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X_ZZiiiin
안녕
“안녕하세요? 샤오잔입니다.”
모를 리가. ‘네, 반갑습니다.’하고 건넨 손을 맞잡는다. 듣기 좋은 목소리에 기분 좋은 미소까지 걸친 상대에 비해 건조한 답이었다. 그럼에도 샤오잔은 뭐가 좋은지 여전히 생글거리는 얼굴이다. 사람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잡은 손이 떨어지면 샤오잔의 고개도 돌아간다. 온기가 식어가는 손이 퍽 어색했다. 허공에 잠시간 띄워둔 손을 천천히 내린다. 무표정한 얼굴에 스치는 씁쓸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 때도, 또 다시 만났을 때에도 똑같이 웃어줬던가.
‘더 욕심내면 안 돼.’
방금 잡았던 손을 올려 마른세수를 한다. 손에 그의 체향이 밴 것 같은 착각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미친놈. 깊은 한숨과 함께 내려놓은 손이 얕게 움찔인다. 윙윙- 근육에 출처 모를 진동이 울었다.
* * *
‘절대 누구와도 인사하면 안 돼.’
신신당부하던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었다. 현실감 없고 귀찮은 잔소리라 여겼다. 심각한 얼굴로 전하는 부탁이었건만 열일곱의 소년에겐 들리지 않았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귀에 닿지 못하고 튕긴 말에 약속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깨어졌다.
누구와도 엮이면 안 된다, 그 간절함 담긴 당부를 잊지 않아야 했다.
‘안녕?’
바래고 바랜 기억에도 저를 보며 싱긋 웃던 미소는 생생했다. 샛노란 유채꽃의 빛이 다 그를 향한 것처럼 화사하고 밝은 얼굴이었다. 스치던 시선을 붙잡아 잠깐의 깜빡임도 잊게 만들 만큼. ‘이름이 뭐예요?’ 그렇게 물었다. 샤오잔. 아직도 귓가를 울리는 것 같은 그 대답은 여전히 가슴을 간질이다 눈가를 어지럽혔다. 한참동안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다 그를 바라보는 데 썼다. 마치 이 잠깐의 여행이 그를 만나기 위해서인 것처럼 짧은 순간을 오로지 그에게 쏟았다.
돌아온 시간 속에서도 계속 그가 맴돌았다. 이왕 하는 여행이라면 그의 시간, 그의 공간에 닿길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가 거짓말처럼 이뤄졌을 때에는 운명이라 생각했다. 소년은 제게 주어진 저주가 선물이라 믿었고, 인연을 찾는 기회라 여겼다.
‘근데, 너는 어디 살아? 어느 학교에 다녀?’
두 번째 만남에서 열일곱 동갑이었던 그는 네 번째 만남에선 이미 열아홉이었다. 1년에 한 번 만난 꼴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찾을 수 없는 소년의 흔적을 의아해 했고, 1년에 한 번 마주치는 소년의 모습에 변화가 없다는 것에도 의구심을 품었다. 믿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눈앞의 소년을 쳐다보았다.
‘거짓말.’
‘아니면, 귀신이겠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당연히 믿지 않을 줄 알았다. 당사자도 믿지 못했던 말을 다른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심각하게 생각하는 얼굴이 되는 그를 보는 게 재밌었다. 제 삶에 그가 점점 짙어지는 걸 알면서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 넌 몇 살인데? 아니지. 몇 년도에서 왔는데? 몇 년생이냐고 물어봐야 하나?’
푸학. 웃음이 소년의 닫힌 입술을 뚫고 터졌다. 그는 믿고 있었고, 저보다 더 진지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상황이 재밌어서 한참을 웃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웃느라 정신없는 소년의 등짝을 내리쳤다. 짝짝 내리치면서도 달리 아프지 않은 그 손짓을 소년이 제 손으로 막아 잡았다.
‘가야겠다.’
‘어? 언제 또 보는데?’
‘음…’
‘나도 몰라.’
그의 손을 한 번 살짝 힘주어 잡았다 놓은 소년의 대답은 옅게 흐르듯 퍼지고 사라졌다.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는지 몰랐다. 이상한 저림이 시간의 흐름도 모르고 남아 지워질 줄 몰랐다. 그리고 장난처럼 여행의 주기가 짧아졌다. 3개월에서 반년에 한 번이던 여행이 달에 한 번으로 늘었을 때, 아버지의 눈에 근심이 어리고 있었다. 소년은 당연하게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와의 만남이 늘어 그의 시간을 더 많이 함께 할 수 있음에 기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물이 되던 봄, 제 시간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오는 거 말고 약속해서 만나자.’
그는 찰나가 아닌 온전한 시간 속에서 만나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는 해의 봄, 처음 만났던 유채꽃밭에서 보자고 말했다. 그는 잠시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웃으며 그러자 했다. 약속된 날이 다가올수록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 만큼 떨렸다. 우연에 기대어 그의 시간에 닿기를 기대하던 것이 아닌, 그와 저의 시간이 일치하는 만남은 생각 이상의 설렘을 주었다.
그러나, 약속한 날 장난처럼 여행에 휩쓸려 버렸다. 유채꽃밭에 다다르자마자 알 수 없는 시간으로 옮겨졌다. 설렘이 불안감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그를 찾기 위해 헤매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짧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을 땐,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새까맣게 변한 유채꽃밭을 보고 선 채 흥건하게 젖어 떨리는 손을 매만지며 느꼈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 때부터였다. 마음대로 그의 시간에 닿을 수 없게 되었다. 선물 같았던 여행은 어느새 저에게 절망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 아무리 헤매도 그를 찾을 수 없게 되고서야 운명도, 인연도 제가 붙인 착각 속 이름이었음을 알았다. 허망하게 3년이 흘렀다. 그 중 단 한 번도 그에게 닿은 적이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첫 여행에 운명처럼 그를 본 후 3년간 마음대로 찾을 수 있었던 그의 시간이 거짓말처럼 단 1초도 찾을 수 없게 됐다. 심지어 현실인지도 알 수 없는 공간에 닿아 알 수 없는 소음 속에 갇혀있기 일쑤였다. 제 시간에서라도 그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알아두지 않았던 탓이었다. 막연하게 그를 보겠단 마음만 먹고 있으면 제 속을 안다는 듯 저를 그곳에 데려다 놓곤 했었으니까. 어쩌면 이건 조절이 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여행은 결국 저주였고, 그는 제 시간의 그를 마주하며 확실해졌다.
‘왕이보?’
겨울, 시린 공기가 눈까지 흔든 마냥 두 눈이 떨리고 있는 그는 첫 만남에서 보았던 그가 아니었다. 햇빛보다 빛나게 반짝이는 것 같았던 그는 마치 모든 빛을 잃은 것처럼 야위고 어두워 보였다. 저를 보더니 불안한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기까지 했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중얼거리는 그가 떨리는 손으로 꺼내든 약통이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저의 발치로 굴러오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빵빠앙-
이보가 약통을 주워들자 심하게 떨며 뒷걸음질 치던 그를 향해 클락션이 울렸다. 어찌해볼 틈도 없이 그의 몸이 땅바닥을 굴렀다.
안녕,
그 인사를 건네지 말 걸. 마주치지 말 걸. 아니, 고집 피우지 말 걸.
후회하는 순간은 많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당부를 차츰 이해해갈수록 후회의 색은 짙어져갔다. 온몸을 적신 피 만큼이나 절망이 온몸을 덮었다. 수술실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서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렸다. 저주였구나. 그제야 과거의 저를 원망하며 제 행동을 자책했다.
‘이보야.’
‘아버지… 살려주세요.’
아버지는 황망한 얼굴로 무너진 이보를 감싸 안았다. 귀가 먹먹해져 소리가 울리고 현실감을 느낄 수 없어진 이보를 안고 자책 어린 말을 반복했다.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웅웅 울려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그 말을 이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먹먹해진 정신을 다시 되찾았을 때에는, 아버지가 세상에 없었다.
새하얀 얼굴로 낯선 공간에 누운, 열일곱의 저만 있었다.
먼지처럼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혼자서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6년의 세월이 지워졌고, 아버지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샤오잔, 그의 생존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라진 6년 속 첫 여행과 똑같이 유채꽃밭에 떨어지고 막연히 느꼈다. 그의 시간은 돌아갔고, 살아있을 것이다.
눈을 감았다. 깊숙한 곳, 사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나무에 기대 앉아 이 여행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를 만나지 않아야 한다. 누구와도 엮이지 않아야 한다. 이 여행은 철저히 고독해야 한다. 그렇게 되뇌며 반복되는 여행의 시간에는 늘 숨고, 혼자가 되었다.
* * *
꾸역꾸역 살아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얻었고 그것이 새로운 삶의 지표가 되어 어떻게 살아졌다. 철저히 혼자가 될수록 저주 같은 병은 찾아오는 주기가 줄었으나 사라지진 않았다. 그러다 같은 직업군에 그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지독한 저주가 아직 저를 시험하고 있구나 느꼈다.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다. 피해야 했다. 제가 엮인 그의 삶의 끝을 알았다. 사라진 6년 속의 그는, 자신이 망친 것이었다.
“이보는 별로 말이 없네?”
“아… 네.”
꿈처럼 느껴졌다. 저 해사함은 샤오잔과 참 잘 어울린다. 이제는 그걸 자신이 뺏을 일은 없겠지. 애써 닿는 눈길을 피하며 혹시-하는 일말의 희망도 누르고자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일 때문에 엮이는 거야.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야.’
그렇게 되뇌면서도 속은 불안했다. 때문에 최대한 거리를 둬야 했다. 원래 말수가 적은 게 사실이었지만 샤오잔 앞에 서면 더욱 입을 닫았다. 눈길도 피했다. 속도 모르고 뛰는 심장이 행여나 희망을 키우고 사고를 칠까봐. 일만 끝나면 샤오잔의 인생에 더 끼어들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누르고 참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한편으로는 참 소중했다. 영영 잃을 뻔 했던 그의 반짝임이 제가 볼 수 있는 저의 시간 속에 있어서 슬프게도 행복했다.
“고생 많았어. 앞으로 자주 못 보겠네.”
또 손을 맞잡아 온다. 아쉬움을 묻힌 얼굴도 빛나기만 하다. 다행이다. 이보는 진심으로 웃어 보였다. 샤오잔도 함께 웃었다. 손바닥이 저렸다. 서서히 떨어지는 손이 아쉽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내려놓는 제가 우습다.
“참! 줄 거 있어.”
1초만 더, 1분만 더. 그가 더 쥐어주는 ‘함께’의 시간은 떨쳐낼 수가 없다. 사진 한 장을 건네며 잠시 닿는 온기에도 안도감을 느꼈다.
“2년 전이야. 사진 보는데 네가 있더라고.”
그가 건네는 웃음과 살짝 닿는 체온에서 저주가 끝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우리 첫 만남.”
사진 속에 가득 찬 노란색 사이 사라진 6년 속의 첫 만남 때와 같은 그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뒤쪽 멀리, 색을 잃은 이보가 함께였다. 이보가 보지 못한 그의 시간, 이보가 눈을 감은 저의 시간이 함께 있다.
이보는 다시 만난 후 처음으로, 샤오잔의 눈을 마주봤다.
그가 싱긋 웃는다.
“또 보자.”
안녕.
생각대로 작품이 써지지 않아서 고치고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쓰고 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금방 가더라고요. 생각했던 내용대로 썼는데 생각했던 만큼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요. 다음에 기회가 오면 그 때는 분수에 맞는 소재를 잡아 써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시는 분들에게 조금 죄송스럽네요. 제대로 완성된 작품을 내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정말 좋은 기회였어요. 제대로 이렇게 써본 연성은 처음이니까 시작점이라고 생각할게요. 합작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