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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칸

@BBBBinKan

너에게 ROSE


‌완벽하다 할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일어났을 때부터 기분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좋았고 등교할 때 사서 마신 커피도 점심으로 먹은 초밥도 비린 것 하나 없이 맛있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침대에 누울 때까지 완벽한 날이 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꼭 일이 생긴다는 말도 잊어버릴 만큼.
흥얼거리면서 걷던 왕이보의 머리로 물이 쏟아졌다. 울컥 쏟아졌다기보다 마치 샤워기를 튼 것 같은 그 물을 따라 시선을 따라가니 호스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자신도 깜짝 놀랐는지 꺼진 호스에서 남은 물이 뚝뚝 떨어져 신발을 젖게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왕이보는 그를 보는 순간 꽃내음이 코안을 가득 채워 그 주위로 꽃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길쭉한 키에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까지. 잘생겼다는 말 외에 할 얘기가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분홍색 앞치마까지 정말 완벽해 보였다.


왕이보는 데스크에 앉아 턱을 괴고 하염없이 시계와 출입문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갖가지 꽃과 화분들이 놓여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보는 그런 환경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데스크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데 도대체 언제 오는 건지
이보는 맞선을 보러 나간 그의 사장인 샤오잔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31살인 그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이 달에 한 번씩 맞선을 보러 다닌다. 항상 이어지지 않는 걸 보면 하고 싶은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렇게 꼬박꼬박 나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랑 결혼해주지.
혼자 꿍얼거리고 있던 이보는 통창 너머로 세워지는 차 한 대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장님. 오셨어요?”
차 문을 열고 나오던 잔은 반갑게 맞이해주는 이보를 보고 저렇게 사장이 오는 걸 반기는 알바생이 있을까 생각을 하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잔이 들어갈 때까지 문 앞에 서서 기다리던 이보는 반듯하게 차려입은 잔의 정장 차림을 보며 남몰래 침을 삼켰다.
언제쯤이면 자신도 그와 같이 정장이 어울리게 될지……. 그 옆에 서 있을 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뒤에서 봐도 멋있지?
잔이 갑갑하다는 듯이 넥타이를 풀고 겉옷을 벗는 동안 눈을 떼지도 못하고 보고 있던 이보는 잔이 불렀을 때야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
“마감은 내가 할 테니까 오늘은 먼저 퇴근해도 돼.”
아……… 벌써?
“그, 사장님. 혹시 저녁 드셨어요?”
“어? 아직 안 먹었지. 왜? 같이 먹어주려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리는 이보는 알겠다며 마감하고 가자는 잔의 말에 눈 깜짝할 새에 밖에 놓여있던 화분을 모두 안으로 들여두고 화분이 놓여있던 자리를 쓸었고 잔은 그런 이보를 보며 웃기 바빴다. 평소 마감하던 시간의 반도 걸리지 않고 정리를 끝낸 이보와 잔은 가게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 들어갔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모두 나오고 불판에 올려진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반주로 시킨 술을 마시다 이보가 잔을 내려놓았다.
“사장님. 혹시 왜 결혼을 빨리하려고 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안된다고 해도 되는 거야?”
“….진짜 안 돼요?”
질문하면 안되는 거였던 건지 애꿎은 반찬만 뒤적거리는데 고기를 뒤집고 집게를 내려둔 잔이 음……. 하고 운을 띄웠다.
“빨리하고 싶다기보다는….. 혼자 있는 게 지겨워져서. 요즘 좀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 결혼 말고 연애도 괜찮지 않아요?”
“내가? 누구랑 해. 종일 가게에만 있는데.”
됐다며 손을 내저은 잔은 고기가 다 익었다며 앞접시에 덜어주고서 화제를 돌렸다.
이보도 어색한 것보다 웃는 게 좋다고 비워진 술잔에 술을 따르며 그것도 그렇다며 웃었다.
고기 한 점에 술 한잔. 분위기를 풀겠다고 계속해서 마셨던 게 오버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앞에 앉아있는 잔은 왜 이렇게 또 잘생겼는지 무거워지는 얼굴을 손으로 받치고 보고 있자니 좀 전에 했던 얘기가 머리에서 아른거렸다.
왜 연애할 사람이 없다는 것처럼 말한 거지? 나는 연애 상대 범위 안에도 안 들어가는 건가? 그건 좀 너무한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서러운 거다. 이럴 바에야 물어보는 게 낫지.
“저, 형!”
“어?”
쌈을 크게 싸 먹고 있던 잔은 이보의 부름에 마저 밀어 넣고 우물거리며 대답을 했다.
“귀여어……. 아니. 형. 있잖아요….. 형은 저 어떻게 생각해요? 혹시 제 나이가 어려서 그래요?”
“응?”
“그러니까요. 형 연애 말이에요.”
“아니, 잠깐만. 이보야?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데 안 했으면 좋겠어.”
“왜요? 안다면서요.”
“아니까. 아르바이트는 계속 해야 하잖아. 계속 만나야 하는데 어색한 거 안 좋아.”
“형은 그게 문제에요?”
괴고 있는 손을 의자에 팡. 치며 허리를 세운 이보는 두어 번 눈을 감았다 뜨더니 감기려던 눈이 다시 멀쩡해졌다. 그러더니 풀려가던 혀도 다시 제자리를 찾은 건지 발음도 정확해졌다.
“그런 거면요. 형. 어색한 게 싫다면 내가 신경은 쓰인다는 거잖아요. 난 그게 더 좋은데.”
할 말을 마친 이보는 식탁 끄트머리에 있던 영수증을 챙기고 먼저 가보겠다며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말릴 틈도 없이 계산대로 직진을 했다.
“이보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우뚝 멈춰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원의 영수증 드릴까요? 라는 말에 재빨리 카드만 받고 가게에서 도망치듯이 나가버렸다.
그대로 혼자 남겨진 잔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보 말대로 차라리 들은 척도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어제 도대체 뭘 얼마나 먹고 마셨던 건지 문자로 날아온 카드 명세서는 한 달 생활비에 버금가고 속은 울렁거리는 게 딱 죽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게 아닌데…… 진짜 죽고 싶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하필이면 고백을 해도 술에 취해있을 때 한 거냐고 미쳐버리겠다 정말. 아니지. 그래도 차라리 잘된 일이다. 언제까지 짝사랑만 하고 있을 거야.
술 냄새라고는 하나도 나지 않게끔 박박 씻고 집을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딱 이 골목만 돌면 가게인데 왜 발이 앞으로 안 나가지는 건지.
주먹을 꽉 쥐고 가게 앞으로 갔을 때 이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버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이거 운명인 거 아니에요?”
“운명은 무슨! 괜찮아?”
어떻게 그날 그 모습 그대로 인 건지 이런 걸 보고 한결 같다는 걸까 이보는 분홍색 앞치마를 하는 잔을 보며 다시 한번 반하는 중이었다. 홀딱 젖은 머리나 옷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게 분명했다.
“물 맞은 게 뭐 어때서요. 완전 괜찮아요. 날도 좋은데 시원해지고 좋은데요?”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면서 웃던 이보는 처음 본 날처럼 젖은 모습에 잔에게 그날 기억나냐며 손짓을 해 보였다.
“처음에 우리 만난 날이요! 저 이렇게 지나가다가 오늘처럼 물맞았잖아요! 저 그때 형 보고 반한 건데.”
“형 아니고 사장님. 너 출근했잖아.”
“아! 사장님. 어때요? 지금 막 씻고 나온 모습 같은데?”
잔은 힐끗 보더니, 데스크 아래에 있던 수건을 꺼내 이보에게 던져주고선 바에 내놓은 꽃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왜 대답을 안 해요? 사장님? 어때요. 좀 멋있지 않아요? 저 잘생겼다는 소리 자주 들었었는데.”
꽃 옮기는 걸 도와주면서 계속해서 말을 걸자 잔이 그럼 가만히 있어 보라며 이보를 세우더니 이리저리 꼼꼼히 훑어봤다.
“음…… 물에 빠진 생쥐 같네.”
“네? 어…… 그럼 귀엽다는 거에요?”
“뭐라고?”
“생쥐면 역시 귀여운 거죠. 사장님 연하 어떻게 생각해요? 이 정도면 궁합도 안 봐도 될 거 같은데”
뻔뻔한 이보의 말에 잔은 다시 꽃을 옮기며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보도 알고 있다. 이게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뿐이라는걸.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어났을 것 같은 상황들이 무서웠다. 내 고백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평소와 같은 모습이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대로 차이거나. 전자보다야 후자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고 나면 아르바이트도 관둬야 할 거 같고 그럼 다시는 얼굴도 보지 못할 것 같으니 철이 없어 보이더라도 옆에서 계속 치근덕거릴 수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궁합도 안 본다는 건 4살 차이고 너랑 나는 6살이니까. 아니지.”
“어? 언제 그렇게 바뀌었어요?”
“바뀐 게 아니라 원래 그랬어.”
“그랬어요? 아쉽다….. 그럼 연하는 괜찮다는 거죠?”
시작이 좋다며 웃은 이보는 남은 꽃바구니를 한 번에 옮기고서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욕심을 많이 내다가 망할 수 있다는걸 이보는 알고 있었다. 설령 잔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생각도 않다가 답을 달라고 하면 거절일 테니까 천천히 날 좋아한다고 세뇌할 작정이었다. 그것도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거지만. 오늘 같기만 하면 영퍼센트는 아닌 거 같았다.
그리고 장난삼아 얘기한 거지만 외모에 자신이 있다는 건 진심이었다. 몇 살이든 어디를 가든 잘생겼다는 말은 항상 들어왔으니 그것도 계획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점수를 깎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평소처럼 농담도 하고 손님을 받고 있는데 한 손님이 혹시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 있냐고 물었다. 이보는 뭐가 있었는지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옆으로 잔이 다가와 꽃 한 송이를 꺼내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비단향꽃무라는 꽃인데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역경을 극복하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고요. 좋죠?”
고개를 끄덕이는 손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잔은 연한 파스텔의 색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며 어머님의 쾌차를 바란다고 얘기를 건넸다. 그에 손님은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나서야 가게를 나섰다.
“어떻게 알았어요?”
“달에 한 번씩 오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거든. 한 석 달 전 즈음부터 안 오시더라고. 저분이 그분 따님이니까. 몇 번 봤었어.”
“와…… 사장님. 진짜 멋있어요.”
“어?”
말을 할 때의 잔의 눈빛을 본 이보는 목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계회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전부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보는 고개를 돌려 남아있는 꽃들 중에서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뽑아 잔을 향해서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 선물이에요.”
“그거 내 건데?”
“제가 살 거예요! 그리고 선물로 주는 거예요."
“하필이면 노란 장미를?”
고개를 끄덕인 이보는 장미를 잔의 손에 쥐여주고서 다시 고백을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분홍색 앞치마를 입고 물을 뿌리고 있던 모습에 첫눈에 반했어요. 사장님. 형. 저랑 연애해요. 외로울 틈이 없게 할게요.”
이보의 고백에 옆은 웃음을 짓던 잔은 손에 들린 노란 장미를 흔들며 이보에게 이 꽃의 꽃말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영원한 사랑이요. 진짜 영원할 수 있어요.”
그러고 다른 바구니에 있던 빨간 장미를 꺼내고 그 옆의 흑장미도 꺼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꽃들을 전부쥐여줄 기세로 모으고 있는 이보를 보고 있던 잔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포복절도를 했다.
“그만, 그만. 알겠어. 아하하하….. 진짜 눈물 날 거 같아.”
“저 진심이에요. 진짜.”
“그러다 너 오늘 일한 거 꽃값으로 다 나간다?”
“그 정도면 약과죠. 전 한 달 아르바이트비를 다 들여서라도 할 수 있어요.”
손을 내저으며 됐다며 정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겨우 일어선 잔은 데스크에 장미를 살며시 내려뒀다.
“그럼. 사귀면 알바는 어떻게 할 거야? 관둘 거야?”
“제가요? 왜요? 절대 못 그만둬요. 차여도 계속할 거예요. 다른 알바 구하면 안 돼요.”
“내가 6살 연상인 건 어떻게 생각해?”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형은 잘생겨서 나이는 아무도 신경 안 쓸걸요? 아니, 적어도 전 좋아요. 멋있으니까.”
이보가 대답을 하며 입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가자 한숨을 푹 쉰 잔이 그러자. 대답을 했다.
“네?”
“연애. 하자고.”
“진짜죠? 무르기 없는 거예요! 농담이야. 장난 이런 것도 다 몰라요. 저 폰에 저 폰에 저장할 거예요?"
어린아이처럼 오두방정을 떠는 이보를 보고 웃던 잔이 데스크에 있던 노란 장미를 들고 이보의 앞으로 다가갔다.
정말 휴대폰에 이름의 양옆에 하트를 붙이고 있던 이보는 10센티미터 앞으로 온 잔을 보고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잔이 장미의 꽃잎에 입을 살짝 맞췄다 떼고서 장미를 이보의 귀에 꽂았다.
“? 형?”
“근데 이보야. 노란 장미 뜻 사랑만 있는 게 아닌 거 알고 있어?”
“무슨 뜻이 더 있는데요?”
“변치 않는 우정. 그리고 이별.”
다른 뜻을 알려준 잔은 이보가 쥐고 있던 다른 꽃들을 들고서 데스크로 돌아가 예쁘게 포장하고서 향을 맡았다.
“거짓말!!!!”






합작에 참여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항상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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