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zya _xiao
빛에서키스까지초속2미터
창가 맨 끝 자리.
그 자리의 주인은 가끔 자리를 비운다. 문뜩문뜩 낮도깨비마냥 자리를 비우곤 하며 종례가 끝날 때 면 언제나 쏜살같이 사라진다. 그 자리의 주인은 있는 듯 없는 듯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에 등교해 자리를 채우고 담임선생님이 부르는 출석에 조용하게 응하며 교류라고는 옆자리에 앉는 짝밖에 없는 그런 흐릿한 존재감의 사람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었다.
그 날. 부서지는 햇살이 그 흑단 같은 머리카락에 내려 앉은 별가루마냥 반짝이지 않았더라면, 그 투명한 피부에 비쳐 반사 되는 빛이 제 눈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새벽 이슬을 맞은 장미처럼 약간 발그레해진 두 뺨에 덩달아 제 뺨도 붉어지지 않았었더라면, 그 맑고 고요한 눈에 담긴 깊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그 날렵한 코를 따라 떨어지는 빛방울을 보지 못했더라면, 졸업 할 때까지도 그런 애가 제 옆옆자리에 앉아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왕이보는.
그 반짝이는 얼굴을 보고 난 후, 왕이보는 행동력도 좋게 말 한번 걸어 본 적 없던 예의 창가 맨 끝 자리의 짝꿍 옆에 착 붙어 궁금증을 해소하려 했다.
“안녕. 나 알지. 내가 궁금한 게 좀 있는데 가르쳐줄래? 응이라고? 고맙다.” 왕이보가 성질 급하게 인사와 함께 자기 할말만 좌르르 뱉어내니 창가 맨 끝 자리의 짝은 영 얼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온다. 하지만 제 옆자리 아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왕이보는 또 제 궁금증부터 쭉 나열해 댔다. 니 옆에 앉는 걔, 샤오잔은 왜 가끔 조퇴하고 없어지냐, 도대체 걔는 종례 끝나면 왜 그렇게 빨리 집에 가냐, 꿀단지라도 집에 묻어놨냐, 와다다 쏟아내니 드디어 옆자리 주인이 정신을 차린 건지 질색하면서 왕이보에게 떨어지라고 한다. 어느새 왕이보의 너무 가까이 들이밀어진 얼굴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어 질문세례에 잠시 가출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보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떨어질 생각이 없다는 듯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기세로 부담스레 옆자리주인을 쳐다봤다. 극도의 상황은 사람의 본성에 빛을 비춘 달까. 옆자리주인이 반격을 시작했다.
“아! 좀 떨어지라고. 그리고 내 짝꿍은 니보다 형이다. 니는 같은 반 되고 어떻게 한 달이 다되도록 같은 반 애한테 말 붙일 줄도 몰라서 나한테 물어보니. 이 찌질아. 어휴. 됐으니까 떨어져 진짜. 가! 나 밥 먹어야 돼!!”
거칠게 왕이보를 밀어내며 물리친 옆자리아이는 결국 맨 끝자리 형 샤오잔이 왜 가끔 자리를 비우는지, 집에는 또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샤오잔은 왜 그렇게 집에 빨리 가냐고. 왕이보는 작게 웅얼거리며 말끝을 흐리며 부러운 눈으로 샤오잔과 밥을 먹는 옆자리 애를 부러운 듯 쳐다봤다.
밥을 먹자며 저를 부르는 소리에 왕이보는 꾸역꾸역 다리를 옮겼다.
학교가 끝나고 왕이보는 자주 농구를 같이하는 놈들에게 샤오잔에 대해 물었다.
“야, 너 우리반 샤오잔 알아?”
의외로 샤오잔은 학교의 유명인이었다. 그리고 형이라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는데 그 유명세에는 수려한 외모와는 상반되는 지저분한 소문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형 모르는 애가 우리학교에 어딨어.”
“잘생겼잖아.”
“그거 말고 뭐 더 아는 것 좀 없어?”
“몰라.”
“나 알아.”
“그 형 조폭이라던데? 그 소문도 있잖아 그 형 1학년 때 우리학교로 전학 온 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사고치고 온 거라고.”
“야! 너는 뭐 그런 얘길. 더 해봐.”
“이게 단데?”
“아 맞다. 그리고 그 형. 자기 짝이랑 사귄다던데. 걔랑만 얘기하잖아. 여자도 되게 밝힌다던데. 역시 얼굴값인가.”
그 소리에 단번에 왕이보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
“내가 듣기론 그 형 뭐 한다던데 뭐더라? 운동? 음악? 그리고 그 형”
“야. 니네가 뭘 안다고 샤오잔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 입 조심해라.”
왕이보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나하나 째려보며 등을 돌렸다. 특히 여자 밝힌다고 말한 놈은 좀 더 쳐다봤다. 왕이보는 저런 놈들 입에 샤오잔이 오가게 된 것 자체에 화가 났다.
“저새낀 지가 물어봐 놓고 왜 저래?”
“몰라. 또 뭐 수틀렸나 부지.”
괜히 저새끼들한테 물어봤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지네가 샤오잔에대해서 뭘 안다고 뭐 사고를 쳐? 샤오잔은 딱 봐도 천산데 사고 치겠냐 진짜. 뚤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고. 하 진짜 개빡치네. 근데 제일 빡치는 건 샤오잔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저런 놈들한테 샤오잔을 물어본 나 왕이보. 이 바보 같은 놈. 나는 오늘 들은 대로 찌질이가 맞다. 본인이랑 친해져서 알아 볼 생각은 안하고. 왕이보가 제 머리를 퍽퍽 치며 쥐어뜯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 정도 뽑혔을 때 쯤 왕이보는 자기반성을 멈추고 내일부터는 샤오잔에게 다가가 그를 알아보기로 다짐했다. 덤으로 그 심해 같던 눈도 보고. 내일 일은 내일의 이보에게 맞긴 채 어제 못다한 레고를 마저 조립했다.
언제나와 같은 등교에도 작은 이변이 생겼다. 왕이보는 어제 레고를 너무 오래 조립했는지 늦게 잤고 당연하게도 늦잠을 자버렸다. 분명 등교하면서 샤오잔한테 뭐라고 말을 걸까, 언제 걸까 그런걸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잽싸게 놀리고 있는 발과 조여오는 폐에 정신이 없고 지각도 이런 지각이 없다. 눈 뜨니 8시 반 이라니! 도대체 모닝콜은 울리긴 한거냐고! 교실에 8시 반까지 들어 가야 되는데. 아침밥은 물론 스킵했다. 엄마 미안해. 저녁 따블로 먹을게. 힘껏 뛰어온 탓인가 9시가 되기 전인 아슬아슬한 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다. 담임이 저를 기다린 건지 머리를 콩 때리고는 늦지 마라 왕이보 한번만 봐준다며 수업을 하러 사라졌다. 헐레벌떡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펴곤 창가로 눈이 갔다. 뭐가 웃긴 건지 샤오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였다. 그 모습에 왕이보는 미처 다 가다듬지 못한 숨을 죽이며 고개를 숙여 창가를 보는 척 샤오잔을 쳐다봤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샤오잔이 제 짝과 점심을 먹을 채비를 하길래 왕이보는 냅다 그사이에 껴 넉살 좋게 들러붙었다.
“나도 밥 같이 먹어도 돼? 될까요? 형?”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깨버린 이를 빤히 쳐다보는 사오잔의 시선이 따가워 왕이보는 말끝을 올렸다. 그 모습에 샤오잔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밥 같이 먹자. 어려운 것도 아닌데. 같은 반인데 불편하게 말 높이지 말고 편하게 말해. 나이차, 너도 괜찮아?”
“응. 뭐. 괜찮아. 쟤 반찬은 뭘지 궁금하다.”
다양해질 점심반찬을 기대하는 나이차의 눈빛은 매우 반짝였다. 급식실이 급작스레 1달간 공사를 하게 돼 시작 된 도시락 덕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다며 주먹을 꼬옥 쥔 왕이보는 기대에 찬 얼굴로 가방을 열었다. 엄마는 오늘 뭘 싸줬으려나. 나이차와 다시 얘기를 하며 밥을 먹는 샤오잔의 모습은 토끼같았다. 뭘 그리 오물오물 입이 바쁜지. 그리고 왕이보는. 그래. 도시락을 놓고 왔다. 엄마가 예쁘게 상위에 올려 놓은 도시락통을 스쳐 뛰어나온 것 같다. 하…. 이놈의 늦잠.
왕이보의 망연한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샤오잔은 영 밥을 들고 돌아오지 않는 왕이보가 신경 쓰여 저쪽을 바라보니 어쩐지 혼 빠진 당근 같은 얼굴로 파들파들 떠는 왕이보는 손이 비어있었다. 그 모습이 의외로 귀여워서 보고 있으려니, 금방 이쪽으로 다가온 왕이보가 밥은 내일부터 먹으면 안되겠냐며 도시락을 지각해서 놓고 온 것 같다고 솔직히 말해왔다. 그런 왕이보가 귀여워 내 간식인데 너 먹으라며 샤오잔은 빵을 건넸다. 왕이보는 쪽팔려서 콱 접시 물에 코 박고 뒈지고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가오가 없을 수 가.
"너 되게 허술하네."
아침부터 그렇게 하루 종일 쳐다볼 거면 밥이나 챙겨오던가 밥도 안 챙겨와서 같이 밥 먹겠다고 말 걸어 놓고는, 잔뜩 당황하는 꼴이 우숩고 귀여워 충동적으로 빵을 내줬다. 쓸데없이 잘생겨선. 뭘 저렇게 잘 먹는 건지. 왕이보와의 대화는 샤오잔에겐 실로 오랜만에 학교에서 나눠보는 나이차가 아닌 이와의 대화였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이후로도 왕이보는 어김없이 샤오잔과 나이차 사이에 자리를 잡곤 밥을 먹었고, 수업 중에도, 밥 먹을 때도,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샤오잔을 쳐다보다가 선생님이나 나이차에게 남의 얼굴을 공부하지 말고 진짜 공부를 하라며 혼쭐이 났다. 특히 선생님들에게는 성적 떨어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곁들여서.
이런 왕이보의 행동에 가장 곤란해 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샤오잔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왕이보의 그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과 마주쳤으니까. 아, 하필 왜 같은 라인이어서는. 나이차마저 없었으면 정말 내 얼굴 반쪽이 저 레이저에 녹아 사라졌겠다 싶을 정도다. 쟤는 갑자기 왜 나한테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표하는 건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들었지만 샤오잔은 학업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성적도 제법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이번 시험은 특히나 잘 봤다. 샤오잔은 학교에서 말고는 공부하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제법 흡족하게 오른 성적에 욕심이 나 다른 아이들보다 효율적으로 이 시간을 쓰기 위해 수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꽤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이 노골적이고 열렬한 눈빛에 정신머리가 혼란했다. 여태까지 있는 줄도 모르고 살더니 왜 저래 진짜. 그래도 이 상황이 싫지는 않다는 게 샤오잔에게 너무 낯선 일이라 이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가득해져 결국 오늘 공부는 호로록 말아먹었다. 얼른 학교를 마치고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물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그냥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으니까.
고대하던 종례시간이 끝나고 헐레벌떡 뛰쳐나가 수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한편, 왕이보는 아쉬웠다. 샤오잔에게 말 몇 마디 걸어보지도 못하고 종례시간이 다가와버린 것이 아까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토끼처럼 생겨선 발이 얼마나 잽싼지 종례가 끝나자마자 샤오잔은 가방과 함께 사라진 채였고 왕이보는 홀린 듯 빈자리를 한참을 쳐다봤다. 나이차가 넌 집에 안 가냐며 저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족히 한 시간은 정신 빼고 있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왕이보는 내일은 꼭 샤오잔에게 말도 열 마디 붙이고 번호도 따야겠다 굳게 다짐하며 귀가했다. 집에 오자마자 도시락을 잽싸게 먹어 치운 후 설거지를 싹 해놓음으로 증거인멸과 함께 등짝을 보호를 확보한 후에야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을 시작했다.
오늘도 샤오잔 존나 아름다웠음. 햇살 받으면 이게 태양신의 가호를 받은 건지, 그냥 빛의 요정인지 구분 불가. 샤오잔은 신이다.
너무 빠르게 왕이보의 일상에 정착하게 된 샤오잔 얼굴 뚫기는 안타깝게도 왕이보의 성적에 크리티컬했다. 당연했다. 머리속엔 오로지 샤오잔만 가득한데 공부가 되겠나. 왕창 떨어진 성적으로 담임의 ‘너 나 좀 보자.’와 부모님의 잔소리가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태평하게 오늘도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샤오잔을 바라봤다. 오늘은 샤오잔의 속눈썹이 정확히 0.1미리 더 길어 졌고, 오늘도 형은 존나 아름다웠으며, 샤오잔이 하품하느라 흘린 눈물을 보고는 아 저 옥루가 저기서 저렇게 낭비 될 것이 아닌데 하고 아쉬워하며, 눈물 맺힌 샤오잔. 오늘은 물의 여신의 가호를 받음. 분명함.
이제 샤오잔은 저 요란스런 눈빛에 완전 적응해 에효, 썬팅한 아크릴판이라도 세워야 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짝꿍에게 먹을걸 건넸다. 내 천연 썬팅 나이차. 힘내라.
이제는 자연스럽게 셋이 밥 먹는 게 일상이 되니 새로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일단, 샤오잔과 나이차는 사귀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다. 둘은 그냥 정말 친했다. 또, 샤오잔은 입이 짧았는데 의외로 고칼로리의 음식을 선호했다. 그리고 간식을 자주 챙겨먹었다. 왕이보는 자기 도시락에서 반찬셔틀을 자처하다가 급식이 정상화되자 시무룩했던 게 언제였는지 다시 자기 반찬을 신나게 샤오잔의 식판으로 퍼다 줬다. 나이차의 따가운 눈빛은 덤이었다. 니들 진짜 뭐하세요. 하는 눈으로 나이차가 쳐다볼 때면 샤오잔은 머슥한 웃음을 내비치며 나이차에게 먹을걸 찔러줬다. 그러면 요 사건의 발단인 녀석은 또 도끼눈을 뜨고 나이차를 한 번 쳐본 후 강아지 같은 눈으로 형. 나는? 하고 물어왔다. 응. 니 건 없다. 울먹거리는 강아지표정이 되자 샤오잔은 살풋 웃으며 옜다 하곤 먹을걸 줬다. 정말 강아지 간식 챙겨주는 기분이라.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포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귀여워 머리를 부빗하고 헝클었더니 고개를 쳐들고 갑작스레 물어왔다.
“근데 형은 맨날 학교 끝나자마자 어딜 그렇게 가?”
“나? 수영장.”
“수영장? 근데 왜 그렇게 빨리 가. 수영장에 꿀묻어놨어?”
“수영선수가 빨리 가서 연습을 해야지.”
“수영선수? 누가? 형이?”
“오냐.”
“우리학교 수영부 없잖아.”
“그러니까 빨리 가서 연습하는 거야. 학교에 수영장이 없잖아. 근데 이 똥강아지는 언제 공부를 하려나. 너 원래 공부 잘한다며. 이제 이 형 얼굴 그만 공부하고 진짜 공부를 해라. 좀.”
그러고 보니 사오잔은 가끔 멀쩡한 모습으로 조퇴를 하거나, 결석할 때가 있었다. 수영하러 간 거였구나. 수영선수라니 샤오잔이 더욱 멋져 보였다. 아, 뭐야. 그럼 형 많이 먹어야 되는데. 지금도 너무 말랐는데. 먹을 거 뺏어먹어 버렸잖아!!! 바보왕이보! 바보! 왕이보는 이날부터 형의 간식주머니를 자처했다. 샤오잔이 주는 빵도. 나이차한테 주는 빵도 다 뺏어서 샤오잔에게 다시 주고 샤오잔이 먹을 것도 싸 들고 다녔다. 물론 지랄을 한다며 차게 식은 나이차의 눈빛은 덤이었다.
샤오잔은 수영이 좋았다. 물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에 있는 시간이 좋았다.
물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게 특히 좋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뭉그러져 웅웅 울리기만 할 뿐 사람소리 같은 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너무 좋았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고, 샤오잔은 고요한 것이 좋았다. 세상은 샤오잔에게 너무 관심이 많지만 샤오잔은 그런 관심이 싫었다. 샤오잔은 한때 수영신동이라고 불리며 소란스럽게 체고에 입학했었다. 물론 샤오잔이 소란을 피운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거기에는 샤오잔의 화려한 성적처럼 수려한 얼굴이 한 몫 했으리라. 신동이 우리학교에 입학했으니 바짝 긴장하며 샤오잔을 소개하던 감독님 말에 시선이 샤오잔을 향했다. 뾰족뾰족.
사교적이지 못했던 샤오잔은 점점 고립되어갔고 날 선 시선은 점점 몸집을 키워가며 샤오잔을 내리눌렀다. 처음엔 시선이었지만, 다음엔 은근한 무시였고, 그 다음엔 물건이 사라졌으며, 그 다음엔 잡아 먹혔다. 아니. 온전히 잡아 먹힐 뻔 했다.
그것에게 다 잡아 먹힐 때쯤 만난 사촌 형은 귀신같이 샤오잔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다짜고짜 전학을 권했다. 자신이 일하는 학교로.
일이 바빴던 부모님 대신 샤오잔의 유년시절은 주로 이모네집에서 지냈고 늘 사촌인 채정형과 함께였다. 채정은 어릴 적부터 저보다 한참 어리던 샤오잔을 잘 챙겨줬고, 말수가 적은 샤오잔의 감정을 잘 캐치했으며, 수영장에 처음 가자고 해준 것도 채정이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인데, 샤오잔은 자기가 왜 전학 가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전학을 갔다. 고작 입학 일년만의 일이었다. 학교에선 눈에 띄게 성적이 떨어져가던 샤오잔이 전학을 간다 하니 말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환영할 때는 언제고.
한때는 수영신동이라고 불렸던 이의 쓸쓸한 퇴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오잔은 물에 들어가는 걸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수영을 그만두기에 샤오잔은 물에 있는 시간을 너무 사랑했다. 오히려 수영 성적이 떨어지고 거품이 꺼지듯 사라진 관심에 대한 기쁨이 기록이 안 좋아져서 드는 상실감보다 컸다.
샤오잔에게 수영은 곧 숨을 쉬는 것이고, 샤오잔을 샤오잔으로 있게 하는 샤오잔이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성적이 좋던 나쁘던 샤오잔은 늘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전학을 가고 한참 후에야 고맙다며 채정에게 마음을 표현하니 징그럽게 안 하던 짓 하지 말라며 고마우면 일주일에 한번씩 형이랑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전학와서 다 괜찮아졌는지 알았는데 아직 한참 멀은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대여섯 명 이상 모여있는 또래 남자아이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그냥 가끔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런 증상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게 채정이다. 채정은 정말 못된 것들이라며 주먹을 꼭 쥐고 허공에 주먹질을 몇 번하고는, 샤오잔을 꼬옥 안고 상담을 받아보라며 다독였다. 어쩐지 어깨가 뜨거워진것도 같다. 채정은 대학 동기가 하는 병원을 샤오잔에게 소개시켜줬다. 샤오잔은 휴학을 하고 치료에 힘쓰며 상태가 많이 안정되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샤오잔은 복학을 했다.
복학을 하니 동갑이 없다는 사실이 샤오잔은 오히려 편하게 했다. 그래도 동성무리는 여전히 좀 꺼려졌다. 키가 큰 탓에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말이 많은 짝꿍이 생겼다. 짝꿍의 이름은 나이차인데, 이름처럼 뽀얀 피부를 가진 솔직한 아이였다. 나이차는 채정형처럼 저를 챙겨줬다. 어느새 편하게 같이 밥을 먹고 있길래 그냥 그런가부다했다.
“나이차. 너 내가 너보다 한 살 많은 건 아니?”
“응. 왜? 이제와서 존대해줘?”
“아니 지금처럼 해줘. 야. 너. 샤오잔. 이렇게 불러줘.”
“그래. 근데 너는 학교 끝나고 어딜 그렇게 가. 나랑 놀러 가자.”
“안돼.”
“왜.”
“수영 하러 가야 돼. 놀 거면 주말에 놀아.”
나이차랑은 가끔 주말에 노래방도 가고 밥도 먹을 만큼 많이 친해졌다. 그래선지 학교에 좀 이상한 소문이 나버린 것 같지만.
여느 때와 같이 샤오잔의 어미새라도 된 마냥 샤오잔의 입에 먹을걸 열심히 채워 넣는 왕이보를 보며 샤오잔은 갑작스레 물어봤다.
“이보. 너 나 좋아해?”
“나 형 완전 좋아하지.”
왕이보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해맑게 웃는 왕이보를 보며 샤오잔은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얘는 사람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나를 친구로 좋아하는 거구나. 약간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샤오잔은 입을 앙 다물고 댓빨 나온 입을 하고는 안녕도 하지 않고 학교를 나서 수영장에 갔다. 그렇게 들어간 물에서는 이상하게 실수가 잦았고, 쥐도 나서 연습을 조졌다. 밥맛도 없었다. 수영 후에 밥은 꿀맛인데.
왕이보에게 생긴 약간의 심적 거리감이 사라질 때쯤 왕이보는 답지 않게 몸을 베베 꼬며 형…. 나. 형 수영 하는 거 구경하러 가도 돼? 라고 물어왔다. 샤오잔은 웃으며 허락을 말했다. 수영복은 꼭 챙겨오란 말과 함께.
그렇게 같이 수영장에 가기로 한 날이 오자 왕이보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 수영복과 수모, 수경, 세면도구를 꼼꼼히 챙긴걸 세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왕이보는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섰다. 이날도 지각을 했고 왕이보는 하루 종일 해드뱅잉을 하며 어제 나 잠못잤어요하고는 광고했다. 수영장에서의 샤오잔은 정말 너무 멋있었다. 젖은 샤오잔이라니.
그리고 그날. 왕이보는 몽정을 했다.
몽정을 하고 나니 샤오잔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종일 눈을 피하는 왕이보를 보며 내가 어제 뭘 잘못했나 싶던 샤오잔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런데 왕이보는 같이 밥도 안 먹는다 하니 정말 어이가 없고 기분 상했다. 그래서 이날은 물을 잡아먹을 것 마냥 사납게 수영했다. 거칠고 비효율적인 수영으로 힘이 쪽 빠져 샤오잔은 밥을 두 그릇 먹고 체해서 밤이 다 가도록 낑낑거렸다. 왕이보 이 나쁜놈. 이때가 딱 시합전주였는데 샤오잔은 한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이날부터 맨날 기분 나빠서 컨디션도 덩달아 나빴다. 그 놈은 결국 저랑 1주일이나 눈을 마주치지도 밥을 같이 먹지도 얘기를 하지도 않았다. 나이차가 옆에서 둘이 무슨 일 있었냐며 물었지만 샤오잔도 아는 게 없어 대답해줄 것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시합날이 왔다.
샤오잔은 시합에 가기 위해 결석을 했다.
샤오잔의 부제에 형 왜 안 왔냐고 나이차 옆구리를 콕콕 찌르니까 되려 매서운 나이차표 솜방망이가 날아왔다. 니는 샤오잔한테 왜 그러냐고. 좋다고 들러붙어서 맨날 쳐다보고 밥 먹이면서 귀찮게 할 땐 언제고 왜 수영 잘하고와서는 샤오잔 눈도 피하고 점심 먹는 것도 피하고 내가 일주일 동안 빙판길 걷는 기분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냐고 빨리도 물어본다고 왕이보의 등짝을 착착 쳐가며 말했다. 왕이보는 한참동안이나 등짝을 내준 후에야 나이차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샤오잔 오늘 경긴데 니때메 망하면 니는 죽고 나는 사는거야. 알았어?”
이 소리를 듣자 마자 왕이보는 담임한테 달려가 조퇴시켜달라고 싹싹 빌고 쌩쑈해서 간신히 조퇴증을 받고 샤오잔을 보러 달려갔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왕이보는 샤오잔이 어디에서 경기하는지를 몰랐다. 구글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오늘 열리는 수영경기일정을 싹 뒤져보는데 다행히 하나밖에 없었다. 버스타고 2시간 반 걸려서 어찌저찌 경기장까지 갔는데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시합이 다 끝나고 집에 가는 사람들만 한가득이었다. 왕이보는 아무나 잡고 말을 건냈다.
“오늘 경기 다 끝났나요?”
“고등부 경기는 다 끝났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샤오잔을 꼭 응원해주고 싶었는데. 근데 늦게 와서 경기도 못보다니. 그러게 누가 일주일동안 눈도 못 마주치고 밥도 안 먹고 말도 안하랬나. 바보. 바보왕이보. 근데 샤오잔 수영하는 꿈을 꾸며 일주일 동안 맨날 몽정해서 샤오잔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짐승새끼라니. 내가 형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후회의 눈물이 줄줄 흘러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래도 샤오잔을 만나고 싶어 열심히 찾았다. 정문으로 나올지 후문으로 나올지 몰라 무식하게 경기장을 열 바퀴 돌아봐도 형은 안보였다. 너무 속상했다. 샤오잔은 먼저 갔나 봐. 형 경기도 못보고. 형도 못보고. 벤치에 앉아서 덩치 큰 남자애가 샤오잔 샤오잔거리며 울고 있으니까 다들 한번씩 쳐다보는데 그것도 모르고 왕이보는 엉엉 울었다. 그때 누가 왕이보를 툭 쳤다.
“너 여기서 뭐해.”
형이다. 샤오잔 목소리다. 샤오잔 목소리를 들은 왕이보는 혀엉 하면서 더 크게 울었다.
“왕이보. 너 그만 좀 울어. 다들 쳐다본단 말이야.”
샤오잔이 아주 빠르게 말했다. 그래도 왕이보의 울음은 잦아들질 않았다.
“뚝 안 하면 놓고 나 혼자 간다.”
샤오잔이 차가운 목소리를 내며 뒤돌아서니 왕이보는 거짓말처럼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 행태가 참 어이없다. 참나, 넌 일주일 동안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더니 여긴 왜 왔냐? 톡 쏘며 앞으로 걸어가는 샤오잔의 뒷꽁무니를 왕이보는 미안해. 미안해. 염불외면서 샤오잔 발끝만 쫓아 걸었다.
학생 둘 이요. 버스표를 끊어 버스에 앉았다. 평일 이른 오후여선지 버스에 손님이라고는 둘뿐이었고, 둘은 이인석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왕이보의 얼굴은 얼마나 운 건지 정말 엉망이었다. 퉁퉁 부어 벌건 눈과 불어버린 볼따구니가 영락없이 불은 물만두 같았다. 일주일간 앓았던 샤오잔의 속이 불은 물만두를 보고 사르르 녹아 다독거리려 말을 꺼냈더니 왕이보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니가 먼저 말하라며 서로 세번쯤 말을 꺼냈을 때에 샤오잔의 뾰족해진 눈꼬리를 보고 이보가 결국 먼저 말하기로 했다.
“나 형 좋아해.”
“나도 알아. 저번에 나 좋아한다며.”
“아니. 그게 아니라. 나 형 진짜 좋아해. 내가 형 눈을 못 본건. 그게 그… 꿈에 형이 나와서였어. 미안해. 내가 형 피한 거 잘못했어. 내가 내 마음도 몰라서. 나 한번만 봐주면 안돼?”
한번만 봐달라니 한번 봐준다는 마음으로 왕이보를 쳐다봤더니 왕이보는 그새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샤오잔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샤오잔은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웃어버렸다. 왕이보가 너무 귀여워서. 귀여워서 또 말렸네. 형이 저를 보면서 웃는 모습에 왕이보는 방금 까지 지옥 같던 세상이 아름답고 그냥 다 됐다.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형 오늘 경기 잘했냐고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다. 빨리도 물어본다.
샤오잔은 재빨리 착잡한 얼굴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만 바라보던 애가 수영 한번 같이 했다고 내 눈 한번 안 맞춰주고 일주일 동안 피해서 컨디션난조로 망했지. 한숨까지 곁들이니 샤오잔은 정말 이번 시합에서 가망도 없이 망한 사람 같았다.
“내, 내가 형 책임질게.”
눈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는 저를 책임진다고 말하는 왕이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샤오잔은 냅다 뽀뽀했다. 왕이보는 뽀뽀 당한 입술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혀혀혀형. 이게 무슨 뜻이야?”
“이런 뜻.”
샤오잔의 입술이 또 자기 입술에 닿은 게 너무 놀라서 왕이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틈으로 서로가 얽히고 설키다 종례엔 쫓고 쫓기듯 한바탕 술래잡기를 했다. 샤오잔의 첫 키스는 수영 같았다. 숨이 차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 귀여운 애가 느껴지고, 그저 좋았다. 고속버스 내에 켜져 있는 티비 소리에 두 사람의 소리는 묻혔고 둘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입술 퉁퉁 부어 오리입술 같았다.
근데 형. 형도 나 좋아해? 왕이보가 발그레한 볼을 하고는 물어봤지만 샤오잔은 그저 웃기만 했다.
청게 처음써봐서 어설프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트)