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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iel85

@uriel85_

옷깃만 스쳐도 인연


 
날이 좋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아도 될지 의문일정도로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고 눈 앞에는 마치 노란 장판을 깔아놓은듯 헤아릴 수도 없을만큼 수많은 노란꽃들이 바닥을 촘촘히 수놓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샤오잔은 마치 그림같은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샤오잔!"
 
 
 
"얼른 와!"
 
 
 
"갈게!"
 
 
 
솜사탕같은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그는 그를 부르는 이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워낙에 풍경이 아름다워서인지 촬영객들과 사람들이 많아서 통제가 되지 않는 곳에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람잃어버리기 딱 좋을 곳이었다.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 멤버들을 쫓아 빠르게 걸어가던 그는 적포도주빛 옷의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으앗...! 죄송합니다...!"
 
 
 
"......"
 
 
 
"제가 급해서 그만... 아..."
 
 
 
"저..."
 
 
 
"죄송해요...!"
 
 
 
부딪친 사람이 말할틈도 없이 자기가 할말만 우다다 내뱉은 그가 뛰듯이 달려갔다. 벌써 콩알만해진 멤버들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까닭이었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지갑... 떨어졌는데..."
 
 
 
큰 키를 자랑하듯 벌써 저만치 달려가버린 이를 바라보며 그냥 혀를 차고 말았다. 결국 그날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된 샤오잔은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지갑을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온통 노란 유채꽃밭에서 그의 작은 지갑을 찾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던 길...
 
 
 
"저기요. 이거 그쪽거죠?"
 
 
 
"네? 아...내 지갑...! 감사합니다...!"
 
 
 
모자를 쓴 촬영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그에게 지갑을 찾아주면서 그 날의 짧은 헤프닝은 그렇게 끝나는 듯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멤버들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 워낙 멤버수가 많고 사람들도 많아서 딱히 그가 나서서 해야할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기소개정도는 해야했기에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아이돌의 소양을 잊지말자고 세뇌하듯 되새기며 앞으로 나가 포즈를 취했다.
 
 
 
"저는 샤오잔입니다, 이 팀의 메인보컬과 이 그룹의 발전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발전기를 말할때 눈을 찡긋하며 총을 쏘는 자세를 원한 멤버들 덕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연하고 난 그는 살짝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 일반인으로 살았던 기간이 더 길었던만큼 아직 이런 퍼포먼스에 낯설음을 느꼈다. 옆에서 자신을 따라하는 mc들도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이건 그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거지 익숙해지면 못할것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흰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으면 금방 끝날 일이었다. 뭐 같은 멤버들도 각자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자신만 쏙 빠지기에는 그랬기에... 곧 자기소개의 민망함을 잊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 수 있었다. mc들과 함께 한 민속놀이도 재미있었고 가장 나이가 어려보이는 mc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같이  방송하는 사람끼리 한번쯤은 어디선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웃어넘겼다. 그렇게 그 날의 만남이 잊혀지는 듯 싶었다.
 
 
 
"넌 무슨 활동할거야?"
 
 
 
"나? 글쎄..."
 
 
 
그룹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아이돌로서의 수명이 길지 않았다고 해야될까... 각자의 길을 찾아나가는 멤버들을 보면서 샤오잔도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고민 끝에 처음으로 멤버들과 하지 않는 하나의 일을 골랐다. 그리고 거기서 뭔가 익숙해보이는 얼굴을 또 보았다. 날카로우며 어딘가 냉막해 보이는 인상을 풍기는 그 얼굴을 어디서 보았더라?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뭐 어디서 스쳐지나가듯 봤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가만히 서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며 금방 자리가 떠들썩해졌다. 간만에 혼자하는 활동이라 잔뜩 긴장했던 게 무색하게 좋은 사람들이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하자 딱딱하게 굳어졌던 어깨가 풀어지며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그 얼굴을 슬쩍 쳐다보는 시선은 느끼지도 못한채 사이에 끼어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 그들은 얼마되지 않아 다시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색한 사이도 친해질만큼 뒹굴어야 했다. 그 와중에서 가장 친해진 것은 당연 주연인 두사람이었다.
 
 
 
"잔거, 잔거, 잔거...!"
 
 
 
"왜... 라오왕."
 
 
 
"이거 봐. 잔거랑 똑같지?"
 
 
 
"어, 그래."
 
 
 
"반응이 왜 그래?"
 
 
 
"뭐가?"
 
 
 
"반응이 왤케 시큰둥하냐고."
 
 
 
"제가 그랬나요?"
 
 
 
티격태격하며 사이좋게 붙어 있는 그 둘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을 톰과 제리라고 불렀다. 더위를 많이 타 늘어져 있는 샤오잔의 곁에 꼭 붙어 괴롭히는 왕이보와 귀찮아하면서 또 그걸 받아주는 샤오잔... 주연인만큼 사이가 좋으면 좋은 거였지만 이렇게까지 사이가 좋아질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둘 다 넉살이 좋은 성격은 아닌데다 왕이보는 낯까지 가려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리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이차이도 꽤 나는데다 서로 취미도 워낙에 다르니 맞지 않을거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두 사람은 의외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특히 그 낯가린다는 왕이보가 형, 형 하면서 따라 붙으니 연예계 선배님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샤오잔은 어색하게 받아주다 이제는 완전히 자연스럽게 그가 따라오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촬영은 순조롭게 지속되었다. 다들 같이 모여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두 사이가 좋았다. 왕이보는 샤오잔이외에 딱히 그렇게 친한 사람은 없는 듯 해보였지만 그도 나름 샤오잔이 없을때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는 했다.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느껴지던 그 여름날 두꺼운 옷을 입고 하는 촬영은 쉽지 않았지만 워낙 서로를 배려하다보니 촬영장은 언제나 화기애애했고 쉬는 시간마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는 두 사람덕에 카메라는 쉴 시간없이 돌아가고는 했다.
 
 
 
"라오왕~"
 
 
 
"왜?"
 
 
 
"그냥."
 
 
 
장난스레 그를 부르는 샤오잔을 잠시 쳐다본 왕이보가 물었다.
 
 
 
"밥 걸렀어?"
 
 
 
그의 물음에 입술을 삐죽 내민 샤오잔이 답했다.
 
 
 
"더워... 입맛없어."
 
 
 
"그래도 먹어야지. 저녁에 훠궈먹으러 갈래?"
 
 
 
"훠궈?"
 
 
 
"응. 이 근처에 맛있는데 있다더라."
 
 
 
"그래?"
 
 
 
"내가 예약할게."
 
 
 
워낙 격의없고 사이가 좋다보니 개인적인 일정을 잡는 부분들도 많아 그런 부분은 잘라내야 했지만 그 이외에도 찍을 거리는 다양했기에 괜찮았다. 둘 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눈이 호강하는 미남이라 여스텝들은 둘이 붙어있기만 해도 눈보신한다고 꺄악거리고 좋아하고는 했다. 무더위를 견디며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촬영이 끝날때쯤... 거의 촬영장에 살다시피했던 모든 출연자들이 아쉬워하며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고... 그래도 촬영이 끝났다고 모든게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방영 프로모션과 콘서트가 아직 남아있기에 다시 만나자며 다음을 기약한 그들은 아쉬운 헤어짐을 맞이했다. 꼭 연락하라며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 이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냈고 눈물겨운 이별을 했던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콘서트와 예능 촬영 등,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한 자리에서였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다시 모인 것을 기뻐하며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촬영 초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mc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질문했다.
 
 
 
"드라마를 찍은 뒤 인기를 실감하고 계신가요?"
 
 
 
연장자이자 작품의 주연이었던 샤오잔이 먼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어...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는거 같아요."
 
 
 
"굉장히 겸손하신 대답인데... 그럼 다른 분들은요?"
 
 
 
"저도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각자 토크를 이어가면서도 왕이보와 샤오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장난을 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출연진들은 '또 그러네'하는 생각과 함께 흐린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고, 왕이보와 샤오잔만 조심한다고 조심하면서 서로를 쿡쿡 찌르고 건드리기 바빴다. 매의 눈 같이 그 모습을 발견한 팬들은 조용히 사진을 찍기 바빴고 콘서트가 끝난 후 같이 자리를 뜨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는 것에 머릿속으로 온갖 망상을 하기 바빴다.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샤오잔은 남몰래 속을 태우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은 끝났고 프로모션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몇 번의 촬영이 끝나고 나면 그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자 왕이보였다.
 
 
 
-지금 만날래?
 
 
 
"......"
 
 
 
솔직히 그와 이런 관계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운 연예계 선배에서... 점점 귀여운 아는 동생이 되더니...
 
 
 
-잔거, 나 잔거가 좋은거 같아.
 
 
 
-뭐?
 
 
 
-샤오잔을 좋아한다고.
 
 
 
-나도 네가 좋아.
 
 
 
그의 말에 가볍게 답하는 그가 답답했는지 왕이보가 머리를 쥐며 말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머리를 헝클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던 그가 돌연 그에게 다가왔다. 갑작스런 접근에 놀라굳어있는 그에게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물체에 잠시 정신이 멍해진 샤오잔에게 그가 말했다.
 
 
 
-이런 의미로 좋아한다고.
 
 
 
-......
 
 
 
-잔거... 어떻게 생각해?
 
 
 
-어... 떻게... 생각하냐니...
 
 
 
당황스럽다. 그리고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거절하기 힘들정도로... 하지만...
 
 
 
-미안...
 
 
 
-......
 
 
 
-이건 아닌 거 같아...
 
 
 
-왜...?
 
 
 
-그건...
 
 
 
너랑 나랑 나이차이가 얼만데... 그리고... 우리는 남자잖아... 여러가지 댈 수 있는 변명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그를 쳐다보는 왕이보의 눈을 보니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가 문젠데?
 
 
 
-... 알잖아...
 
 
 
우리의 직업, 사회적 시선... 그리고 나라의 압박... 샤오잔은 그 어느것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젊은 패기의 청년은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상관없어. 샤오잔. 아무것도.
 
 
 
-......
 
 
 
-그러니까 샤오잔 당신도... 그냥 나만 봐주면 안돼?
 
 
 
차마 뿌리칠 수 없는 간절한 고백이었다. 마지못한 승낙에 뛸듯이 기뻐하는 그를 보며 샤오잔은 남은 촬영일자와 프로모션 기간, 같이 나갈 수 있는 방송 등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시작부터 끝을 생각했다. 촬영이 끝나면...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방송이나 프로모션이 끝나면... 그때 다시 한번 말하자. 다시 생각해보라고...
 
 
 
-바빠?
 
 
 
"......"
 
 
 
그리고 그때가 다가왔다. 샤오잔은 조금씩 그와의 연락 빈도수를 줄이고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었다. 당연히 서운해했지만 서로의 위치를 알았기에 왕이보도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샤오잔이 큰 마음을 먹고 그에게 헤어지자는 문자를 보낸 뒤 도망친 일본여행... 왕이보를 잊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그가 더 생각나서 힘들었던 그 여행 도중 찾아온 깜짝 손님에 샤오잔은 기어이 그의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찾... 후... 았다. 샤오잔..."
 
 
 
"왕... 이보..."
 
 
 
숨을 헉헉거리며 그를 잡아오는 간절한 손에 샤오잔은 결국 그 손에 붙잡혀주었다. 숨을 가다듬은 그가 물었다.
 
 
 
"왜 도망쳐?"
 
 
 
"......"
 
 
 
"샤오잔..."
 
 
 
답이 없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왕이보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잔거는 기억못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드라마 촬영때 처음만난거 아니야."
 
 
 
"뭐?"
 
 
 
그의 당황스러운 고백에 샤오잔이 얼빠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왕이보가 샤오잔의 시선을 비껴내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고정mc로 나오는 예능... 거기서 우리 처음 만났어."
 
 
 
 "......"
 
 
 
기억을 못하는 듯한 샤오잔의 표정에 왕이보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유채꽃밭 촬영할때..."
 
 
 
왕이보의 머릿속에서 그날 들었던 샤오잔의 사과가 들려왔다.
 
 
 
-으앗...! 죄송합니다...!
 
 
 
"거기서 나랑 부딪혀서 지갑떨어뜨린거 몰랐지?"
 
 
 
"어...? 그때... 우리가 만났었다고?"
 
 
 
조심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순간 짧은 목소리가 하나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서서히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적포도주빛 옷을 입은 사람과 부딪혔었던 그날... 저음의 미성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급하게 사과를 던지며 도망치듯 달려가던 그 순간... 갈색머리의 짙은 눈을 한 소년과 청년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남자와 잠시 시선을 마주쳤었다. 금방 잊었지만... 왕이보가 그에게 말을 그때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왕이보가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당신이 좋았어."
 
 
 
"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샤오잔에게 왕이보가 멈추지않고 말했다.
 
 
 
"이건 솔직히부끄러워서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왕이보의 귀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덩달아 샤오잔의 귀도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때... 하얀 옷을 입고 유채꽃밭에 서 있는 샤오잔이... 나한테는 천사같아 보였어."
 
 
 
왕이보는 그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비관이라고 해야할까 권태라고 해야할까...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샤오잔은 한없이 빛나고 있었다. 일반인은 아닌듯한 그가 비슷한 계통의 하얀옷을 입은 사람들과 온통 샛노란 꽃밭한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을 저도 모르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자리를 이동하는 그와 부딪히게 됐다. 그와 닿는 순간 왕이보는 찌릿하고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날 그때 그순간의 샤오잔이 그의 머릿속에는 선연히 떠올랐다.
 
 
 
"......"
 
 
 
샤오잔은 왕이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백에 남들이 들었으면 특히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들었으면 질색하고 난리를 쳤을 말을 듣고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붉어진 귀를 가리며 뜨거워지는 얼굴을 식히기 바빴다. 한참을 아무말도 못하고 달아오른 얼굴을 겨우 가라앉혔을때 왕이보가 샤오잔의 손을 잡으며 말해왔다.
 
 
 
"잔거가 뭘 무서워하는지 알아."
 
 
 
"......"
 
 
 
요즘은 나이를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로서 6살 차이를 이겨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성향을 극복하는 것도... 거기다 가장 커다란 장벽은...
 
 
 
"솔직히 나도 무섭지 않은 건 아니야."
 
 
 
그들이 같은 성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왕이보도 때로는 무서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때 보일 반응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무섭지. 사람들의 시선도 반응도... 하지만..."
 
 
 
샤오잔이 그를 떠나는게 더 무서웠다. 그가 떠난 뒤 홀로 남게 될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눈 앞의 남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놨다.
 
 
 
"나는 잔거가 떠나는게 더 무서워..."
 
 
 
깜깜한 밤을 밝혀주던 다정한 목소리가... 지쳐있던 그를 다독여주던 그 체온이... 언제나 그를 바라보며 그저 환하게 미소짓는 그 얼굴을 잊게 되는 것이 그에게는 더 공포스러웠다.
 
 
 
"불안해 해도 되고... 무서워해도 돼... 다 괜찮아..."
 
 
 
"......"
 
 
 
"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그 불안도 공포도 내 옆에서 느꼈으면 좋겠어. 솔직히 잔거한테 내가 아직 어리고 모자라서 못미더울 수도 있겠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는 그를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노력할게... 샤오잔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내가 힘낼테니까..."
 
 
 
샤오잔은 다시금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숨을 한번 고르며 뱉어내듯 말했다.
 
 
 
"그러니까... 떠나지마..."
 
 
 
쐐기를 박듯 마지막 말을 꺼내는 왕이보에 샤오잔이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를 떠나고자 굳게 다짐했던 의지가 산산조각나 부서져내리는게 느껴졌다. 솔직히 아직도 무서웠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들의 반응도... 그리고 왕이보와의 6살이라는 나이차이와 같은 성별을 가졌다는 것도...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를 찾아온 왕이보를 보니 조금쯤...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왕이보가 그에게 질려 먼저 이별을 통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이별은 때로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샤오잔이 좋아."
 
 
 
지금 이렇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부딪혀오는 왕이보를 보고 있자니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만나면 헤어짐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지금 우리가 서로를 좋아할 수 있는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샤오잔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래서 둘은 드라마 촬영때 처음 만난 건가요?"
 
 
 
"아니요. 저희는 제가 고정mc로 활동하는 티엔티엔향샹에서 처음 만났어요."
 
 
 
드라마 촬영 때 처음 만났냐는 질문에 발끈하여 대답하는 왕이보를 보며 샤오잔이 웃었다. 첫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생각난 것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그가 물었었다. 그날 그곳에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너는 나를 좋아했을까라는 그의 질문에 왕이보가 말했다.
 
 
 
"당연한 걸 왜 물어? 언제 어디서 샤오잔을 처음 봤든... 나는 샤오잔을 좋아하게 됐을 거야."
 
 
 
"왜?"
 
 
 
"그야 당연히..."
 
 
 
노란 유채꽃이 펼쳐진 풍경을 배경으로 샤오잔이 돌아본다. 그와 옷깃을 부딪혔을때... 왕이보는 어떠한 실이 그들 사이에 엮이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실을 꼭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놓칠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스쳤던 옷깃이 지금 이렇게 이어진 것을 보면... 왕이보는 이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니까."
 
 
 
위풍당당한 그의 말에 샤오잔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처럼 옷깃만 스쳤던 그 가벼웠던 인연이 어느새 운명이 되어 있는 지금 이순간... 그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말할 수 있었다.
 
 
 
"맞아요. 저희가 처음 만난 건 유채꽃 특집때였어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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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첫 합작 참여라 많이 떨리고... 처음에는 느긋하게 준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여러가지 일이 생겨서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해져서... 글, 그림 둘 다 퀄이 떨어지는게 많이 아쉽기도 하고 그렇네요...ㅠ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모로 조금 어렵긴 했지만 제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던 작업이었고 글은 추후에 제 개인 포타에 업로드하게 된다면 더 이어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신 BJYX Universe 팀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며 모두 즐거운 3월 14일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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