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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mao_bjyx 

探花蜂蝶
탐화봉접


 
 
 
 
 
 
한쪽 눈을 감고서 붓을 쥐고 있던 손이 왼쪽으로 기울자 따라 고개도 같이 기울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참을 갸웃거렸으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쥐고 있던 붓은 귀 뒤로 꽂고서는 팔짱을 끼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임에도 왜인지 그릴 마음이 들지 않아 자리를 옮겨 볼까 싶어 몸을 돌리자마자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다시 앉았다. 화선지를 펼치고는 고개를 들어 눈에 담은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새하얗던 화선지에는 노란빛과 검은 물이 한데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평온함이 느껴지는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아래로 내리고 있던 얼굴은 다시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와 딱 마주친 시선에 마른 침이 꼴깍 삼키니, 검은 형체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제 쪽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내 흐트러져있던 짐을 양손으로 껴안듯 품에 안아 올리고는 소리를 지르며 재빠르게 도망쳤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미처 챙기지 못하고 흘러내린 그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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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을 벌컥 열고는 뛰쳐 들어오는 이에 화들짝 놀랐다. 그를 발견한 시종 한 명이 냉수 한 사발을 들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시종이 건네오는 냉수를 받아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빈 그릇을 건네고는 마루에 털썩 뒤로 누우니 익숙하다는 듯 시종은 널브러진 짐을 하나하나 주우며 정리를 했다. 한참을 누워 계실 것처럼 구시더니 이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정리해둔 짐을 다시 헝클이기 시작하셨다. 찾던 물건이 없으신 것인지 온전하던 화구통을 엎으며 멀쩡한 화선지마저 헝클어트렸다. 한참을 방황하던 손은 우뚝 멈춰졌다.
 
“하아아아…”
 
한숨을 내쉬니 무슨 일 있으시냐며 물음을 던져오는 시종에 아니라며 가서 일보라 손을 내저으니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정말 마음에 들던 화폭이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그걸 흘리다니 멍청하다며 자신을 헐뜯었다. 양손으로 머리칼을 쥐고서 몸을 말았을까,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이 아직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눈을 깜빡이다 머리칼을 쥐고 있던 손이 스륵 풀어지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옆에 놓여 있던 화선지 하나를 다급히 펼치며 붓을 꺼내 들고는 다시 그림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둡게 물들며 밤이 내렸으나 시종들이 주위를 밝혀주고 가니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해서 그려낼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후- 짧은 숨을 토해내며 붓을 내려두자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종이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깨어 도련님이 완성한 그림을 바라보았다. 어떠냐는 듯 저를 바라보시니 역시 도련님이시라 감탄을 토해내었고 그림을 보던 시종은 이내 한 곳을 가리키며 물음을 던졌다.
 
“한데, 도련님 이건 고양이? 입니까?”
 
단순한 물음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사오 도련님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아직도 저와 눈 마주쳤을 때 그 눈빛은 절대 그냥 고양이가 아니었다. 아니 그 크기가 고양이 일리가 없었다. 고개를 파드득 흔들고는 억지로 눈꼬리를 접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그럼 당연히 고양이이지, 이런 검고 사나운 동물을 들어본 적이나 있느냐?”
“음, 아니요”
“그래, 그러니 고양이일 것이다. 그렇고말고”
 
제가 그림에 심취해 잘못 본 것이라 그래, 사나운 짐승이었다면 분명 사람에게 달려들었을 터인데 멀쩡하지 않은가, 쫓아오는 기색도 느끼지 못했으니 그냥 고양이일 것이리라…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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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으로 기대 누워있는 사내는 턱을 손으로 괴고서는 내려둔 종이를 뚫을 기세로 바라보았다. 날이 너무 좋길래 나선 걸음은 조용하고 따사로운 곳에서 멈춰졌다. 인적도 없었기에 마음 편히 숨기고 있던 모습을 드러내고서 쉬고 있었다. 방심한 것이었지, 누군가와 마주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당황도 잠시 그는 그림 한 장만 남겨둔 채 쏜살같이 도망간 후였다. 남몰래 모습을 숨긴 채 지내온 수인이었건만, 이렇게 들킬 줄은 몰랐으나, 사실 입을 열었다 한들, 그 누구도 믿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그림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을까, 이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짧게 인사를 올리고는 종이 뭉치를 건네왔다. 한장 한장 던져 내리던 손은 찾았다는 듯 그림 한 점을 제외하고는 필요 없다는 듯 남은 종이는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들고 있던 그림의 옆에 내려두니 특유의 분위기가 같은 것이 한사람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며 그림을 들고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종이를 튕겼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수하에게 건네니 그림을 받아들고는 짧은 인사를 남긴 채 다시 돌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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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기대 누워있는 사내는 턱을 손으로 괴고서는 내려둔 종이를 뚫을 기세로 바라보았다. 날이 너무 좋길래 나선 걸음은 조용하고 따사로운 곳에서 멈춰졌다. 인적도 없었기에 마음 편히 숨기고 있던 모습을 드러내고서 쉬고 있었다. 방심한 것이었지, 누군가와 마주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당황도 잠시 그는 그림 한 장만 남겨둔 채 쏜살같이 도망간 후였다. 남몰래 모습을 숨긴 채 지내온 수인이었건만, 이렇게 들킬 줄은 몰랐으나, 사실 입을 열었다 한들, 그 누구도 믿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그림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을까, 이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짧게 인사를 올리고는 종이 뭉치를 건네왔다. 한장 한장 던져 내리던 손은 찾았다는 듯 그림 한 점을 제외하고는 필요 없다는 듯 남은 종이는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들고 있던 그림의 옆에 내려두니 특유의 분위기가 같은 것이 한사람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며 그림을 들고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종이를 튕겼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수하에게 건네니 그림을 받아들고는 짧은 인사를 남긴 채 다시 돌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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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번에도 좋은 그림이로군”
 
건네받은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주인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는 돈을 건네왔다. 받으려는 찰나 이것이 네가 그린 그림이냐며 물어오는 목소리에 예, 그렇다 대답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나으리로 보이는 이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음- 그래? 의심 가득한 목소리를 하고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데 절 보는 시선은 어딘가 매서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마른침을 삼켜내며 점포 주인이 내밀었던 돈을 마저 받아들고는 노려보는 이를 힐끔 훔쳐보았다가 금세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고갯짓을 하자 옆에 있던 수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뒤따랐다. 홀로 남은 그는 품에서 족자를 꺼내며 점포 주인에게 건네었다.
 
“내 눈에는 그 그림과 이 그림을 같은 사람이 그린 것 같은데, 어떤가”
 
족자를 펼쳐 본 점포 주인은 작은 감탄사와 함께 이 그림은 어디서 나셨냐며 제게 파시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지기에 눈가를 찡그리며 같은 사람이 맞는 것 같은가, 다시 물으니 살벌한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점포 주인이 고개를 삐그덕 거리며 끄덕여왔다. 붓을 쓰시는 기법과 이리 고급진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오시는 건 아까 그 화공이 유일하다며 확실한 답을 내어주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본 점포 주인은 웃음마저 무서워 다급히 펼쳐진 그림을 말아 건네니 돈주머니를 던져 쥐여주고는 족자를 들고 돌아서는 나리를 향해 다급히 인사를 올렸다.
 
몇 발자국 움직였을까, 갈색빛을 머금고서 하얀 버선을 신은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의 끝을 말고서는 다가와 애옹- 소리를 내었다. 다리 근처를 한 번 맴돌고는 걸음을 옮기는 고양이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담벼락은 덩굴로 가득했고, 관리가 안 되어있다고 보기엔 어딘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 집이었다. 근처에 있던 수하가 저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제 뒤에 섰고 이곳으로 안내해준 고양이는 익숙하게 담벼락을 타고는 기와에 몸을 눕힌 후였다. 대문 앞에 다가서자 물러나 있던 수하가 앞으로 와서는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소리에 누구시냐며 열어젖힌 문에 사내는 이곳에 지낸다는 화공을 보러 왔다, 전하니 시종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뒤를 지나가던 화공을 발견하고는 사내는 손을 들어 가리켰다.
 
“분명 저자가 그림을 파는 것을 보았는데”
“예?”
“응?”
 
뒤를 지나가던 화공은 다름 아닌 샤오도련님의 마시종이었다. 절 부르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본 것인데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나리였다.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아니, 도대체 여기는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찾아오신 것인지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문을 열어주었던 시종은 마시종을 보고서는 저자는 화공이 아니라는 말을 잊지 못하게 마시종이 다가가 그의 입을 손으로 막고서는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저, 저를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식은땀을 흘리며 자기가 아는 분인 듯하다 얘기하니 막고 있던 손을 밀쳐내고는 이상한 눈빛을 보내왔으나 금세 물러나는 시종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대문을 닫으며 밖으로 안내했다. 돌아서던 시종을 발견한 이는 그를 불러 무슨 일이냐며 하문했다. 문을 닫은 마시종은 어떻게 찾아오신 것이냐 다시 여쭈어도 한참을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소맷자락에서 족자를 하나 꺼내 펼치더니 입을 떼어왔다.
 
“그래, 이게 네가 그린 그림이라고”
“어, 어찌 물으십니까”
 
마른침을 애써 삼켜내며 대답하자 그는 흠, 그래? 라는 눈빛을 던져왔다. 무표정한 얼굴에 입꼬리를 올리더니 시선을 내리고서는 펼쳤던 족자를 천천히 다시 말더니 눈만 치켜뜨며 저를 바라봤다.
 
“그래, 시종도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 한데, 염료만으로도 값이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그, 주인이 값을 잘 치러주어서…”
“거기에 제일 좋다는 화선지를 쓸 정도라”
 
한마디 한마디 대답할수록 등과 손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도련님이 그림 그리시는 것은 비밀은 아니었으나 그리신 것을 팔고 오는 것은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감마님이 아시게 된다면 낯부끄럽게 체신을 깎아내렸다며 호통을 크게 치실 것이 분명했기에 절대 들켜선 안 되는 도련님과 저의 작은 비밀이었다. 속으로 도련님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까, 제 뒤로 굳게 닫혀있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려왔다. 놀라 고개를 돌리자 제 도련님이 서 계셨다. 속으로 애타게 부르던 도련님을 마주하니 정말 눈물 날 것만 같았다. 울망한 시종을 눈치챈 것인지 도련님이 문턱을 넘어 나오시기에 황급히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저를 보며 무슨 일이냐며 묻는 주인에게 옆에 있던 나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재빠르게 귓가에 간단한 설명을 전했다. 아무래도 그림이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여기까지 찾아오신 것 같다고,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죄의 말을 마치고 떨어지자 마시종의 어깨를 톡톡 치며 달래었다. 정승같이 서 있는 그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중 한 명이 저를 빤히 바라보는데 뭘 그리 쳐다보나 싶어 저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한 발자국 성큼 다가와 제 앞에 섰다.
 
“화공의 그림이 퍽 마음에 들어서 말이지, 그림을 부탁하려는 것뿐이네”
“의뢰를 따로 받지 않습니다.”
“그럼 그려둔 것이라도 구매를 하고 싶은데”
“그려둔 것이 없습니다만”
“그런데, 화공은 저 시종일 터인데 대답은 그대가 다 하는군”
 
그림에 대한 물음을 하니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한 것뿐인데 그의 마지막 물음에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자신이 실제 화공이라 대답한 것이나 다름없는 모양새가 된 후였다. 더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자 앞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들린 듯했다.
 
“도련님이 그림을 팔아 산다더라, 제법 재밌는 소문이 되겠군요”
“당신…!”
“그럼 청을 받아주신 줄 알고 내일 뵙지요.”
 
그 말만 남기고서 자리를 떠나는 사내의 뒷모습을 눈을 가늘게 접고서는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은 하얘 가지고 코는 또 시원하니 입술은 도톰하더니 웃는 건 또 왜 사람 설레게 하는… 씩씩거리며 걷던 걸음은 이내 우뚝 멈추어서니 뒤따라오던 마시종이 도련님 등에 쿵 하고 부딪히고는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송, 송구합니다, 도련님! 사죄의 목소리는 샤오도련님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켜 마시며 응 아니야, 정신 차려, 마음을 다잡으려 호흡을 고르자 진정되는 듯했다.
 
‌

❧


날이 밝자 정말 대문을 두드리며 찾아왔다. 간단하게 짐을 챙기며 나서려고 하자 마시종이 도련님 홀로 보낼 수 없다며 화구통을 앗아 들며 따라나서니 저를 마중 나온 사내를 따라 길을 나섰다. 마중 나온 사내는 어제 찾아왔던 사내의 뒤에 있던 호위인 듯했다. 힐끔 바라보는데 무감한 표정을 하고서 묵묵히 길만 안내하였다. 걸음이 멈추며 도착한 곳을 올려다보는데 어디인지 모를 수 없었다. 개국공신의 가문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선봉으로 제일 앞에 선다는 왕가였다. 잘못 엮여도 단단히 잘못 엮인 느낌이 드니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큰 저택임에도 시종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왕씨 가문이라는 압박감에 이상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굽이굽이 들어간 걸음은 한 처소의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걸음이 멈추었다. 시종과 함께 들어가려는데 안내해주던 사내가 시종을 막아서며 샤오도련님만 들어가시라 청하였다. 그에 길길이 날뛰려는 시종에 무슨 일이 있다면 소리를 지를 터이니 괜찮다고 달랜 후 홀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빈 처소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문이 벌컥 열렸다. 인기척에 돌렸던 몸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몸을 돌리며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며 옆으로 지나가는 옷자락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등을 돌렸다. 시야를 가려주던 소맷자락을 살짝 옆으로 젖히며 힐끔 바라보는데 여전히 제대로 여미지 못해 드러난 가슴팍과 눈이 마주쳐 놀라 시선을 돌리자 저를 바라보고 있던 사내와 시선이 똑 마주쳐버렸다.
 
“…”
“관음증도 있으실 줄 몰랐는데”
“관, 관음증은 그쪽이 있는 것 같은데요, 옷이나 제대로 입으시지요.”
“더 보아도 상관은 없는데 보시겠습니까”
“뭘 보라는 거에요, 입으세요!!”
 
하하-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에 제 귀 볼은 붉게 물들어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것인지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나 지났을까 앉으시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며 고개를 돌려 큼, 목을 가다듬은 후 자리에 앉았다.
 
“무슨 그림을 원하십니까”
“미완성인 그림이 있는데 그걸 완성 시켜주었으면 해서 말이지”
“다른 분의 작품은 손대지 않습니다만”
“그대의 화풍으로 새로 그려주어도 상관은 없어”
“…원하시던 느낌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얼마나 다를지 알아두는 것이 좋겠군”
“예?”
 
그러니 대뜸 뭐든 좋으니 그려보라는 말에 미간이 구겨졌다. 앉아 있던 몸을 살짝 기울이며 탁상에 팔을 얹고서는 손에 얼굴을 기대어 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작해보라는 듯 살짝 턱 짓을 하는데 갑자기 그림을 그리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가지고 왔던 화구통에서 종이와 붓, 먹을 꺼내며 무엇을 그려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열려있는 창문 너머로 대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릴 것을 정하니 손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따로 색조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검은 먹과 세밀한 붓의 움직임으로 거친 듯하지만, 대나무 특유의 결이 느껴졌다. 집중하며 그리는 그를 유심히 바라만 보다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시 그림을 그리는데 그때 보았던 반짝이는 눈이 똑같았다. 그림이라는 핑계로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지 물어볼 심산이었는데 집중하고 있는 그 모습이 뭐라고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 시선은 한참을 숙이고 있던 그의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지며 다됐습니다. 하고 살풋 지어 보이는 웃음에 제가 시선을 피하였다. 순간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한 건 저임에도 ‘어라, 왜 피했지?’ 본인 역시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을까, 갑자기 눈앞으로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살짝 놀라며 종이를 따라 시선을 올리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저를 바라보는 이가 보였다.
 
“여기요.”
 
아, 종이를 받아들며 그림을 보고는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보자 어떻습니까, 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는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맞추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으나 그는 제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좋은 그림이다. 그대를 찾아가길 잘하였다. 칭찬하니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다는 듯 배시시 웃음을 짓는데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제 입꼬리는 그를 따라서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완성하시려던 그림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보여드릴 수 있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듯하니, 다음을 기약하지요”
 
그 말을 듣고 창문 너머로 시선을 던지니 밝던 하늘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림만 보여주기에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그렇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알겠다며 짐을 차분히 정리하고는 화구통을 어깨에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저를 붙잡아왔다.
 
“그러고 보니, 또 볼 사이인데 통성명도 아직 안 했군요. 왕이보입니다. 샤오잔 공자”
“…저기 왕공자 통성명은 주고받는 것 아닌가요, 이미 혼자 끝내신 듯 헌데”
“순서가 중하겠습니다. 이제는 아시게 되지 않았습니까, 제 이름”
“허”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어이 실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눈가를 찡그리자 아, 어차피 내일도 만날 거라면 여기서 하루 묵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하는 말에 어이가 없어 대답도 잊고 입이 벌어지자 싱긋 웃으며 시종을 불러 방을 내어주었다. 들어온 시종에 화들짝 놀라 괜찮다며 소리를 빽 지르고는 빠르게 도망가는 샤오잔의 뒷모습을 보고는 낮게 웃음을 지었다.
 
내일 만나면 미완성이라는 그 그림을 기필코 확인해서 제멋대로 그려주고는 상대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으나 어찌 된 것인지 그 만남은 하루, 이틀, 일주일, 만남이 길어져 갔다. 미완성 그림을 찾는 척 하면서 다른 그림들을 꺼내어 샤오잔의 눈에 띄니 구경하느라 미루어지고, 어느 날은 무언가를 보고 있길래 궁금한 마음에 힐끗 바라보았더니 샤오잔의 시선을 눈치챈 그가 마침 타국에서 서화첩이 들어왔다며 그대도 보겠냐며 내밀어왔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보고싶다 의사를 내비치니, 왕이보는 제 옆의 비어있는 자리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을 눈치채고는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옆으로 다가와 풀석 앉아 서화첩을 바라보았다.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그는 얼마나 집중한 것인지 어느새 얼굴이 점점 다가왔고 저 역시 샤오잔을 향해 몸을 살짝 가까이 다가가며 서화첩도 잘 보이도록 밀어주었다. 한 폭의 그림의 뜻을 담고 있는 시에 대해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다 보니 또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만남이 지속되니 왕이보도 알 수 있었다. 샤오잔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인간이란 본디 저와 다른 것을 기피 하고 불쾌해함을 잘 알았기에 단순히 겁을 주고 입을 닫게 하려 했으면 처음 보았을 때 했어야만 한다고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밝히지 않고 다른 인간들처럼 같은 겉모습으로만 보여주면 너를 놓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졌다.
 
“라오왕- 대체 그 그림은 언제 보여 줄 텐가~!”
“오늘은 보여주려고”
“진짜?”
“했지만 안되겠네, 이거나 먹고 해”
“안돼, 왕공자 그대 때문에 몸이 무거워진 것 같단 말이네”
 
오늘은 모란을 그려달라는 청에 고개를 숙여 그림을 그리던 샤오잔은 또다시 무언가를 먹이려고 하는 왕이보에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그림을 마저 그리는데 옆으로 다가온 것인지 숙인 시야에 그의 옷자락이 보였다. 아- 소리에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속으로 무언가 훅 들어왔다. 정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에 들어온 걸 깨물자 톡- 하며 입안에 신맛이 퍼졌다. 매말라 있던 입안에 갑작스런 신맛이 퍼지니 턱이 아려와 부르르 떨리며 눈물이 찔끔 맺혔다. 눈을 찡그리며 주먹으로 그의 팔뚝을 퍽퍽 내려치니 아플 만 한데도 왕이보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의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보니 제 입안에 들어왔던 것이 한라봉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나 더 먹겠냐며 내밀어오는 왕이보를 쏘아보니 하나를 톡 떼어 자기 입으로 넣어 먹는 모습이 정말 얄미웠다. 이왕 때린 거 한 대 더 때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주고는 퍽 때리자 갑자기 맞을 팔을 감싸 쥐며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도 막 패고 그러네”
“맞을 짓을 한사람이 잘못이죠”
“안 먹겠다고 이 나이에 떼쓴 사람이 더 잘못 아닌가?”
“아!”
“뭐”
“지금 때렸어요?”
“그대가 먼저 때렸잖아”
 
이! 갑자기 맞은 어깨에 당황도 잠시 어이가 없어 식식거리며 쥐고 있던 붓도 내팽개치고는 다투기 시작했다. 팔뚝만 툭툭 치던 다툼에 주먹을 꽉 쥐고서 내려치려는 샤오잔의 팔목을 왕이보가 잡으며 그만 항복하라며 잡고 있던 팔목을 양쪽으로 교차시킨 후 얄궂게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샤오잔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온몸에 힘을 실어 그를 밀어 넘어트리니 바닥에 드러누운 그 위를 올라탄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반동에 쿵 하며 서로의 코가 부딪히니 숨소리가 멎으며 심장 소리는 멈춘 호흡 대신 함께 숨 쉬려는 듯 거센소리를 내어왔다. 네 개의 눈동자는 깜빡이지도 않고 바라만 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샤오잔이 일어나려 몸을 떨어트리려는데 손목을 잡고 있던 왕이보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끌어당겼다. 다시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이번에는 코가 아닌 부드럽고 폭신한 입술이 맞닿아졌다.
 
쪽-
 
생각지 못한 입맞춤에 조금 전과 달리 몸을 더 빨리 떼어내려 하자 이번에는 잡고 있던 손목을 순순히 놓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빠르게 일어나며 입가를 손등으로 감추고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가는 샤오잔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당장이라도 뛰쳐 달려가 붙잡고 싶었으나 제 옆에 그리다 만 그림을 내려다보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붓을 집어 들어 올렸다. 차라리 지금이 그를 겁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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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혀있던 처소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흐트러진 머리칼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도련님이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뛰쳐나오신 모습을 발견한 마시종은 드디어 사달이 나도 났구나!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다급히 도련님 뒤를 따르면서도 부글부글 올라오는 분노에 함께 서 있었던 호위의 정강이를 발로 한번 차는 것도 잊지 않고서 뒤따랐다. 한참을 달리듯 빠르게 걸어가는 도련님을 쫓아 마시종은 뛰다시피 따랐고 얼마나 달렸을까, 진정되신 것인지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고는 재빠르게 도련님 옆에 다가서며 기분을 풀어드리려 오늘도 성을 내며 운을 띄웠다.
 
“왕도련님이면 다랍니까!? 우리 도련님이 얼마나 귀한 분이신데 계속 오라 가라 하시질 않나, 오늘도 필시 뭘 잘못 하신 것이지요! 자기가 왕씨면 다인가!? 안그렇습니까? 도련님!”
“…어? 아니, 그”
“도련님…?”
 
평소에도 이런 대화를 종종 주고받았기에 오늘도 왕공자가 얄밉더라 이런 말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얼굴이 다시 붉어지시는 것인지, 혹 빨리 걸으시더니 그래서 그러신가 싶어 손으로 도련님 얼굴 근처로 부채질을 해드렸다.
 
“헉, 도련님, 얼굴이 너무 붉으십니다. 더우셔요?”
“아, 아니, 아니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며 걸음을 다시 빠르게 움직이시니 그런 샤오잔을 애타게 부르며 마시종은 뒤를 따랐다. 제 시종은 그가 오늘도 저를 괴롭혔다 얘기했으나 사실 입술이 맞닿았던 그 순간이 싫지 않았고, 싫지 않다고 여긴 자신에 놀라며 설마, 하는 마음에게서 도망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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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헤집어 놓았던 그 날 이후로 매일 샤오가 대문을 두드려오던 이가 찾아오질 않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역시 충동적으로 그런 것이겠지, 그래서 민망하고 부끄러워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고 둘째 날도, 셋째 날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흘 정도 지났을 때는 불쾌감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입은 내가 맞췄나? 자기가, 그런 주제에, 화를 내도 내가 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소가 가득했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갔다. 그런 샤오잔에게 드디어 기다리던 아니 벼르고 있던 그의 연락이 도착했다. 마시종이 다급히 달려와 건네오는 서신을 펼쳐보니 내일 시간이 괜찮으시다는 답을 주시면 그랬듯 사람을 보내겠다는 물음뿐이었다. 마시종에게는 괜찮다는 답을 전해주라는 말을 남기고는 쥐고 있던 편지를 거칠게 구겼다. 그 어디에도 안부도, 사과도 아무런 말도 없었기에 애먼 서신에 화풀이하였다. 시간 괜찮으니 왕이보,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한번 들어보겠다고 부득 이를 갈았다.
 
날이 밝자 샤오가의 대문을 두드린 이는 낯이 익은 자였고 그를 따라나선 둘은 평소와 달리 애먼 호위를 노려보니 그는 마른침만 삼켜내며 길을 안내하였다. 그를 따라 걷는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길을 안내 해주었으나 샤오잔에게는 어딘가 익숙한 길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산행에 도련님을 뒤따르던 시종은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겨 보았으나 그의 몸이, 얼굴이 저 죽을 거 같아요… 라고 말하고 있어서 그런 마시종에게 되었으니 여기 아래 주막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걸음을 재촉했고 뒤에서는 샤오잔을 부르는 도련니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걸어 올랐을까, 오르막이기만 하던 산길이 평평해지며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길을 안내하던 호위는 이리로 쭉 가시면 되신다는 말을 하고서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갑자기 산 가운데 덜렁 떨어진 느낌이 드니 어떻게 해서든 마시종을 끌고 올라올 것을 그랬나, 후회했다. 이대로 쭉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혹시 제가 소리를 지르면 꼭 도와주러 와야 한다며 부탁을 하니 간결한 네, 대답을 듣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고는 뒤를 힐끔 바라보는 행동을 호위가 사라지기 전까지 반복하다가 쭉 옮긴 걸음은 와-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제 눈앞의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이 너무 예뻤다. 그러고 보니 왠지 익숙하다 싶은 길이었는데 꽃을 보니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풍경을 그리고 싶어 얼마 전 무작정 올랐던 곳이 이곳이었음을, 기억을 떠올리자 그러고 보니 기억 한 조각을 잊으려 꽁꽁 문을 닫아두었던 것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제 눈은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바위 하나를 찾았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이와 눈이 마주쳤다.
 
왕이보였다.
 
그를 보자 한구석 불안했던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는 천천히 다가가자 그 역시 저를 발견하고는 바위에서 내려와 제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발걸음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왜 이곳에서 저를 기다렸을까’
‘이곳을 왕이보도 아는 곳이었나’
‘제게 그림을 완성 시켜 달라 해놓고 왜 여즉 보여주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일전에 이곳에서 짧게나마 그렸던 그림을 잃어버…’
 
생각이 타고 올라가다 이상한 기분에 걸음이 우뚝 멈춰졌다. 에이, 설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굳어버린 발은 다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샤오잔의 걸음이 멈추니 그에게 향하던 왕이보의 발걸음 역시 멈춰졌다. 처음부터 저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으나 오늘은 그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그 얼굴이 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켜와 옷자락을 움켜쥐며 바라만 보았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멈춰 서있던 왕이보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둘 사이에 다섯 발자국의 거리만 남겨둔 채 멈추어섰다. 소맷자락에서 족자를 하나 꺼내며 촤락- 펼치는데 그 그림은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던 미완성의 그림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그림은 제가 잃어버린 그림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그림은 분명 검은 고양이, 아니 검은 호랑이와도 같은 커다란 짐승에 놀라 제가 도망치다 잃어버린 것이었다. 산을 거닐다 주웠다 한들 저리 깨끗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떨어트리자마자 주웠다는 가정밖에 내려지지 않았다. 사람이 검은 호랑이와도 같은 짐승에 놀라지 않고 온전히 그림을 주워 산에서 내려온다? 제 머릿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읊조리는 듯했지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굳게 닫혀있던 입을 샤오잔이 먼저 떼었다.
 
“그, 그림 어디서 나셨습니까”
“주웠지”
“어디서”
“이곳에서, 나를 보고 도망갔잖아”
“나, 나는”
“그렇지, 그대가 본 건 이 모습이 아니겠지”
 
도망갔다는 말에 눈을 질끈 감고서는 다시 기억을 떠올렸으나 제가 아는 왕이보를 마주친 기억은 절대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나는 너를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려 눈을 뜨며 시선을 마주하는데 저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얇게 수축하며 마치 짐승과도 같은 눈으로 시선을 마주쳐왔다.
정말 제가 만난 그 검은 짐승이, 눈앞의 왕이보 였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바라만 보는 샤오잔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 불편함, 혼란스러움, 모든 것이 담아져 있으니, 그 얼굴을 확인하고는 낮은 실소가 새어 나왔다. 픽- 코웃음 같은 소리에 움찔하고 놀라는 그를 확인하고 나니 잠시나마 즐거웠다. 쓴웃음은 목 너머로 삼켜내고는 언제 코웃음을 내었냐는 듯 무감한 표정으로 갈무리하고서는 그에게 들려준 적 없던 냉소적인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왕가가 전쟁이 일어나면 왜 선봉에 서는 줄 알아? 무인이라서? 아니”
“…”
“우리는 대대로 이 나라를 지켜라며 족쇄 채워진 수인이니까”
“…”
“왕실과 왕가만의 비밀을 그대가 알았으니 어찌해야 할까, 그래, 물려 죽기 싫다면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도 잊고, 내가 한 얘기도 잊는 것이 그대에게 이로울 거야.”
 
그가 무어라 말할지 한마디 한마디 듣고 있자니 그는 제게 겁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제게서 멀어지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착잡한 듯한, 싫다는 듯한, 마지못해 말한다는 듯한, 그런 표정은 감추었어야지, 아니, 처음 저를 마주했을 때 그리했어야 했다. 지금의 나는 너의 그 표정이 말과 다르다고 다 읽히는데, 위협으로 들리지 않으니 이것 또한 문제라면 문제임이 분명했다. 다섯 걸음 떨어져 있던 걸음을 줄여가며 왕이보의 코앞에 다가섰다.
 
“라오왕, 너는 너를 잊으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려고 했으면 나에게 입을 맞춰서는 안 되는 거였어, 너를 잊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잊으라고 하는 거야, 너라면 가능해? 왕공자, 그대는 가능합니까?”
“…가능하도록 하겠지, 목숨이 아깝다면, 잔공자 그대는 아깝지 않은 겁니까”
“아니요, 저도 겁낼 줄 알고 무섭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요”
 
무감한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저릿하며 눈가에 물이 맺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던 입을 천천히 떼며 왕이보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만,, 나만 잊기 싫은 겁니까? 정말 그게 원하는 바라면 그렇게 할게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물을게, 왕이보 너를 잊을까?”
 
제 물음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맞추고 있던 시선을 떨어트리며 그 손에 쥐어져 있던 족자에 시선을 던졌다. 쓴 숨을 삼켜내고는 쥐고 있던 족자를 빼내고는 왕이보의 눈앞에서 그대로 찢었다. 양손에 한쪽씩 들려진 반쪽의 족자를 쥐고 있던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그의 연결고리를 놓으려는 것처럼 손을 펼치니 찢어진 족자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대가 바라는 대로 이곳에 묻고 가겠습니다. 다시는 그대를 만나는 일도 아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마십시오. 비밀이 새어나갈까, 옆에 두셨던 것이었는데, 제가 멍청했지요.”
 
시선을 떨어트린 후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서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왕이보는 놓으려 눈을 감으며 견뎌내려 했으나 그의 걸음 소리만이 제 귓가에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입안 볼살을 씹어내던 그는 굳어져 있던 발을 움직여 등을 돌린 샤오잔을 붙잡았다.
 
“…샤오잔”
“왜 붙잡습니까, 잊으라면서요”
 
등을 보며 그의 이름을 불러도 샤오잔은 돌아서지 않은 채 저를 채근해왔다. 나도 너를 왜 붙잡은 것일까, 안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데, 네가 나를 잊는다고 생각하니, 네가 떠나가는 소리가 나를 더욱 미치게해서, 그냥 나도 미쳐보기로 했다.
감싸 쥐고 있는 샤오잔의 손이 마치 마지막 동아줄이라는 듯 꼭 그러쥐고는 애달픈 목소리를 내었다.
 
“미친 거 아는데, 샤오잔, 나를 잊지 말아줘, 이러면 안 되는데 너를 붙잡고 싶다고 하면, 붙잡혀 주겠어?”
“…”
“…샤오잔”
 
마지막일 것만 같은 그의 이름을 불러보자 뒤돌아 서 있던 그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저와 시선을 마주치는데 그 고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말을! 아까, 했,어야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왜 사람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할퀴는 겁니까,”
“내 선택이 너를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등과 손바닥으로 거칠게 닦아 내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왕이보를 노려보았다. 울음을 참아내려는 것인지 입술을 깨물었다 풀었다 하기에 그 모습을 보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엄지 손가락으로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길을 쓸어내렸다.
 
“그냥 나를 때리고 울어, 네 입술은 그만 괴롭히고, 응?”
 
그 말에 아랫입술을 꾹 누르고 있던 입이 떨어지며 속에 맺혀있던 화와 함께 거친 숨이 터져 나오며 눈물을 흘리는 샤오잔을 말없이 앉아 주었고 그런 왕이보의 등을 매섭게 때렸다. 둘의 화해를 축하하는 듯 바람이 불며 허리춤에 가득 꽃피워있던 유채꽃들이 살랑이며 그들을 감싸 안아 주었다.
 
 
 
 
 
一世只愿
陪你看四季繁华 风中成花
 
한 평생을 그대와 함께
아름다운 사계절이 피워낸 바람꽃을 지켜보고 싶구나
 
风花_풍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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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왕샤오의 첫만남을 축하하며 참여한 마오입니다.
이 글은 220314를 기념하는 글로 연성을 읽어주신 거북이분들께서는
올해도 왕샤오 덕질을 함께 해주십사 하는 중국아닌 한국에서 시작된 편지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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