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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두철

@xiaolongdc
*하단 BGM

받는 사람_우주연합소속 토끼꼬리성운 CH.B5M7T6B2 네퓨스 행성 샤오잔

‌아버지의 직업은 우주 통합연합국 우정사업부 소속 배달원이셨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배달 셔틀을 타고 이 행성, 저 행성으로 다니는 게 작은 행복이었다. 조금은 반항기가 생긴 사춘기를 지나 부쩍 줄어버린 말수에도 한 달에 두 번은 아버지에 셔틀에 말없이 몸을 싣곤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경로에 아주 작은 행성이 추가되었다. 그곳에는 왕이보보다 더 말이 없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지간히 말이 없어 아버지께 슬쩍 안드로이드냐고 물었지만, 종족이 다를 뿐 안드로이드는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왕이보는 믿지 못한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차가운 모습은 어딜 봐도 기계였기 때문이었다.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행성에 가져가는 배달물의 발신인은 예외 없이 우주 통합연합국이었다.  바깥에 ‘Top Secret’이라는 문구가 크게 박혀있는 커다란 큐브는 당사자의 승인이 있어야만 해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을 받는 그는 그러든가 말든가 그 앞에서 배달물이 든 큐브의 코드를 해제하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한번은 곤란한 얼굴을 하는 아버지께 아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누락이 되는 게 더 귀찮으니까요”하고 답변했었다.
슬쩍 훔쳐본 수신인의 이름은 ‘샤오잔’이었다.
 
 
 
크지 않은 행성이었지만 그 행성에 혼자 사는 샤오잔이 제법 궁금하던 왕이보였다. 아는 것이라고는 검은 티에 하얀색 가운,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표정이 전부였다. 넌지시 샤오잔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닌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마 그가 하는 연구 때문에 그곳으로 발령받았을 거라는 아주 작은 단서를 제공했다. 그 단서 때문에 그 뒤로 유난히 그의 큐브에 관심이 갔다. 기웃거리던 시선이 티가 나지 않게 조심스러운 눈걸음이 계속 뒤를 밟았다.
우주 식물을 연구하는 일이 아닐까. 큐브를 열었던 그가 진공관에 든 씨앗들을 보고 인상을 구기며 이렇게 보내오면 어떡하냐고 성을 냈던 걸 보면.
 
아버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을 보내면 언제나 가운 차림으로 나와선 표정 없는 얼굴로 배달물을 확인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온실 쪽 문에서, 그렇지 않으면 연구 기지 쪽 문을 열고 나왔다. 오늘도 여상스러웠다. 온실 쪽 문을 열고 나온 샤오잔은 평소같이 무미건조하게 큐브를 해제했고 내용을 확인했다. 그보다 작은 덩치의 왕이보였으나 그가 큐브의 내용물을 확인할 때면 몸을 숙였기에 왕이보는 아버지의 뒤에서 그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덩치는 다른 종족들보다는 조금 작은 듯했지만 왕이보의 종족과는 비슷해 보였고. 종족의 특성일까. 속눈썹은 유난히 길었다. 오롯이 눈에 샤오잔만 들어와 있었기에, 그래서였는지 그의 어깨에 붙은 노란 꽃잎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샤오잔의 놀라는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는 순간 고개를 들어 왕이보를 쳐다보았고 아버지도 놀라서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얼어버린 왕이보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샤오잔은 의외로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냥 다시 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셔틀에서 아버지께 연신 혼이 나면서도 샤오잔의 어깨에서 뗀 노란 꽃잎을 손에 쥐고 놓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보존 필름을 꺼내 그 꽃잎을 넣어 어딘가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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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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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샤오잔과 왕이보 단 둘의 교류는 아무것도 없었다. 왕이보가 아는 것은 그가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라는 점과 이름이 ‘샤오잔’이라는 것뿐, 그는 왕이보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이름조차 알지 못할지도 몰랐다. 왕이보는 행성에 다녀오면 한 이틀정도는 샤오잔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계속은 아니고 가끔씩 떠오를 정도로만. 딱 그 정도였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샤오잔이라는 자극은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왜 여기 있는지 설명 좀 해보시지?”
그렇기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멀뚱히 연구기지 앞에 서 있는 것은 아주 어색한 일이었다.
샤오잔이 사는 행성이 따뜻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얼어 죽을 뻔했었다. 얇은 스페이스 슈트를 입고 기껏해야 주행거리가 10광년밖에 되지 않는 미니 셔틀을 타고 나왔으니 당연히 챙길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와 호되게 혼난 탓에 도망나왔기에 무언가를 챙길 정신머리가 있을 리도 없었다.
미확인 물체가 행성에 비상 착륙했다는 알럿에 기지에서 작은 레이저 건을 들고나온 샤오잔은 기지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왕이보의 모습에 기가 차 조준 자세를 취하고 있던 팔을 풀고 팔짱을 꼈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기에는 미니 셔틀로는 돌아가기에 애매하게 먼 거리였다. 어쩌자고 저걸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머리를 짚고 오랫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샤오잔은 안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찾아도 당장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탓에 왕이보에게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연구기지로 데려왔다.
샤오잔은 다정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기껏 내온 것은 따뜻한 차에 옛날 비스킷 몇 개가 전부였다. 슈트를 해제하자 찬 공기가 살갗에 닿아서 그런지 닭살이 돋아 따뜻한 차로 손이 갔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차는 기대와는 아주 다른 맛이었다. 찻물에 혀를 데자마자 저도 모르게 으엑―, 하고 맛없는 표현을 해버렸다. 아주 무례한 행동에 다급하게 샤오잔의 눈치를 봤지만 그는 곁눈질로 흘깃 보더니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제 몫의 차를 홀짝이곤 비스킷을 하나 집어먹었다.
“그래서 왜 여기 있는지 설명 좀 해보시지?”
“그게…….”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마. 네 아버지께 연락해둘게.”
“아니, 잠깐만요! 가출했어요.”
가출이라니. 기껏 어른스러운 척을 했다지만 이제 다 망했다 싶었다. 낭패당한 표정으로 샤오잔의 얼굴은 쳐다도 못 본 채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잠깐 얼어있던 샤오잔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열여섯 살짜리가 가출을 핑계로 오기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그 연유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지만 충분히 흥미롭기는 했다.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기판에 기대서 왕이보가 하는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왕이보는 주섬주섬 무언가 제가 아버지와 싸운 이유를 이야기했다. 7할은 왕이보가 잘못한 것이긴 했지만 꼬맹이가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왕이보는 계속 이야기를 하며 샤오잔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와 같이 샤오잔은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저 돌려보내실 건가요?”
“응”
“잠깐만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안 돼.”
아, 제발…. 답지않게 간절해진 왕이보의 목소리에 물기가 맺혔다. 샤오잔은 이런 데 약했다. 한 것도 없는데 왜 울어? 당황해버린 나머지 결국 샤오잔 측에서 두손 두발 들었다. 알았어, 안 보낼게. 울지 마. 샤오잔은 제가 알고 있는 달랠만한 상황에 적당한 말들을 아무렇게나 뱉어냈다. 처음 보는 샤오잔의 논리정연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보내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숨을 고르기 시작한 왕이보였다. 긴장이 풀려서 배에서 꼬르륵―하고 요동치는 소리가 터졌다. 부끄러움에 다급히 아까 샤오잔이 놔두었던 비스킷을 집어 들었다. 아침부터 싸우고 바로 나왔으니 배가 고플 만 했다. 비스킷은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아까 마셨던 차와는 정말 다르게.
 
 
샤오잔이 자신과 아버지가 싸운 이유를 캐물을 줄 알았지만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 그저 둘이 대화 없이 각자의 일을 하는 데 그쳤다. 샤오잔의 연구실에서 주인은 아까 하던 연구를 계속했고 왕이보는 그 옆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그의 연구실을 둘러볼 뿐이었다. 샤오잔은왕이보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을 몇 권 던져주곤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책을 몇 장 들춰보던 왕이보는 이내 심심해진 나머지 샤오잔을 관찰했다. 고글을 착용하고 표본을 관찰하고 무언가 기록하고. 여기서 혼자 이렇게 지내는 건가. 아무도 없이? 또 하나의 궁금증이 추가되었다.
언제부터 혼자였을까? 왜 하필 우주식물이지? 아니, 왜 하필 이 행성에서 연구하는 거야? 지금 나이가 몇인데 왜? 왜?
왜?
물음들에서 나온 물음표가 왕이보의 호기심을 간질여서 재채기가 나오듯 자신도 모르게 샤오잔에게 물어보고야 말았다.
“샤오잔은 쭉 혼자였어요?”
샤오잔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 정도는 바꿨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거든. 그게 왕이보의 질문이 흥미롭다거나,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부류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하던 연구에 집중하며 대답만 해줬다.
“어, 혼자야.”
“외롭지 않아요?”
왕이보가 외로움을 많이 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샤오잔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아서 주제넘게 유추했을 뿐이었다. 아까처럼 별로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을 줄 알았던 샤오잔은 예상을 빗나가 이번에는 왕이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지으며 두 눈을 다시 접안렌즈에 가까이 가져다 두었다.
“이상한 애네.”
그 뒤에 다른 말은 붙이지 않았다.
 
 
 
행성의 하루는 아주 조용했다. 행성이 크지 않아서 하루도 매우 짧았다. 아마 그 때문에 이곳에서 우주 식물을 연구하는 것일지 몰랐다. 우주 통합 표준시로는 고작 세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행성은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궁금한 질문을 생각날 때마다 종이에 적었다. 답을 듣고 싶었지만 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한 바닥을 가득 채운 종이는 더는 여백이 남지 않아 그대로 왕이보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연구실은 이곳 한 군데만 사용하는 건가? 그렇게 잔뜩 적어놓고는 멈추지도 않는지 줄줄이 들러붙은 궁금증에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물었다. 사실 화장실을 핑계로 이곳을 나가볼 속셈이었다. 샤오잔은 위치를 알려주면서도 거리가 꽤 있으니까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화장실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흘러들었다가 티가 날까 나중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는 문 닫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아무것도 거칠 게 없어서인지 소리는 꽤 멀리, 아마도 저 끝에까지 울렸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무척 커 보였던 연구기지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왕이보가 다니는 학교보다 조금 작은 크기일지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게 샤오잔 하나라고 생각하니 쓸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이번에는 기지가 지나치게 넓게 느껴졌다. 벽면에는 행성의 고유 넘버가 인쇄되어 있었다. 샤오잔 혼자 방치된 이곳은 이름조차 없었다.
화장실은 핑계였으니 이곳저곳을 들쑤신다고 다니다가 샤오잔이 염려했던대로 길까지 잃어버렸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져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도구는 전혀 없었다. 다 똑같이 생긴 문 사이에서 복도나 빙빙 돌 수밖에 없었다.
 
통로다. 창문이 하나, 그리고 바닥에 다른 기호가 쓰인.
왕이보는 무지개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왕이보의 행성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내뿜는 빛의 스펙트럼으로는 무지개를 만들 수 없었기에. 하지만 아마도, 그걸 볼 수 있다면 저기 있을 법도 했다. 형형색색의 향연에 홀려 조금 더 가까이 보려하다가 바닥에 있던 기호를 밟았다. 그게 센서를 건드린 모양인지 굉음이 들리면서 사방에 붉은 경고등이 울렸다. 왕이보가 어쩔 줄 몰라하며 컨트롤 박스로 뛰어가자 누군가 그런 왕이보의 목깃의 뒤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빠른 손으로 경고를 해제했다.
“허가받지 않은 연구 구역에는 멋대로 돌아다니지 않는 건 기본 상식 아닌가?”
“죄송합니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나가는 방향이 화장실이 아니라서.”
혼을 내는 듯하던 샤오잔의 목소리를 곰곰이 다시 들어보니 평소의 목소리였다. 그는 화를 내진 않았지만 대신 딱밤을 한대 콩, 매기면서 하지 말라고 주의했다.
“보통 모르는 데면 무서워서라도 안 가려고 하는데, 하여간 이상한 애야.”
“무지개가 있을 것 같아서요.”
“무지개?”
“저희 행성에는 무지개가 뜰 수 없거든요.”
허, 아까 셔틀 앞에서 샤오잔이 냈던 기가 찬단 소리. 답지 않게 철없는 짓을 했다. 다시 한번 예의 바르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샤오잔은 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왕이보에게 돌아가는 얘기 대신 온실을 가리켰다.
“들어가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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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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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기에, 또 궁금하기도 엄청 궁금했던 참에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샤오잔을 따라 들어가자 샤오잔이 왕이보에게 방호복을 건네주었다. 네 종족에게는 유해한 종류가 많아 입는 거라며 어정쩡하게 품새만 갖춘 왕이보의 차림새를 제대로 갖춰주었다. 온실의 문이 열렸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 펼쳐졌다.
왕이보의 행성은 별과 가까운 탓에 가늘고 날카로운 잎을 가진 식물만 살아남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잎이 아주 두껍고 커다란 덩쿨과의 식물들이거나. 색깔은 죄다 광합성을 위한 초록빛이 대다수였다. 색을 가진 종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개량종이었고 기르는 법도 까다로워 부자들의 향유물로 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주의 모든 빛을 끌어모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모든 빛이 담겨있었다. 아아, 그래, 무지개. 학교에서 배웠던 그 무지개의 모든 색이 이곳에 있었다. 한참을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저를 보고 어째서인지 샤오잔이 조금 웃는 것도 같은 표정이었다.
온실의 한 가운데에는 의자가 두 개 있었다. 그 앞에는 테이블도 하나 있었고. 의자에는 한쪽에만 ‘샤오잔’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샤오잔은 글씨가 쓰이지 않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온실을 둘러보던 왕이보도 그 앞에 앉았다.
“계속 여기서 혼자였어요?”
“아니, 처음부터는 아니었어.”
샤오잔의 눈이 어디에 있는가 했더니 앞, 의자에 쓰인 이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왕이보는 궁금하기도 하면서도 괜히 묻고 싶지는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문뜩, 여기에는 작은 꽃잎을 가진  노란 꽃은 없다는 게 생각났다. 샤오잔의 어깨에 붙어있던 그것을 은연중에 계속 찾고 있었다. 다시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왕이보를 샤오잔은 이번에도 가만히 놔두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샤오잔에게 물었다. 그 노란 꽃의 행방을.
“지난번에 그 노란 꽃은 어디 있어요?”
“노란, 아. 그건 야외 연구 구역에 있어.”
“보여주시는 김에 보여주시면 안 돼요?”
당돌하다 못해 무례한 모습에 샤오잔이 왕이보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로 졌곤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야외구역은 바깥이라서 스페이스 슈트를 입어야 한다며 방호복 위에 비상용 슈트를 꺼내 입혀주었다. 수트는 왕이보에게도 컸지만 어쩐지 샤오잔에게는 작을 것 같았다. 또 하나의 궁금증 추가. 샤오잔은 입지 않냐는 물음에 나는 적응종이라 괜찮다고 답했다. 왕이보가 입은 스페이스 슈트의 기능이 모두 정상이라는 패널의 수치를 확인하고 샤오잔이 온실의 문을 개방했다.
 
아까까지 분명 검푸른 빛이었던 하늘이  일출을 기다리며 온 하늘은 어수룩한 붉은 빛을 품고 있었다. 그 위를 둥실 떠다니는 빛무리와 바로 밑에 노란색, 아주 샛노란, 작은 꽃들의 향연.
 
바닥 아무 데나 앉아 꽃밫을 감상하는 샤오잔의 옆으로 왕이보도 자리했다.
핼맺에 비친 노란색은 샤오잔에게도 겹쳐 보였다. 샤오잔은 아까와는 다른 얼굴로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의 이름이 뭐예요?”
“지구에서는 유채라고 하던데.”
유채, 유채. 왕이보는 입으로 몇 번이나 그것을 되뇄다. 유채꽃밭을, 아니 그사이에 앉아있는 샤오잔을 계속 쳐다보던 왕이보는 톡톡, 꽃봉오리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걸 피하고 싶어 시선을 돌렸지만 계속 샤오잔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게 이상했다.
“저거 봐봐.”
샤오잔이 손가락으로 지평선을 가리켰다.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해는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샤오잔의 얼굴에도 별의 빛이 부딪혔다.
톡,
또 꽃봉오리가 터졌다. 그 때문인지 샤오잔을 제외하곤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나른해졌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이제 돌아가야지.”
샤오잔의 말소리가 진동에 묻혀 간신히 알아들었다. 멀리서 엔진이 도는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의 빨간 슈트가 보였다. 표준시로는 밤에 가까울 시간에 샤오잔의 행성에서는 해가 뜨고 있었다. 왕이보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는 그가 이상하게 다정해 왕이보는 마지막으로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저한테 온실 보여주신 이유가 뭐예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힘을 주어 일어나면서 부쩍 높아진 그와 눈을 맞췄다. 샤오잔은 마지막까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이상한 애라고 했던 그 표정을 다시 짓고는 아주 부드럽게 왕이보에게 답해주었다.
“글쎄, 외로웠나 보지.”
이번에도 별것 아니라는 얼굴. 왕이보는 그게 진심이라고 믿지 않았다. 샤오잔이 손을 올린 두 어깨가 뜨거웠다. 그가 뒤에 서서 아버지를 마주 보는데 그런 그의 숨이 이상하게 제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도 꽃잎이 그의 어깨에 붙었을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까 힘이 다 빠져나가서 도통 몸을 돌릴 수 없었다.
아버지의 쪽으로 가고 나서야 샤오잔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뜨는 해가 그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어떤 표정이었는지 셔틀에 타는 순간까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엔진 때문인지 주변이 윙윙거려 그와의 대화를 다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개중에는 샤오잔의 행성에는 무지개가 뜬다고 했던 것 같다.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아마도 샤오잔도 다 듣지 못했던 것 같지만, 아니면 다 못 들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주었던 것 같다.
 
만약 왕이보의 어깨에 또 유채 꽃잎이 떨어져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다시 이곳에 올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섰다.
셔틀의 유리창 밖으로 점점 작아지는 샤오잔을 꼼꼼히 살폈다가 그 노란빛이 가득 샤오잔을 감싸 왕이보는 웃었다. 그가 웃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꽃잎이야 어쨌든, 무지개가 어떻게 생겼든. 그걸 핑계로 이곳에 다시 올 명분까지 만들었던 해 뜨던 작은 행성에서 왕이보는 평생을 묻어두고 왔다는 건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먼 미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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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이보가 샤오잔에게 보낸 첫 편지에는 행성의 이름이 ‘네퓨스’가 어떠냐고 물어보는 내용이 있었다.
     1-1 샤오잔은 답장해주지 않았지만 그다음 행성 데이터에 고유 넘버가 아닌 네퓨스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샤오잔의 첫 답장은 왕이보의 생일, 자신이 생일이라며 축하해달라던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2-1. 생일 축하해. 꼬맹이
     2-2. 그리고 동봉된 사진은 무지개였다.
3. 매달 두 번씩 행성을 방문했던 왕이보가 그 횟수를 한 달로, 이내는 발길을 끊은 것은 생일을 네 번 지내고 나서였다.
     3-1. 한 해를 편지 없이 지내고 여섯 번째 생일이 지날 때, 이번에는 샤오잔의 생일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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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 애가 보낸 편지는 온실의 테이블 위에 가득 쌓아두었다. 답지 않게 그 나이 또래 애들이 좋아한다는 군것질거리가 배달물에 추가되었다는 건 발걸음을 끊은 왕이보는 전혀 모를 테지. 제 딴에는 몰래 가져온다고 생각하던 그 애의 짐이 꽤 많아져 주로 상주하는 연구실 한켠에 자리를 내어준 것도 아직 모르는 사실일 테였다. 오랜만에 받는 편지는 괘씸한 부분도 있었고, 반가운 부분도 있었다. 나이가 들었나. 이전과 같이 왕이보에게 마냥 독하게 굴지는 못하던 차였다. 수신인을 확인하자 지나친 반가움에 답지 않게 소리 내서 웃었다.
이 꼬맹이는 어울리지 않게 낭만적이었다. 가르쳐줬다는 사실도 기억나지 않는 제 생일을 꼬박꼬박 기억해 선물을 보내더니 이번 선물은 제 편지라도 되는지 아주 알맞게 도착했다. 준비가 늦었던 모양인지 밖에 ‘Express’라고 쓰여있는 급한 티는 못 본 척 눈을 감아주기로 했다.
편지를 뜯기도 전에 셔틀 착륙장에 엔진소리와 큰 진동이 들리기 시작했다. 곧 천장이 열리면서 제법 규모 있는 셔틀이 안정적으로 착륙했다. 파일럿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이런 짓을 할 범인은 불 보듯 뻔했다. 말도 안 되는 착륙 허가를 요청하고 불시에 찾아올 간 큰 인물은. 그래서 샤오잔은 그 앞에 서서 편지 봉투를 흔들었다. 이어 셔틀의 출입구가 열렸고 붉은색 제복을 입은 파일럿이 샤오잔에게 냅다 뛰어왔다.
반가움을 표하기도 전에 목덜미가 당겨져 입이 맞춰진 탓에 상대의 얼굴보다 먼저 발견한 건,
“보고 싶었어요.”
그의 붉은 제복 뒤에 유리창을 가득 채운, 무지개. 아, 무지개가 떴구나.
그 아래 노란 카펫과도 같은 꽃들은 어느샌가 왕이보의 손에 들려 샤오잔의 앞에까지 도착했다. 10광년을 넘어서 수없이 오갔을 말들의 끝. 샤오잔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3-2.
 
받는 사람 : 우주연합소속 토끼꼬리성운 CH.B5M7T6B2 네퓨스 행성 샤오잔
                샤오잔에게
                당신이 아마 이 편지를 받을 때는 나는 당신에게 가고 있을 거예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파일럿 시험을 준비하느라 그랬어요. 게다가 놀래켜주고 싶기도 했고요.
                잘 지내고 있는 거 맞죠?
                샤오잔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어서 빨리 만나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왕이보가.
 
보내는 사람: 우주연합소속 행성연방 스페이스 인스티튜트
선셋블랭킷 소위 왕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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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기회에 합작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께 따뜻한 봄이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