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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양 

@missmireu82 / http://hjmireu.postype.com

유채꽃밭의 그


‌-왕이보-
 
“저는 혼인 안합니다.”
“왕이보!”
“제 의사는 이미 말씀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며 방을 나서는 왕이보를 보며 왕이보의 부친이자 왕가의 가주 왕주는 머리를 짚었다. 며칠 전 그에게 말을 꺼냈을 때도 이런 반응이었다. 평생 10년 전에 만난 ‘형아’를 잊지 못해 혼담도 모조리 거절하고 있는 거라면 사내와 혼인을 원하는 것인가 싶어 혼담을 진행했다. 어차피 밀어 붙인다면 혼인은 하겠지만 평생 살 맞대고 살 사람의 부친 앞에서 저런 추태라니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샤오가의 가주 샤오훤은 눈썹을 좁혔을 뿐 왕이보의 태도에 대해서는 딱히 별 말이 없었다.
 
 
 
결국 치러지게 된 혼례에 왕이보는 제 옆에 선 이를 보았다. 붉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가 사내라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사내와 혼인을 시킬 거라면... ‘그 사람’도 사내인 것을.
 
 
‘그 사람’은 왕이보의 유년시절의 가장 찬란한 기억이었다.
여느 날처럼 어머니께 드릴 꽃을 꺾기 위해 제 비밀 장소로 향한 왕이보는 널따란 바위 위에 앉은 한 소년을 보았다.
“형아는 누구야?”
저만의 비밀 장소라고 여기고 있던 곳에 있는 소년에게 왕이보가 말을 걸자 소년은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어, 미안. 여기서 내 또래는 처음 봐서. 나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
“그게 뭐야. 알았어, 나는 이보야.”
소년이 마음에 들었던 왕이보는 꽃만 꺾어 바로 돌아가려던 왕이보는 마음을 바꾸어 소년 옆에 앉았다. 왕이보는 이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저잣거리에서 마을 유일한 소년으로 잔뜩 귀여움을 받고 있어 하나 둘 쥐어 주어 얻은 주전부리를 꺼내었다.
“형아, 이거 먹어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소년은 왕이보가 쥐어 주는 대로 먹고 연신 맛있다며 눈을 접으며 웃었다. 신난 왕이보는 제 몫의 주전부리까지 소년에게 밀어주었다.
“와, 못 먹어보고 갔으면 아쉬울 뻔했네.”
“형아, 어디 가?”
“응? 아, 나 며칠 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거든.”
소년의 말에 왕이보는 머릿속에 벼락이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왕이보는 다시 물었다.”
“돌아간다구?”
“응. 아버지 일이 다 끝나시면 다시 돌아가기로 되어있어. 덕분에 맛있는 것도 알게 됬네. 고마워, 이보야.”
“그렇구나...”
왕이보는 시무룩했다. 마음에 드는 형을 만나고 조금 친해졌다 생각했는데 바로 이별이라니...
‘어느 지역에서는 유채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청혼의 의미라고 하더구나.’
왜인지는 모르지만 처음 유채꽃을 드렸을 때 어머니가 해준 말이 떠온 왕이보는 아직 간식을 먹으며 유채꽃밭을 구경하는 소년을 슬쩍 보고는 유채꽃을 꺾어 서툰 솜씨로 반지를 만들었다.
“이보야.”
얼마나 집중해서 만들고 있었는지 소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손에는 노란 물이 들었고 발치에는 망친 유채꽃들 투성이였다.
“이보야,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할 거 같은데.”
아직 못 만들었는데...
왕이보는 울상을 지었지만 날이 이미 많이 어두워 더 늦으면 저도 크게 혼날 것을 알기에 할 수 없이 유채꽃을 몇 송이 꺾어 손에 쥐었다.
“그럼 형아, 돌아갈 때까지 매일매일 여기 올 수 있어?”
“매일매일? 음... 하루 종일은 안 되더라도 잠깐씩이면 될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매일매일 유채꽃밭에서 만났다.
“형아!”
“이보야.”
소년보다 먼저 유채꽃밭에 와 있던 왕이보는 소년의 손을 잡고 조잡한 반지를 끼워주었다.
“됐다! 선물이야, 형아!”
무사히 끊어지지 않고 소년의 손가락에 꽃반지를 끼워준 왕이보가 해맑게 웃었다. 소년의 양볼은 붉게 물들었다. 왕이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소년은 그저 고맙다고 말하고는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그 뒤로 왕이보는 소년을 만날 수 없었다.
 
 
 
왕주의 걱정과는 달리 왕이보는 제 부인이 된 샤오잔을 박대하지는 않았다. 살뜰하게 챙기지는 않았지만 저처럼 원치 않는 혼인을 하고 고향을 떠나 먼 곳까지 온 샤오잔에게 크지는 않지만 저 나름대로 관심을 주는 것 같긴 했다.
샤오잔 또한 제법 사람을 대하는 재주가 있었는지 늘상 곁을 주는 법이 없던 왕이보가 조금씩 곁을 내어주었고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또한 많이 익숙해졌는지 샤오잔이 왕이보에게 장난을 치고 왕이보는 의외로 그의 장난에 쉽게 넘어가곤 했다.
“부인!”
“하하! 미안합니다. 삐지셨습니까? 화 푸십시오.”
“모릅니다! 저리 가세요!”
이제 별채는 샤오잔의 장난에 넘어간 왕이보가 토라지면 깔깔 웃으면서 달래주는 샤오잔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그러던 중 별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정자에서 식사를 하던 두 사람은 별채로 달려갔다. 두 사람이 갔을 때 이미 별채는 반 이상이 타버린 상태였다. 샤오잔은 혼비백산하여 아직도 타고 있는 별채로 들어가려고 했고 왕이보는 그를 막았다.
“놓아주세요, 부군! 들어가야 합니다!”
“안됩니다, 부인! 위험합니다!”
샤오잔은 놓아달라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왕이보는 샤오잔의 허리에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별채는 완전히 전소했다. 왕이보와 샤오잔은 거처를 옮겼다.
“... 부인?”
한 밤 중에 곁이 허전해 깬 왕이보는 제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방 안 어디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벽에 걸린 장포를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섰다. 하인들도 모두 자러 간 한밤중이라 근처에 아무도 없어 왕이보는 홀로 샤오잔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별채로 향하자 까맣게 전소한 잔재들 속에 홀로 하얗게 빛나는 이가 있었다. 장포도 걸치지 않은 흰 내의 차림에 왕이보는 서둘러 달려갔다.
“부인.”
샤오잔이 저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헤집고 다녔는지 얼굴과 손에는 새카만 재가 잔뜩 묻어있었다. 왕이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 장포를 벗어 샤오잔에게 둘러주었다.
“바람이 찹니다, 이만 들어가세요.”
샤오잔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왕이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오밤중에 하인들을 깨울 수는 없어 왕이보는 조금 차가운 물을 가져와 화로 위에 두었다. 깨끗한 영견을 적셔 꼭 짜내고 잠시 화롯불에서 따뜻하게 한 후 샤오잔의 얼굴부터 닦아주었다. 날이 춥진 않았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에 오래 밖에 있었는지 살이 조금 튼 것 같아 제 할 수 있는 한 조심스럽게 닦았다. 샤오잔은 왕이보가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재로 지저분해진 내의를 새로 갈아 입히고 침상에 누여주어도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후 며칠 동안 샤오잔은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았고 가끔 숨죽여 울기도 하였다. 품에 안고 토닥여주면 금세 잠이 드는 샤오잔을 보는 왕이보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왕이보는 샤오잔이 전소된 별채에서 무엇을 찾는지 알았다. 그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 가지고 왔던 것은 그 보석함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알았다.
유채꽃 반지.
오래되었지만 방부처리를 해 시들지 않는 유채꽃으로 만든 반지였다. 샤오잔의 고향은 유채꽃이 드물어 유채꽃이 청혼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반지도 누군가가 그에게 청혼을 하며 준 것일까.
누구에게 받은 걸까...
누구에게 받았길래 불속으로까지 서슴없이 들어가려고 했던 것일까...
 
 
 
 
 
 
 
 
 
 
-샤오잔-
 
 
“왕가의 아들과 혼담을 준비하고 있단다.”
샤오훤은 샤오잔에게 상대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샤오잔에게 내밀며 말했다. 샤오잔이 얼굴을 찌푸렸다. 싫은 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얼굴 표정으로 다 드러내는 것이 샤오잔이었다.
“언제까지 네 보석함의 오래된 반지만 보며 있을 거냐. 네 나이가 벌써 스물여섯이다. 네 친우들은 모두 혼인했고 벌써 자식까지 본 이들도 있지 않느냐.”
“아버지.”
“벌써 10년이다. 이젠 잊을 때도 되었는데 어찌 그리 미련을 떨어.”
샤오훤의 끈질긴 설득에 샤오잔은 결국 소년이 주었던 선물이 들어있는 보석함을 가져가는 것을 조건으로 혼인을 수락했다. 소년과의 유일한 추억을 놓고 가고 싶지 않았다.
왕이보를 마주한 순간 샤오잔은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어린 시절 만났던 그 어렸던 소년이 이렇게 장성하여 저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때문에 샤오잔은 조금 기대를 했다.
 
그러나 혼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왕이보는 저를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시 만났을 때의 기억은 첫 만남보다 더 강렬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상냥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예에...”
어렸을 때의 해맑은 미소는 없었다. 오히려 완벽한 타인을 대하더라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만이 그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 또한 업무를 처리하는 듯 완전히 사무적이었다.
“그리고 호칭은 어떻게 할까요?”
“... 좋을 대로 부르세요.”
“그럼 부인.”
그런 왕이보의 태도에 조금 실망한 샤오잔은 저도 사내이고 나이도 더 많은데 좋을 대로 부르랬다고 곧바로 부인이라 부르는 왕이보에 샤오잔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그냥 그러시라 했다. 뭐, 사내끼리의 혼인이 드물긴 해도 없진 않아서 주워들은 바로는 그들 중에서도 부군과 부인을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보통은 나이 많은 쪽이 부군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청혼을 받은 입장이니 순순히 받아들였다.
또한 혼인 후 함께 지내면서 저는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을 뿐더러 저도 어렸고 왕이보는 그보다 더 어렸으니 기억을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저를 거부했던 초반과는 달리 점점 제게 잘해주는 것이 보이기도 했고, 완벽해 보이지만 허점을 발견할 때마다 놀리면 놀리는 대로 발끈해오는 것이 귀여워 놀리는 맛도 있었다. 화를 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화를 낸 적도 없었다.
 
별채에 불이 났다. 샤오잔의 머릿속에는 보석함 속 반지 밖에 없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었고 증표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재가 되어버린 별채를 뒤지고 있었고 그런 저를 찾아 왕이보가 왔다. 저를 탓하지 않고 그저 바람이 춥다며 본인이 입었던 장포를 덮어주었다. 방에 돌아와서도 제 몸을 닦아주고 품에 안아주었을 뿐 탓하거나 연유를 묻지 않았다.
샤오잔은 그런 왕이보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이미 혼인하고도 시일이 많이 지나있었고 이제 와서 과거의 일을 말하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러기를 며칠, 어느 날 침소로 돌아간 샤오잔은 드물게 먼저 잠든 왕이보를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많이 피곤했나보다.
샤오잔은 조용히 목간으로 가 씻고 돌아와 침상 위로 올라갔다. 샤오잔은 왕이보 곁으로 다가갈 때까지도 왕이보는 깨지 않았다. 샤오잔은 조심스럽게 왕이보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 부군?”
간지러운지 조금 뒤척이기는 했으나 왕이보는 깨지 않았다.
“부군? 일어나신 겁니까?”
왕이보는 대답이 없었다. 이에 샤오잔은 용기를 내었다.
“주무시는 게지요? 실은 부군께 할 말이 있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혹여 들으시더라도 모른 척 해주십시오.”
대답은 없었다.
“제가 이곳에 올 때 가져오고 일전에 타버린 보석함에는 반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벌써 10여년도 전에 받은 유채꽃으로 만든 반지였지요.”
방을 밝히는 촛불이 일렁였다.
“실은 어렸을 적 부군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한 마을로 가게 된 샤오잔은 며칠 동안 마을에 머무를 거라는 말에 알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시골이라 어린 사람이 적어 샤오잔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 그런 관심이 불편했던 샤오잔은 산길로 들어섰다가 작게 난 샛길을 따라 들어가 유채꽃밭을 발견했다. 샤오잔의 고향은 유채꽃이 드물다. 그렇기에 넓디넓은 유채꽃밭은 샤오잔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다음날 샤오잔은 또 유채꽃밭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날 왕이보와 만났다. 어쩐지 샛길이 어른이 다니기엔 조금 좁아 보이더니 그 작은 소년만이 그 길로 다녔는지 저를 보고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이보야.”
그러나 곧 소년은 제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당당히 제 이름을 밝혔고 저에게 주전부리를 내어주었다.
“우와! 맛있다!”
연신 맛있다 말하자 볼록 올라간 광대가 너무 귀여웠다. 그러다 갑자기 시무룩해했다. 아이가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붕붕 흔들다가 축 쳐져있을 것이라 상상하니 귀여울 것 같다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러다 돌연 꽃을 꺾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해 샤오잔은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그냥 두고 꽃밭을 구경했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슬슬 돌아갈 때가 될 때까지도 왕이보는 무언가를 만드는데 집중한 채라 말을 걸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그러자 왕이보는 저에게 매일매일 이곳으로 와달라고 했고 돌아가기 전에 유채꽃이라도 실컷 보고 가자 싶어 알겠다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왕이보는 저에게 서툴게 만든 유채꽃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뿌듯해하는 얼굴에 샤오잔은 당혹으로 얼굴을 붉혔다.
샤오잔의 고향은 유채꽃이 드물어 유채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청혼하는 것이 유행했다. 뜻밖의 성공적인 청혼을 하게 된 왕이보였다.
샤오잔은 왕이보가 만들어준 반지를 보관하기로 하고 마을에서 꽃을 가장 잘 아는 이를 찾아가 꽃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법을 물었다. 그렇게 어린 왕이보가 선물한 유채꽃반지는 손에 끼는 일은 없었지만 오래오래 보관되어왔다.
 
 
 
과거를 회상하며 말을 마친 샤오잔은 왕이보를 애틋한 눈으로 보며 손가락으로는 머리카락을 쓸며 말했다.
“그 보석함에 있던 유채꽃 반지는 부군께서 주셨던 반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부군을 알아보았는데 부군께선 저를 알아보지 못해 조금 실망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결국엔 저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셨잖아요. 비록 반지는 사라져 어린 날의 추억의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동안의 새로운 추억들도 많고 앞으로 쌓아갈 추억들도 있을 테니 아쉽기는 해도 아깝진 않습니다.”
샤오잔은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이불을 잘 정리해주고 왕이보의 옆에 누워 잠든 왕이보의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잘 자요, 부군.”
제 행동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왕이보의 품으로 숨듯이 고개를 묻어버려 샤오잔은 왕이보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을 보지 못했다.
 
 
 
 
 
 
 
 
 
 
 
“부군?”
“갈 곳이 있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왕이보는 부드럽게 웃으며 샤오잔의 장포를 내밀었다. 샤오잔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이보는 샤오잔의 어깨에 장포를 둘러주고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옆 마을이었다. 왕이보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산길을 올랐다. 그리고 그때 그 샛길을 따라 들어갔다.
“여기는...”
샤오잔은 왕이보를 돌아보았다.
“유채꽃밭은 저의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 마을은 유채꽃을 재배하는 마을이라 다른 곳보다 유채꽃밭이 크기도 했지만 재배 전까지는 친우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기도 하고 어머니와 함께 꽃구경을 오고는 했었죠. 그리고...”
왕이보는 유채꽃밭으로 향하더니 유채꽃 두어 송이를 꺾었다.
“은애하는 이를 만났지요.”
왕이보의 말에 샤오잔은 그를 돌아보았다. 왕이보는 제 손에 든 유채꽃을 보고 있었다. 왕이보는 유채꽃을 감싸듯 잡고 있었는데 손이 커서 마치 유채꽃이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샤오잔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특히나 이곳은 저만의 비밀의 장소로 지금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딱 한 사람만 빼고요.”
왕이보의 말에 샤오잔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설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인.”
“...”
왕이보는 샤오잔의 앞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어린 날 나는 그대에게 이 반지로 청혼했었지요.”
샤오잔은 아무 말 없이 여전히 서툰 솜씨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반지를 보았다.
“... 설마 그때...”
“당신은 그 꽃반지를 소중히 여겨 잘 간직해주셨는데 제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깨어계셨군요.”
“부인.”
“...”
“... 형아.”
왕이보의 입에서 나온 낯설면서도 익숙한 호칭에 샤오잔의 눈이 커졌다.
“... 예전처럼... 이보라 불러주세요.”
“... 이보.”
“네, 샤오잔.”
왕이보가 기쁜 듯 활짝 웃었다. 그제야 어린 왕이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샤오잔도 활짝 웃었다.
“알아보지 못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샤오잔이 어렸던 저의 청혼을 소중하게 여기고 계셨던 것처럼 저 또한 당신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때 전 어렸고 샤오잔의 이름을 몰라 찾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당신과 만났고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왕이보는 샤오잔의 손가락에 꽃반지를 끼워주었다. 엉성한 꽃반지는 혼인의 증표로 나누어 낀 가락지 옆에 있으니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샤오잔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비싼 보석보다 귀했다.
“나와 혼인해주어 고맙습니다.”
왕이보의 고백에 샤오잔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왕이보는 금세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을 들어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샤오잔을 당겼고 곧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가벼운 바람이 불었고 노란 물결이 일었다. 새로운 추억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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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르양입니다.
우선 이번 합작을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보통 현대물보다는 시대물을 많이 쓰다보니 이번엔 현대물로 써볼까? 고민하다가 익숙한 시대물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시대만 과거로 설정되었을 뿐 명확하지는 않아요. 어차피 심도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이번 추천 키워드가 첫만남, 유채꽃밭, 썸 '등' 이었는데요, 저는 보통 (샘플) 키워드가 주어지면 정말 그거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꽃으로 만든 악세사리? 그정도? 첫만남, 유채꽃밭에 중점을 두어 썼고 썸 도 함께 써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마감 기간을 맞출 수 없을 거 같아서 썸은 뺐습니다. 공개 가능일에 제 개인 포타에 올리겠지만 가능하면 나중에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왕샤오 합작의 기회를 만들어주신 주최자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들의 합작도 너무 기대가 됩니다. 합작 주최자분들 참여하신 분들 모두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또 다시 참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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