했다. 우선,괜찮냐고 물으시는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소매로 시야를 방해하는 액체를 닦아낸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서진 차의 파편들, 잔뜩 우그러진 차, 경찰과, 구급대원,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 그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아니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 눈을 감은 채로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다. 샤오잔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며 자신의 직감이 아니길 바랬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그 옆에 앉자마자 무슨 정신으로 옆에 있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제대로 맞는 법이 없던 그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왕이보였다. 자신을 보던 별과 같은 눈은 감겨있었고, 해와 같은 미소를 지닌 얼굴은 생기를 잃었다.
정확히 일주일 하고도 반나절을 왕이보는 그렇게 눈을 꼭 감고 뜨지 않았다. 샤오잔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는 정확했다. 매일 그는 왕이보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눈을 뜨자마자, 샤오잔은 그대로 쓰러졌다.
눈부신 빛에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마자 의사는 사망선고와 같은 진단을 말했다. 시각에서 색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 손상되어 색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샤오잔은 괜히 꼼지락 거리는 손을 내려다보다 한참만에 말했다.
“이보, 왕이보는 괜찮나요.”
의사는 잠시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말했다.
“아, 그 친구분이요?, 네. 괜찮습니다.”
긍정적인 의사의 대답에 샤오잔은 픽 새어나오는 안도감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웃음을 지었다.
병원 문을 나오자마자 그는 다가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알록달록한 간판과 늘어져 있어야 할 거리는 거의 무채색으로 나뉘었다. 단풍이 물드는 계절임에도 샤오잔의 눈에는 단조로운 색으로 보였다.
한동한 화실에 나가지 않고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색을 잃으면 정말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왕이보를 버린, 대학 하나 가겠다고 친구를 버린 하늘이 내린 벌일지 모른다. 자신의 욕심하나 때문에 친구를 버렸다. 매정하게. 돌아보면 샤오잔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몇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언제나 왕이보가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른척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결국 돌고 돌아 인과응보가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누굴 탓햐랴. 샤오잔은 점점 깊은. 감정의 구렁텅이로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남는 것이 있었다. 성적. 그저그런 학교 하나정도는 쓸 수 있었다. 미술이 아니라 평소에 그림 다음으로 좋아했던 글로, 쓸만한 학교의 쓸만한 학과를 썼다. 준비해 오던 학교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에 온 것이 아닌가.
-
‘샤오잔, 잠깐 볼까?’
‘쟌쟌’
왕이보는 벌써 몇 십번째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샤오잔은 연락을 잘 받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책상에 던졌다. 빈 강의실에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는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샤오잔의 소식은 대충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색을 잃은 뒤로는 본인마저도 잃은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고, 혹시나 불편할까봐, 라는 쓸데없는 불안감으로 채운 시간들을 후회했다.
왕이보가 처음 그를 본 순간부터, 샤오잔은 색색깔의 빛을 그대로 담아둔 사람이었다. 뭐라고 하더라, 아, 프리즘.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사람. 22명의 사람 중에서 그는 유독 눈에 띄었다. 첫날 주변에서 밥을 먹은 것도. 먼저 질문한 것도. 모두 왕이보가 먼저였다. 그 미소가 마음에 들어서. 점점 더 좋아졌을지 모른다. 며칠 다니지 않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모두 샤오잔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스스로가 무서워졌다. 그래서 그가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 왕이보는 스스로 물러나 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너무 지쳐보였다. 그래서 왕이보는 그의 주변만 맴돌았다.
그날은 정말 우연히 마주친 거였다. 인사라도 할까 싶었지만, 모른 척 지나치는 그를 보고 쓰게 웃었다. 그래도, 친구였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내려오던 차에 그대로 치이며 이후의 기억이 없다.
긴 꿈을 꾸었다. 샤오잔과 같이 있는 그런 꿈, 왕이보가 처음 학교에 온 그 순간으로, 그들은 나란히 서서 학교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어느날의 휴일, 왕이보는 착각으로 학교에 오고, 샤오잔은 동아리 활동 때문에 학교에 있던 그날, 왕이보는 그의 사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다른 동아리 부원 하나가 둘이 찍어준 투샷은 마치 다정한 연인 같다고 했다. 샤오잔이 장난삼아 몰랐어? 우리 사귄지 꽤 됐는데? 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이 왕이보에게 생생하게 남아있었다.왕이보는 샤오잔을 사랑했다.
눈을 떴을 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렴풋이 샤오잔을 본 것 같기도 한데, 꿈이었을까. 입과 목을 막고있는 호스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꼬박 일주일을 잤다는 말에는 조금 놀랐지만 휴대폰만 만지작 거렸다.
“바쁠 때니까.”
불러보지 않겠냐는 누나의 물음에 왕이보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미술 입시는 더 길다고 들었는데 자신이 괜히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샤오잔이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미술실, 교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동아리 부원에게 물었더니 아프다고 하던데? 라는 답만 얻었다. 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매번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문구만 나올 뿐이었다.
“샤오잔이???”
대입시험이 막 끝난 그때, 반에서 오가는 큰 소리에 왕이보는 귀를 기울렸다. 샤오잔이 미대에 가지 않았다. 샤오잔은 매번 대회에서 상을 탈 정도로 학교에서 꽤 그림을 잘 그리는 애로 기억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암암리에 밀어주는 분위기기도 했는데, 그런 그가 미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꽤 큰 이슈거리였다. 그리고 늘 조용하던 샤오잔과 같은 미술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색을 못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림을 그려.”
왕이보는 샤오잔의 그림을 꽤 좋아했다. 샤오잔이란 사람을 빼고라도, 그가 다시 정말 미술도구들을 잡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샤오잔의 사물함을 뒤져 주소지를 알아내 그 집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샤오잔이 문을 열자마자 왕이보는 대뜸 말했다.
“색을 보지 못해도 그림은 그릴 수 있어.”
샤오잔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깔고 쓰게 웃었다.
“이제는 다 상관없는 일이야.”
고개를 들어 왕이보와 겨우 눈을 마주친 샤오잔은 이별을 고했다.
“나 되게 멀리 가”그러니 이번에 보는 것도 마지막일거야. 그는 그대로 뒷걸음질쳐 문을 닫았다. 샤오잔은 그대로 현관에 주저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샤오잔은 왕이보를 사랑했다.
다시 봄이 왔다.
꽃봉오리가 돋아나고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대학 근처에 핀 넓은 꽃밭 둘레를 천천히 걷던 왕이보가 턱에 걸터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곳곳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럴 때면 샤오잔의 생각이 유독 많이 났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노란 꽃이 참 예쁘죠?”
왕이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앉은 사람을 보았다. 작은 스케치북과 붓을 들고 자신을 보는 시선에 그 사람은 같이 돌아보았다.
“샤오잔.”
왕이보의 시선에 그토록 그리워 했던 얼굴이 눈에 담겼다.
샤오잔의 눈에 서서히 색이 차올랐다. 왕이보가 입은 붉은 자켓. 노란 유채꽃, 초록 꽃대 그리고 당황에 차있다 환하게 웃는 그의 붉은 입술까지.
서로 뭐라고 하기도 전에 왕이보는 노란빛으로 가득한 샤오잔의 스케치북에 두 사람을 새겨넣었다.
두 사람이 처음 함께 보내는 봄이었다.
여러분과 함께 봄을 맞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러분의 봄도 왕샤오처럼 설레고 따듯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