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s_1843
당신의 다정한 사랑
“형. 동생이 좋아해.”
어디선가 나타난 왕이보는 샤오잔에게 빨간 튤립을 내밀었다. 꽃말이 사랑의 고백이래. 튤립을 손에 쥐어지고는 돌아서는 왕이보에 샤오잔은 너 두 번 남았어라고 말해줬다. 알아. 샤오잔은 짧은 대답을 남기고 가는 왕이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앞으로 두 번. 샤오잔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샤오잔과 왕이보는 올해 입학식 때 처음 만났다. 하지만 이 입학식은 샤오잔도 왕이보도 아닌 다른 이들의 입학식이었다. 복학 신청을 내러 온 샤오잔은 정문에서 입학식 안내를 돕고 있던, 노랗게 물들인 채 조금 긴 머리를 한 소년을 보았다. 예쁘다. 스치듯 본 것뿐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예쁘장한 게 느껴질 만큼 예쁜 소년이었다. 꽤 오랫동안 휴학을 했던 샤오잔은 안내 부스를 스쳐 조금 아니 많이 변한 듯한 캠퍼스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휴학하고 집에서 나간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에 정신이 팔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줄도 몰랐다. 포옥. 꼼짝없이 넘어지는 줄만 알았는데 어떤 아픔도 느껴지지 않고 조금은 푹신한 느낌에 조심스레 눈을 떴다. 눈을 뜬 샤오잔의 앞에는 안내 부스에 있던 노란 머리의 소년이 샤오잔을 안은 채로 잡아주고 있었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모란같다. 가까워진 얼굴을 보고 감탄하다 소년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자 깜짝 놀라 소년의 품에서 벗어났다. 소년은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손에 안내 책자를 쥐여주었다. 아까 안내 부스를 지나치던 걸 봤는데 안 가져가길래 가져다주러 왔다는 말에 잠시 당황한 샤오잔은 눈을 예쁘게 접으며 말했다. 입학생이 아니라고. 그러자 소년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해, 빨리 와! 안내 부스에서 소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쁜 게 아니냐며 어서 가보라고 했다. ‘왕이보!!’ 소년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다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만두고는 고개로 인사를 하고 안내 부스로 달려갔다.
왕이보…. 샤오잔은 노란 머리의 예쁜 소년의 귀 끝이 빨개진 것을 보지 못한 채 걸어갔다. 샤오잔은 정말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만난 것이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 되지 않은 것에 살짝 안도했다. 별것 없던 이 만남이 왕이보와 샤오잔의 첫 만남이었다. 샤오잔은 예쁘게 생긴 소년을 본 것이 오랜만에 온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남으리라 생각했다.
복학 신청을 마친 샤오잔은 과방으로 향했다. 복학 신청하러 온 김에 자기도 만나라는 리메이는 과방 앞에서 샤오잔을 기다리고 있었다. 꽤 오랜만에 만난 리메이는 연락 좀 하라며 샤오잔의 등짝을 내리쳤다. 아픈 등을 문지르며 샤오잔은 복학 신청하느라 바빴다는 변명아닌 변명을 했다. 리메이는 나이는 동생이었지만 샤오잔에게 몇 없는 친구로, 그 일이 있었을 때 저를 잡아준 고마운 친구였다. 과방으로 올라가면서 리메이는 샤오잔이 묻지 않아도 그간의 학교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쉬는 건 2년이었지만 그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바뀐 교수님과 여러 시설은 2년이란 시간이 새삼 길다고 느끼게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온 신입생 중에 엄청 잘하는 애가 있다던대.”
“그래? 우리 과야?”
“아니, 조예과(조형예술과). 왕이보라고 남자애래.”
“왕이보? 그 노란색 머리? 모란같이 생긴 애 말하는 거야?”
모란같이 생긴 건 모르겠지만 노란 머리는 맞다는 대답에 샤오잔은 어쩌면 지나가다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티가 제법 나 기껏해야 누나나 형을 도와주러 온 애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아직은 힘들었지만, 왠지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달 후, 샤오잔은 과 사람들과 꽤 친해졌다. 리메이가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지만 원래 샤오잔이 다정한 성격이었던지라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보고 리메이는 안도했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샤오잔은 휴학하지 않고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샤오잔이 작업 좀 도와달라는 소리에 그런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오랜만에 하는 그림 작업에 샤오잔은 몸이 찌뿌둥해져 기지개를 폈다. 바람 좀 쐬고 오라는 리메이의 말에 커피라도 마실까 하며 밖으로 나섰다. 샤오잔은 다른 사람들과 적당히 잘 지내는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2년 전에는 사람이 무서워 제대로 나가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제법 대화도 하고 잘 지낼 수 있었다. 여러모로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카페로 향하던 중 누군가와 부딪혔다.
“앗. 죄송합니다.”
“아뇨. 저야말로...어?”
샤오잔의 눈앞에 모란을 닮은 그 소년이 서 있었다. 지나가다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만나게 되니 샤오잔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샤오잔이 대답이 없자 왕이보는 굳은 샤오잔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냐고 묻는 소리에 샤오잔은 정신을 차리고 소년을 봤다. 여전히 노랗게 물들인 머리는 잘못 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 그의 얼굴 옆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전 이만-”
“저...커피 좋아해요? 제가 살게요!”
망했다. 기껏 한 말이 커피 좋아하냐는 말이니 그냥 가도 할 말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 소년을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커피는 써서 잘 안 마신다는 말에 샤오잔은 그럼 다른 거라도 사주겠다고 하여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고 음료로 시키자 금방 나왔다. 샤오잔은 잠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고 소년은 샤오잔을 따라 자리를 잡았다. 샤오잔이 일단 감사 인사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하려는 순간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 저는 왕이보라고 해요.”
“아, 알고 있어요! 엄청 잘하신다고..아니 이게 아니고... 저번엔 감사했어요.”
“아뇨.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오늘도 그렇고 몸이 약하신 거 같던데 괜찮아요?”
“아니에요! 오늘은 좀 놀라서...그보다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샤오잔은 왕이보라는 이 소년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사람을 마주하는 것은 아직도 샤오잔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이 소년은 괜찮다는 생각이 연신 들었다. 스스로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과 사람들과는 반 의무적으로 친해져야 했지만, 이 소년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는데도 궁금해졌다. 좀 더 편해진 분위기에 샤오잔은 왕이보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왕이보는 올해 20살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왕이보는 처음 봤을 때 입학생인 줄 알았다면서 샤오잔의 나이를 물었다. 샤오잔은 작게 웃으면서 어리게 봐줘서 고맙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고 말했다. 그럼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는 왕이보의 말에 편한 대로 부르라고 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있었다. 샤오잔은 헤어지면서 자신이 학교를 오래 쉬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다.
이후로 샤오잔은 왕이보와 꽤 많이 친해졌다. 카페의 만남 이후에도 자주 만나게 되었고 왕이보가 물어보러 오기도 했으며 지나가다 장난도 걸 만큼 둘은 가까워졌다. 처음의 왕이보는 언뜻 차가워 보이기도 했지만 친해진 이후의 왕이보는 장난기 많은 동생 같았다. 왕이보와 같이 점심을 먹던 어느 날 샤오잔은 왕이보를 처음 봤던 날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너 생긴 게 어려서 고등학생인가 했는데 대학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랐었어.”
어째 왕이보의 표정이 뚱해진 것 같았다.
“뭐야, 왕이보 삐진거야? 완전 샤오펑요네.”
“아니거든! 나랑 차이도 별로 안 나면서!”
“뭐래. 너 나랑 6살이나 차이나거든?”
“난 너 나이 많다고 생각한 적 없어.”
샤오잔은 잠시 당황했지만 6살이나 어리면서 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언제는 마음대로 불러도 된다고 했으면서 입이 나온 왕이보에 너 알아서 하라고 해줬다. 샤오잔은 외동이었지만 말 안 듣는 동생이 생긴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샤오잔은 자주 왕이보를 샤오펑요라 불렀다. 그러더니 어느 날 왕이보가 기르던 노란머리를 짧게 자르고 검은색으로 염색한 채 나타났다. 샤오잔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놀려서 바꾼 거냐고 묻자 왕이보는 또 입이 나왔다. 샤오잔은 그런 왕이보가 웃겨서 이제부터 안 놀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머리를 바꾸구도 샤오잔의 눈에 왕이보는 샤오펑요였다.
왕이보와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편해지면서 샤오잔은 리메이에게 왕이보를 소개했다. 리메이와 왕이보는 처음에는 어색해 보였지만 점점 친해지는 것 같았다. 리메이는 왕이보가 마음에 들었다. 샤오잔은 왕이보랑 있으면 예전의 샤오잔 같았다. 과 사람들과도 잘 지내지만, 전엔 없던 선이 생긴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선을 생긴 것이 나쁜 건 아니었다. 자신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누구와도 선을 긋고 살았을 터였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주었던 샤오잔의 그런 다정함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샤오잔은 훨씬 더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이보와 있을 때는 스스럼없이 대하고 그 다정함이 그대로 드러나 좋아 보였다.
왕이보는 샤오잔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반해 있었다. 왕이보는 태어나서 샤오잔보다 예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후부터 자신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물론 예쁘다는 말보단 멋지다는 말이 더 좋았다.- 샤오잔은 정말 예뻤다. 왕이보는 입학생이 아니라는 샤오잔의 말에 아쉬웠었다. 입학생이라면 학교에서라도 볼 기회가 있을 텐데 그 기회마저 없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딪힌 사람은 예쁜 그 사람이었다. 왕이보는 가끔 생각나던 그 사람이 앞에 있어 머리가 하얘졌다. 뭐라도 말을 걸고 싶었지만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었길래 말을 붙이지도 못하고 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샤오잔이 자신을 잡았을 때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매우 기뻤다. 처음에는 예뻐서 반했지만 샤오잔과 지내면서 이제는 샤오잔이라는 사람이 좋아졌다. 가끔 자신을 놀릴 때는 동생을 대하듯이 해 울컥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물론 자신도 많이 놀리는 건 알고 있었다.- 샤오잔은 다정했다. 보드를 타다 다쳤을 때도 탈 거면 조심히 타라면서 잔소리와 함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물어보는 것도 성실히 답해줬다. 샤오잔의 다정함에 왕이보는 서서히 물들어갔다.
샤오잔의 친구라는 리메이는 예뻤다. 왕이보는 왠지 모르게 리메이가 질투났다. 다른 과라 매시간 같이 있지 못하는 자신에 비해 리메이는 계속 같이 있는다고 생각하니 어린아이 같은 질투를 했다. 어느 날 리메이가 왕이보를 불렀다. 리메이는 샤오잔과 자신이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 같다며 질투 좀 그만하라고 했다.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리메이는 자신과 샤오잔의 얘기를 해줬다. 리메이는 샤오잔을 동경하고 있었다. 리메이가 신입생이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있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샤오잔이 도와주었다고 했다. 샤오잔 덕분에 리메이는 동기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고 그 이후부터 샤오잔을 동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질투 좀 그만하라고, 해도 내가 더 한다고 했다. 리메이의 얘기가 끝난 후 왕이보는 샤오잔이 더욱 좋아졌다. 일상 속에서 보이는 샤오잔의 다정함이 좋았다. 왕이보는 샤오잔이 받아주지 않아도 샤오잔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형, 할 말이 있어.’
어느 날 받은 문자에는 왕이보가 할 말이 있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좀처럼 이런 일이 없기에 샤오잔은 걱정부터 들었다. 보드 타는 걸 좋아하는 왕이보는 다리를 다쳐올 때도 있어 또 어디를 다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보가 말한 장소로 가자 왕이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에 즐겨 입는 후드티나 편한 차림이 아니라 정장 차림의 왕이보가 있었다. 샤오잔은 순수하게 왕이보의 모습에 감탄했다. 샤오펑요라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새까만 검정색으로 염색한 모습을 봤을 때는 새롭지만 똑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런 모습의 왕이보는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다.
“뭐야, 할 말 있다더니 왜 이렇게 뜸을 들여.”
왠지 어색한 듯한 분위기에 샤오잔은 아무런 말이 없는 왕이보에 장난스럽게 말했다. 햇빛에 비친 새까만 검은 색이 왕이보의 머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쑥쓰러워 하는 듯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왕이보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샤오잔을 보고 말했다.
“쟌형. 좋아해.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
샤오잔은 왕이보의 고백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에 없는 진지한 얼굴은 그를 낯설게 만들었다. 카페에서 이야기 한 이후로 저런 낯선 왕이보는 본 적이 없었다. 2년 전의 일이 파도처럼 밀려와 샤오잔을 집어삼켰다.
‘샤오잔. 좋아해.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샤오잔, 샤오잔, 샤오잔. 사랑해.’
‘이건 다 너 때문이야!! 샤오잔, 너 때문이라고!!!’
이젠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과거의 일은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샤오잔을 덮쳤다. 그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샤오잔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앞에 있는 것은 왕이보인데 왕이보가 아니었다. 그 사람으로 보였다.
“진심이야. 장난이 아니야. 이런 걸로 장난칠 생각 없어. 그냥 내가 형을 좋아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었어. 거절해도 괜찮아.”
왕이보는 흔들리는 샤오잔을 보면서 자신의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해 진심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샤오잔에겐 진심이 아닌 거절이라는 그 한 단어만이 남았다. 거절. 그 한 단어는 샤오잔을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끌어당겼다. 자신을 덮치는 악몽 같은 기억에 눈앞이 흐려졌다.
풀썩.
“쟌형. 샤오잔! 샤오잔!!”
왕이보는 눈앞에서 쓰러진 샤오잔을 보고 당황했다. 샤오잔을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지금 왕이보에겐 고백이 문제가 아니었다. 힘없이 늘어진 샤오잔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 고백이 쓰러질 정도로 싫었던 걸까. 샤오잔을 병원에 데리고 가자 의사는 순간적 스트레스로 인한 기절한 것이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라 해 왕이보는 자리에 앉았다. 고백을 듣자마자 쓰러지다니, 왕이보가 생각했던 최악은 샤오잔이 자신을 경멸하는 것까지였지만 쓰러질 줄은 몰랐다. 고백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냥 내 이기심이었던 걸까 하며 왕이보는 자책했다.
“샤오잔은?”
연락을 받고 달려온 리메이가 물었다. 곧 깨어날 거라는 왕이보에 말에 리메이는 안도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묻자 왕이보는 리메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왕이보는 자신이 고백한 것을 밝히기가 부끄러웠으나 샤오잔이 쓰러진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해 리메이에게 아까의 일을 설명했다. 왕이보는 리메이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자 정말 자신의 탓인 것 같았다. 무어라 말을 붙이려고 했지만 어쩐지 리메이의 표정이 심각할 정도로 어두워져 있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리메이는 무언가를 결심하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사람이 오지 않는 곳으로 왕이보를 데리고 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는 왕이보는 앞으로 샤오잔과 만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며 불안했다. 자신 때문에 쓰러졌으니 자기 같아도 만나게 하지 않을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해서도 리메이가 입을 열지 않아 왕이보는 점점 체념했다.
“왕이보, 너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였다. 왕이보는 샤오잔을 그렇게 만든 놈이 눈앞에 있다면 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샤오잔이 깨어난다면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건 샤오잔 때문이 아니라고.
2년 전.
샤오잔은 할 말이 있다는 동기의 말에 과방에서 기다렸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동기는 샤오잔이 들어오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샤..샤오잔. 좋아해.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샤오잔은 당황했다. 동기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사실 몇 번 말도 나눠보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동기는 크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과제를 할 때 망설이던 걸 몇 번 도와준 적은 있어도 같이 무언가를 한 적은 없었기에 동기의 고백은 샤오잔을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샤오잔은 자신의 감정을 그래도 동기에게 전했다. 동기가 아무 말이 없자 샤오잔은 자신의 말을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하지만 동기는 샤오잔의 거절을 받아들지 않았다. 이후로 동기는 샤오잔을 볼 때마다 고백했다. -리메이는 그런 동기를 무시하라고 알려줬다.- 샤오잔은 동기의 과도한 고백에 점점 불쾌해져 갔지만 매번 좋게 거절했다. 잠잠해졌다고 생각했을 무렵, 샤오잔은 잊은 물건을 찾으러 과방에 들렸다. 과방에는 동기가 있어 샤오잔은 금방 나오려고 했지만 동기의 말이 샤오잔을 붙잡았다. ‘샤오잔, 너도 날 사랑하잖아. 왜 내 고백을 받아주지 않아?’ 샤오잔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너도 날 사랑하니까 날 도와준 거잖아. 동기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샤오잔에게 사랑한다고 중얼거렸다. 샤오잔은 착각 속에 사는 동기가 점점 두려워졌다. 샤오잔이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동기가 소리쳤다.
‘나가면 여기서 떨어질거야!!’
샤오잔이 뒤를 돌아보자 동기는 창문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빨리 내려와!’
‘그럼 날 사랑한다고 말해!’
샤오잔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동기는 나머지 발을 창문으로 옮겼다. 샤오잔은 무서웠다. 정말 떨어질까 봐.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다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건 정말 싫었지만 이대로 다치게 둘 순 없었다. 샤오잔이 고개를 들자 동기는 이미 창문 위에 완전히 올라가 있었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았다. 샤오잔이 입을 열려는 순간, 동기가 소리쳤다.
‘이건 다 너 때문이야!! 샤오잔, 너 때문이라고!!!’
‘샤오잔, 사랑해.’
샤오잔은 패닉이었다. 나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동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것이 샤오잔이 기억하는 그날의 마지막이었다. 샤오잔이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자신의 기억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웠다. 샤오잔은 옆을 지키고 있던 리메이를 붙잡고 동기에 대해 물었다. 동기는 떨어질 때 머리를 다쳐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샤오잔은 다 나 때문이라고 중얼거렸다. 리메이는 샤오잔의 중얼거림을 듣자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리메이는 샤오잔에게 여태까지의 일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해주지 말라고 조언한 것은 리메이였다. 이건 분명히 샤오잔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냥 그 빌어먹을 놈의 잘못이었다. 샤오잔의 머릿속에서는 동기의 외침이 되풀이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정말로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이후로 샤오잔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졌다. 자신의 다정함이 싫어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리메이는 샤오잔에게 휴학이라는 제안을 건넸다. 샤오잔은 리메이의 제안대로 곧바로 휴학신청을 냈다. 그 일을 떠올릴수록 자신이 더 싫어지던 샤오잔은 결국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상담은 좋은 선택지였다. 아직까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할 순 없었지만, 사람을 마주하는 것까지는 괜찮아졌다. 그렇게 샤오잔은 복학했고 왕이보를 만났다.
샤오잔이 눈을 떴을 때 옆에는 왕이보가 있었다. 샤오잔은 쓰러지기 전에 상황이 떠올랐다. 샤오잔은 두려웠다. 자신이 또 누군가를 상처 입혔을까 봐. 그게 만약 왕이보라면 더욱 자신이 싫어졌다. 샤오잔은 떨리는 목소리로 왕이보를 불렀다.
“이보야...이건 그러니까...”
“...그건 형 잘못이 아니었어. 형 때문이 아니야.”
샤오잔은 지금 왕이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지 못했다.
“형은 다정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아.”
“....”
“형이 그림 그릴 때 진지하게 붓을 잡는 게 좋아. 웃을 때 눈이 예쁘게 접히는 것도 좋아. 무엇이든 신중하게 생각하는 형이 좋아. 나를 걱정해주는 형이 좋아. 나는, 형의 다정함이 좋아. 형은 이런 내가 싫어?”
왕이보는 이제 막 일어난 샤오잔에게 이런 말을 꺼내게 될 줄 몰랐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깨어난 샤오잔을 보니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샤오잔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왕이보는 입을 연 것이 후회되었다. 돌아서는 왕이보를 붙잡은 건 샤오잔의 대답이었다.
“그, 싫지...않아...”
이건 샤오잔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어. 그냥 나에게 동생같이 느껴졌으니까.”
이것 또한 샤오잔의 진심이었다. 샤오잔은 그 일 이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거절이라는 말에 이렇게 쓰러진 것도, 아직까지 그 일에 발목을 잡힌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저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왕이보는 싫지 않았다. 왕이보와 알게 된 이후의 날들은 샤오잔에게도 즐거운 날이었다. 왕이보의 고백이 갑작스럽긴 했지만 정말 당황했을 뿐이지 싫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형이 싫지 않다면, 앞으로 딱 3번만 고백해도 돼? 거절해도 돼. 그래도 마지막 고백에는 진심으로 답해 주었으면 좋겠어.”
샤오잔이 아무말이 없자 왕이보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물론, 난 그 자식이랑 달라! 형이 거절한다 해도 괜찮아! 그 일은 절대 형 때문이 아니니까. 형이 거절해도 계속 형 옆에 있을거니까.”
샤오잔은 쓰러지기 전에도 지금도 왕이보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올곧고 다정했다. 왕이보의 진심에 진심으로 답해 주고 싶었다. 샤오잔은 그때도 그랬듯이 진심을 말했다.
첫 번째 고백은 튤립과 함께였다. 앞으로 두 번 남았다는 말에 왕이보는 괜찮은 듯 돌아섰지만 샤오잔은 아니었다. 두 번 남았다는 건 샤오잔이 왕이보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기에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샤오잔은 왕이보의 고백 이후로 왕이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인상은 모란을 닮은 예쁜 소년,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분위기, 이후에는 샤오펑요라고 놀리면 금세 입이 나오는 어린애, 가끔 보이는 큰 것 같은 모습. 특히 고백할 때의 모습은 정말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었다. 마냥 어리던 동생이 어느 순간 장성한 모습을 본 것처럼. 분위기도 달랐지만 왠지 얼굴도 어른스럽게 느껴졌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거의 왕이보 생각만 하게 되었다. 왕이보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거라 하면 조금 더 애정표현을 하게 된 정도. 샤오잔은 그때마다 이게 두 번째 고백이냐고 물으면 왕이보는 얼른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 두 번째 고백은 더욱 근사하게 할 거라고 했다. 누가 고백을 예고하고 하냐니까 금세 입을 다무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났다. 이렇게 허술해서 어떻게 고백하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왕이보가 샤오잔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했다. 상관없지만 이유를 묻자 그냥 샤오잔이 생활하는 공간이 궁금하다고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샤오잔은 왕이보와 같이 자취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서자 왕이보는 작게 웃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심플 하면서도 정리정돈 된 인테리어는 누가 봐도 샤오잔의 취향이었다. 그리 넓진 않지만 좁지도 않은 자취방은 모두 샤오잔의 취향으로 꾸며져 있었다.
“형이랑 살면 엄청 깨끗하겠다.”
왕이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이후 이런 말에 샤오잔은 가슴이 땡겼다. 오늘 뭐 먹었어? 와 같이 평범하게 일상적인 부분에 성큼 들어오는 왕이보는 자신이 생각하던 장난을 좋아하는 동생에서 한 발짝씩 멀어져 왕이보로서 다가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긴, 어디야?”
“응? 아, 유채꽃밭. 예전은, 아닌가, 2년 전에 문득 보고 싶어져서 갔다 왔지. 엄청 예뻤어.”
왕이보가 아무 말 없이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부끄러워진 샤오잔은 왕이보의 손에서 사진을 빼냈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왕이보에 샤오잔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사진이 이상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 왠지 나도 거기 가본 거 같아서.”
“여기? 유명하잖아. 고등학교 때 체험학습 같은 거로 가본 거 아냐?”
체험학습이라는 말에 왕이보는 멈칫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체험학습으로 어떤 꽃밭을 다녀왔다. 그때는 친구들에게 끌려나가 딱히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았지만 노란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던 것만 남아있었다. 그날은 3월 14일이었다. 체험학습을 가지 않고 집에서 놀려고 했던 왕이보는 같이 가자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가게 되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 언제 갔는지, 날짜 기억해?”
“날짜? 날짜는 아마 사진 뒤에 있을걸? 그건 왜?”
왕이보는 샤오잔의 손에 있던 사진을 가져와 뒤집었다. 사진 뒤에는 3.14라는 날짜가 쓰여 있었다.
“형, 아무래도 우리 운명인가 봐.”
왕이보가 샤오잔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말에 왕이보는 핸드폰을 뒤적여 체험학습 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다.
“나도 그날 거기에 있었어. 아마 형 사진 속에 나온 이 사람 나인 거 같아.”
왕이보가 가리키는 곳에 정말 작게 나와 있는 사람이 입은 옷은 왕이보의 핸드폰 속에 있는 옷과 같았다. 왕이보가 샤오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해. 샤오잔.”
운명같이 다시 만난 거 같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왕이보는 보는 사람도 웃음이 날 만큼 예뻤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왕이보를 비추었다.
“너..너 앞으로 한번 남았어!”
샤오잔은 하마터면 예쁘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낼 뻔했다. 왕이보는 응이라고 답하며 작게 웃었다. 샤오잔은 할 일이 생각났다면서 왕이보를 내쫓았다. 더 있다가는 무언가 큰일이 날 거 같았다. 왕이보가 아쉬워하면서도 다음에도 또 오고 싶다고 하자 얼른 내보내기 위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왕이보가 가고 나자 다시 조용해졌다. 샤오잔은 이제 정말 왕이보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확인해야 했다. 왕이보는 점점 더 샤오잔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샤오잔의 머릿속은 온통 왕이보 생각뿐이었다. 고백 이후 왕이보를 많이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 일주일만큼은 아니었다.
‘그럼 나의 마음은 뭘까?’
샤오잔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왕이보는 고백을 하고 난 이후에도 애정표현이 늘어난 것을 빼면 평소와 같았다. 그렇다면 그의 애정표현이 싫은가? 답이 아니오다.
‘왕이보는 정말로 동생 같은가?’
샤오잔에게 이 질문은 정말 중요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주 가끔 왕이보는 어른스러울 때가 있었다.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일 때 쉽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든지, 무언가를 잊어버리기 전에 미리 챙겨준다 던지. 자신의 불평을 말없이 들어준다던지. 사소하지만 모두 샤오잔을 위한 것들이었다. 생각이 많아져 침대에 눕자 향초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집에는 어느덧 왕이보가 준 물건들이 꽤 있었다. 과제 덕분에 잠을 못 잤더니 왕이보는 피로에 좋다며 아로마 향초를 선물해줬다. 어느 날에는 쓰던 향수가 다 떨어져 다른 향수를 쓰니 이게 더 잘 어울린다면서 향수를 선물했다. -실제로 그 향수는 샤오잔의 마음에 들어서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또 어느 날은 왕이보가 보드 타는 것을 보다가 타보고 싶다고 하자 왕이보는 초보자들도 잘 탈 수 있는 보드를 가져다 주었다. 샤오잔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깨닫고 보니, 왕이보는 이미 샤오잔의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야 인식하게 된 것뿐이었다. 왕이보는 자신을 다정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샤오잔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왕이보야 말로 다정한 사람이었다. 고백 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것도 왕이보의 다정함이었다. 샤오잔은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집에 놀러 온 이후 왕이보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마지막 고백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았다. 고민하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모습이 선했다. 샤오잔은 왕이보가 조금만 더 고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왕이보는 마지막 고백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첫 번째와 다르게 두 번째 고백에서 샤오잔은 약간 동요한 듯이 보였다. 마지막 남은 기회를 왕이보는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성대하게 이벤트를 열자니 왠지 마이너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오잔이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정말 끝이었다. 물론 친구로서 지내겠지만 왕이보는 아마 평생 샤오잔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자신에게도 샤오잔에게도 추억으로 남을 고백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왕이보. 잠깐 나올 수 있어?‘
오늘도 고백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샤오잔에게 연락이 왔다. 샤오잔에게 연락이 오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왕이보가 먼저 연락했다.- 왕이보는 금방 내려간다는 문자를 보내고 대충 옷을 입고 나갔다. 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던 샤오잔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어디를 가는지 꽤 차려입은 모습에 왕이보는 또 한 번 샤오잔에게 반했다.
“무슨 일 있어? 이따가 어디 가?”
“아니. 너 보러 온 거야. 할 말 있어서.”
밝게 웃는 샤오잔에 왕이보는 잠시 멈칫했다. 아직 마지막 고백을 하기 전이었지만 역시 안될 거 같다고 말하러 온 걸까. 그런 거라면 자신이 먼저 말하는 게 나았다.
“형, 나는...”
“왕이보. 내가 먼저 말할게.”
단호하면서 어딘가 결연한 샤오잔의 말투에 왕이보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왕이보. 나는 그 일 이후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게 무서워졌어. 나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어.”
“그건 형 때문이 아니야!”
“응. 그 후로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어.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너무 자의식 과잉인가? 그래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더라. 근데 널 만났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어. 그냥 너랑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만 있었거든. 네 고백 후에 생각해봤어. 그랬는데 다 좋은 추억밖에 없었고, 그러더니 어느 순간 네가 내 일상에 들어와 있더라.”
“샤오잔...”
“왕이보. 너는 나보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네가 더 다정한 사람이라 나는 너의 다정함에 어느 순간 기대고 있었어.”
너의 다정함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너의 다정한 배려는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게 해주었어. 왕이보. 나의 다정한 사랑아.
“이건 내가 너에게 하는 고백이야. 너는 마지막 고백으로 내게 답해줘.”
왕이보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형, 샤오잔, 샤오잔아. 당신은 정말 다정한 사람이야. 당신은 누구에게나 다정해 보여서 나도 그저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 이건 나만의 사랑이라고. 그런데 항상 나에게 다가온 건 당신이었어. 아무래도 나는 평생 형을 이길 수 없을 거야.
“형, 동생이 많이 좋아해.”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저는 마감을 무사히 마친 것이겠죠... 사실 중간에 두번은 갈아 엎었어요. 결국에는 서로에게 다정한 둘이 보고싶다여서 이렇게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정하면서 단호한(?) 샤오잔의 연상적인 모먼트가 좋더라구요ㅎㅎ 연하는 역시 연하로 조금 귀여운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들이 잘 표현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저의 필력의 한계;;) 저의 부족한 글 실력으로 이 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중간중간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다들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행복한 왕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