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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짱구 

@BjYxSzD22

Tangible One


 
 365일 내내 뜨겁고 습한 열대기후의 섬나라는 이렇다 할 관광지 없이도 사람들로 붐볐다. 크고 다양한 모양의 수영장과 그 주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리조트들은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부터 주름진 노인까지 모든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섬 전체가 커다란 리조트인 곳에서 사람들은 휴가를 즐겼다. 마치 일상과는 동떨어진, 행복하고 여유로운 생활로만 가득한 세상에 떨어진 것처럼 사람들은 더 즐기기 위해 애를 썼다. 샤오잔은 그런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노란 난간의 베란다를 가진 동화 같은 리조트에 머무른 지 벌써 여덟 달째였다. 베란다에 나가면 크고 높이 솟은 야자수가 열 그루는 족히 넘게 보였고,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푸른 빛의 수영장이 보였다. 아이들이 튜브를 끼고 헤엄쳤고 청년들은 햇빛을 즐겼다. 하지만 샤오잔이 베란다에 나가 그들을 보는 것은 일종의 습관일 뿐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베란다로 나가는 게 아니었다. 현실감을 깨우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샤오잔은 하루에 15시간 정도를 잤다. 매일 매일 아주 긴 꿈을 꾸었다. 참 길고 선명해서 현실 같은 꿈이었다. 샤오잔이 이 섬나라에 오게 된 원인이 불면증이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매일 오랜 잠을 잤다. 불면증 치료가 끝났으나 샤오잔은 다시 돌아가지 않고 이 리조트에 머물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시간을 내어 생각해본 적은 없으나 아마도 그 꿈 때문일 것이다.
 
 눈을 감고, 손을 배 위에 얹고, 크게 숨을 내뱉으면,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베란다를 나갔을 때 본 수영장의 색이 하늘의 색과 같다. 기대고 섰던 난간 색이 유채꽃 색과 같다. 바람 한 점 없어 흔들리지도 않던 야자수 잎의 색이 유채꽃 줄기 색과 같다. 드넓은 유채꽃밭. 어딘지 모르는 곳이었으나 그 풍경을 이루는 색상만은 익숙했다. 한 소년이 손짓한다. 모르는 소년이다. 다만 벌써 여덟 달째, 그 소년과 24시간 중 15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는 소년이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유채꽃 한 다발을 건네고, 손을 잡아 이끈다. 이 소년과 함께 하는 시간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코끝엔 달큰한 내음이 풍긴다. 소년은 매일 조금씩 달랐다. 얼굴은 항상 하얗고 부드러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날은 슬픈 눈을 하고, 또 어느 날은 기쁜 눈을 하고 있었다. 샤오잔은 그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가끔 소년의 눈이 슬퍼 보이면 먼저 유채꽃을 꺾어 건네기도 했다. 그러면 그 소년은 웃었다. 샤오잔은 매일 밤 꿈속에서 소년과 유채꽃밭을 달리고, 힘들면 풀썩 주저앉아 손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아쉽게도, 꿈에서 깨고 나면 소년의 목소리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영화 자막을 본 것처럼 글자만이 머릿속에 기억 남았다. 그 소년과 함께 있으면 샤오잔은 많이 웃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하는데도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아무래도 꿈속의 소년이 내 운명의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하게 된 지도 꽤 되었다.
 
 꿈에서 깨고 나면, 샤오잔은 꼭 시가 하나를 입에 물고 베란다로 나갔다. 덤덤한 표정으로 파란 수영장, 노란 난간, 푸릇한 잎사귀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서는 폭이 좁고 길쭉한 리조트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종이에 편지를 썼다. 당연히 받는 사람은 그 소년. 꿈속의 소년. 아주 가끔, 책상 끄트머리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다가 떨어진 편지 종이를 보면 받지도 못할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사실이 샤오잔의 가슴 언저리를 먹먹하게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 잠들고, 깨었다가, 베란다에 나가 시가 한 대를 피우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몸에 그 소년을 기억하기 위한 생활이 베어버린 듯했다.
 
 점점 리조트에 사람이 많아지는 걸 보니, 휴가철이 맞았다. 각기 다른 색의 수영복이 수영장 물속에서 물감 퍼지듯이 흐릿하게 섞였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정오의 햇빛은 수영장 물을 반짝였다. 샤오잔은 그 윤슬을 뚫고 첨벙, 뛰어드는 한 청년을 보았다. 새파란 반바지 수영복을 입은 청년은 샤오잔의 시선을 속절없이 뺏었다. 청년은 물에서 태어난 것처럼 유연하게 사람들 사이로 수영하다가 숨이 다 찼는지 수면 위로 우뚝 올라와 고개를 털었다. 빽빽한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져나왔다. 물에 젖은 얼굴이 낯익었다. 샤오잔은 이 리조트에 머무르며 처음으로 다급해졌다. 허겁지겁 티셔츠와 바지를 챙겨입고 급한 대로 슬리퍼에 발을 끼워 수영장으로 향했다. 몇 개월만의 외출인가, 계산해볼 여유도 없었다. 낯선 나라의 언어가 귀에서 웅웅 울리고, 종아리에 물이 튀고, 타인의 어깨와 부딪히고… 현실이구나, 깨닫게 하는 감각들이 이어지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리고 청년의 앞에 섰을 때, 햇빛이 들어와 앉은 갈색 눈동자가 너무나 익숙해서 눈물이 흘렀다. 다짜고짜 모르는 사람에게 손목이 붙잡힌 청년은 그 눈물에 당황한 듯 보였다. 게다가 청년은 방금 막 수영장에서 나와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있었지만 샤오잔은 그 모든 상황을 인지할 겨를이 없었다. 단순히 그 반가운 청년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이보’였다. 샤오잔은 그 청년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보는 이번 휴가철 내내 리조트에서 벨보이 일을 하면서 머무를 계획이라고 했다. 나이트 타임 업무를 맡아 새벽부터 아침까지는 잠을 자고 낮엔 수영이나 산책을 한다고. 샤오잔은 누가 봐도 이상했을 제 행동에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던 이보를 떠올렸다. 이보는 놀란 듯이 보였지만 왜 그러느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오히려 울고 있는 샤오잔을 달래고 제 이름과 업무를 읊으며 도움이 필요하면 로비 건물로 와서 저를 부르라고 말해주었다. 샤오잔을 객실까지 다 데려다주고 나서야 떠났다. 그 일련의 행동들이 샤오잔의 뇌에 그대로 남아 멍하니 밤을 지새우게 했다. 눈을 감지 않아도 꿈속의 소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이보는 그 아이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으나, 샤오잔은 그 둘이 같은 인물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잠을 자지 않는데도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았다 떠도 그 목소리가 흩어지지 않았다. 열린 베란다 문틈으로 물기 어린 풀냄새가 풍겼다. 여름의 향. 푹푹 찌는 열대야지만 천장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실링 팬이 미세하게 바람을 만들어냈다. 그 바람을 타고 여름 냄새가 코끝에 와닿았다. 샤오잔은 아침 해가 밝을 때까지 온몸으로, 온 감각으로 여름을 만끽했다.
 
 매일같이 룸서비스를 시켜 끼니를 해결하던 샤오잔이 조식을 먹으러 나갔다. 사실 배는 그렇게 고프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가져다 먹는 열대 과일만 몇 개 집어 먹고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다 어제 처음 가본 반달 모양 수영장을 다시 가보았다. 둘레를 한 바퀴 돌려면 꽤 걸릴 만큼 규모가 컸다. 두 바퀴 돌 때쯤 되니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까이서 보니 그들의 얼굴이 참 밝았다. 샤오잔이 무감각하게 응시해오던 표정들은 사실 생기가 넘쳤다. 내일은 수영을 한 번 해볼까, 생각하던 찰나 이보가 인사했다. 이보는 오늘도 역시 맨몸에 파란 반바지 수영복 하나만 입고 있었다. 사실 이 섬은 덥기도 하고 휴양지라는 듣기 좋은 명목도 있으니 비키니 차림, 트렁크같이 보이는 짧은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보도 그중 한 명일 뿐이었다. 이보는 샤오잔에게 어제 객실에 돌아간 뒤 괜찮았냐고 물었다. 샤오잔은 괜찮았다고 했다. 불면증이 도진 것 같지만 기분은 정말 괜찮았으니까. 이보가 샤오잔 앞에서 갑자기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물이 몹시 튀었다. 샤오잔은 별안간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고 이보는 그 모습을 보고 수면을 팡팡 치며 웃었다. 샤오잔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보가 수영장 끝에 팔을 걸치고 샤오잔에게 이리 들어오라 말했다. 유채꽃밭에서 손을 잡아 이끌던 그 모습이었다. 샤오잔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보에게 이끌렸다. 이보가 내민 손을 잡고 수영장 안으로 풍덩, 들어갔다. 한 번 부르르 떨고 나니 물 온도에 금방 적응이 되었다. 오히려 이보와 물을 뿌리며 장난치다 보니 머리칼에서 흐르는 게 물인지 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한참을 즐겁게 놀았다. 샤오잔은 다 잊고 물장구도 쳐보았다. 그러다 이보가 먼저 수영장 테두리에 올라가 걸터앉길래 샤오잔도 그 옆에 앉았다. 뜨거운 태양이 금세 물기를 말렸다. 이보가 샤오잔의 이름을 물었다. 샤오잔이 대답해주었다. 이보가 또 샤오잔의 나이를 물었다. 샤오잔이 대답해주었다. 이보가 손가락을 접으며 여섯 살, 응, 하고 혼잣말했다. 샤오잔이 이보에게 너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보가 어디서? 라고 물어왔다. 샤오잔은 발을 저어 하얀 물방울을 만들며 꿈속에서, 라고 대답했다. 이보가 나도 샤오잔 본 것 같아, 하고 웃었다. 수영을 너무 열심히 했는지 숨쉬기가 퍽 곤란해 문제였다.
 
 샤오잔이 이보에게 객실 번호를 알려준 뒤로는, 저녁에 룸서비스를 시키면 이보가 직접 왔다. 처음으로 맨몸 차림이 아닌 자주색 벨보이 조끼를 입은 이보를 보았을 때 샤오잔은 아주 살짝 낯설어했지만 이내 그 모습에도 익숙해졌다. 이보는 음식이 여럿 올라간 카트를 끌고 와 문 앞에서 멈춰 선 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면 객실 번호가 적힌 접시를 골라 건네주곤 했다. 샤오잔은 매일 그 접시를 받고 고맙다 인사했으며 이보는 당연히 내가 와야지, 하고 능글맞게 받아쳤다. 오늘은 이보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샤오잔의 객실 앞에 도착했다. 끌고 온 카트에는 접시가 하나뿐이었다. 다른 객실에 먼저 들려 음식을 모두 배달하고 마지막으로 샤오잔에게 온 것이었다. 이보가 서프라이즈라면서 샴페인 병 하나를 샤오잔의 눈앞에 흔들었다. 샤오잔은 오늘이 무슨 날인가 고민해보려다 그냥 말고 이보를 문 안으로 들였다. 이보가 음식 접시를 들고 책상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샤오잔이 수 개월간 꿈속의 이보에게 쓴 편지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이보가 책상의 빈 공간에 접시를 내려놓고 편지 한 장을 집어들었다.
 
안녕. 운명.
끝없는 유채꽃밭. 오늘 또. 다행이야.
넌 슬펐어.
정말?
눈동자에 일렁이는 하늘을 봤어.
초록 줄기에서 잎, 아니면 가시.
중력에 짓눌린 가슴이 아픈 거야….
물방울이 맺히고 낙하해 내 손에 떨어질 때,
나는 너야. 어둡게 잠식했어.
미안해. 내일.

 
이보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편지를 쥔 채로. 샤오잔이 다가와 편지를 빼앗아갔다. 이건 그냥 편지야. 이보가 샤오잔을 평소보다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샤오잔, 꿈속에서 정말 나를 봐?
 
 샤오잔이 저 스스로 정신에 이상이 있음을 인지한 건 현실에서 처음 이보를 만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여태껏 편지를 마구 쓰기만 했지, 읽어본 적이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어딘가 고장나 있던 일상에 이보가 난데없이 닥쳐 들어왔고, 꿈을 꾸던 15시간은 온전히 샤오잔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샤오잔은 제가 썼던 편지를 읽어봤었다. 분명 저는 소년에게 말하듯이 편지를 썼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자 그대로, 꿈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빠르고 다급하게. 다시 읽어본 편지는 어딘가 많이 혼란스러웠다. 편지라고 하기엔 이상했다. 마치 혼잣말 같았다. 저가 쓴 것인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샤오잔은 편지가 이상하다는 생각 자체를 또 잊었다. 그러다 이보가 편지를 들고 있는 걸 본 그 순간. 알고 있었는데 왜 몰랐지? 하는 모순적이지만 또 익숙한 사고가 뇌리를 스쳤고, 간당간당하게 쌓아 올린 제 자아가 죄 무너져버리는 통각을 느꼈다. 깨달음 뒤에 몰려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샤오잔의 피부에, 동공에 와닿은 이보의 눈빛이 샤오잔 네가 지금 느껴야 할 감정이 두려움이 맞다며 빠져나갈 틈도 없이 샤오잔을 가뒀다.
 꿈속에서 본 그 아이는 네가 맞는데. 맞을 텐데. 맞아야 할 텐데. 확인하고 싶어서 다시 잠을 청해봐도 이제 그 꿈을 꾸지 않아.
 
 이보는 제 질문에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무너져내린 샤오잔을 보고 확신했다. 이 사람은 아직 꿈속에 살고 있구나, 하고. 이보가 좋아한 샤오잔은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고민도 걱정도 없이 이 섬과 하나 되어 머무르는 사람. 그런데 오히려 샤오잔은 그 반대였다. 언제나 그 꿈에 고립되어 있었다. 순간을 즐긴 게 아니라 현재가 될 미래에 항상 쫓기고 있었다. 어쩌면 샤오잔 본인일지도 모를 꿈속의 소년에게 과하게 집착했다. 그런 샤오잔의 마음과 정신을 내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보가 생각했다. 샤오잔은 이제 울고 있었다. 겁에 질린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이보는 왠지 그런 샤오잔을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분명 저는 샤오잔을 다 감당하지 못할테지만 그건 다른 문제였다. 지금 바닥에 주저앉은 저 사람을 안아주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샤오잔을 안자 뒤죽박죽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상념들이 재가 되어 탔다. 이 사람은 더운 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었나 봐.
 
 오랜만에 느끼는 개운함이었다. 눈두덩이가 묵직하긴 했으나 정신이 개운했다. 샤오잔은 직감적으로 제가 꿈을 꾸지 않고 숙면했음을 알았다. 먹먹한 눈꺼풀을 들어 올려 처음 본 것은 이보였다. 이보는 샤오잔의 손을 잡고 옆으로 누워 잠자고 있었다. 샤오잔이 깬 기척을 느낀 이보가 다 잠긴 목소리로 일어났냐고 물었다. 샤오잔은 대답을 생략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보가 비몽사몽한 상태로 샤오잔에게 고백했다.
 나는 샤오잔이 좋아. 걱정하지 마. 아, 그런데 그 꿈은 궁금해…. 어떤 꿈을 꾼 거야?
 끝이 안 보이는 유채꽃밭이었어. 수영장이랑 똑같은 색의 하늘, 야자수 잎이랑 똑같은 색의 줄기, 저기 베란다 난간이랑 똑같은 색의 유채꽃…. 거기서 네가 나한테 유채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줬어. 네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내가 만들어줬어. 그냥 뛰어다니면서 놀았어. 꼭 우리가 수영장에서 놀았던 것처럼.
 으응, 그랬구나. 나도 그 유채꽃밭 가보고 싶어.
 나도 이제 못가.
 왜?
 이보 네가 정말로 나타난 뒤로는 꿈을 꾸지 않았어.
 다행이다. 내가 두 명인 건 싫어.
 넌 하나야.
 응. 샤오잔도 하나야.
 
 샤오잔은 두려움이 싹 사라지고 오히려 모든 걸 털어놓을 용기가 생긴 이 상황이 신기했다. 아마도 눈을 떴을 때 이보가 여전히 옆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무너져내린 자아가 튼튼하고 빽빽한 흙바닥을 갖춘 기분이 들었다. 여기엔 어떤 감정을 쌓아 올려도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것 같았다. 이젠 꿈도 꾸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보가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손도 잡고 있을 수 있는 이보.
 
 나도 너도 딱 하나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자.
 응, 그러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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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부족한 글솜씨지만 좋은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행사 계획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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